일상의 모든 것이 감사
설을 쇠고 방학이라도 학교에 가는 큰 애 도시락을 싸느라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어느새 2월의 마지막이다. 시간가는게 무서울 정도다. 한 것도 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아쉬워 날마다 깨알같은 글씨로 일기장을 채운다. 마흔 한 두 살이 되니 일기장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지나가면 어제의 일도 쉬 기억이 나지 않는 요즘이다. 그렇게 하루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날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담는다.
한 동안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가득했을 때가 있었다. 그럴땐 저주의 글들을 토하듯 쏟아냈는데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있어 한껏 차올랐던 미움이 누그러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 켠에 찝찝함은 늘 남아있었다.
‘용서’ 그리고 과연 그가 빌런일까 하는 의구심..
남편을 용서하지도 못하는 내가 과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지은 죄도 만만치 않은데 내가 뭐라고 남편을 정죄한단 말인가? 과연 내 인생의 불행의 원인이 모두 남편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참 일기를 쓰다보니 내가 참 교만했구나. 내가 참으로 죄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동안 남편을 무시하고 막 대하고 퉁명스럽게 굴면서도 내 행동은 왜 고칠 생각을 안 했는지 왜 이제껏 남편을 나쁜 사람으로만 만들려고 했는지 너무 미안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교만과 죄에 가득찬 나라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복음을 생각하니 그저 감사함과 죄송한 마음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으며 코가 시큰거렸다. 확실히 사순절은 우리의 영혼이 정화되는 기간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고 나면 가슴속 돌덩어리가 툭 깨져 사라진 듯 홀가분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개역개정>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기로 작정하면 언제나 죄 사함을 받고 새롭게 될 수 있다는 이 말씀은 후회로 가득찬 내 삶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에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일 년 중 가장 사모하는 시기도 지금 이 사순절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다시 살게하는 구원을 상징하기에 가장 회개하기 좋은 날도 지금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내 일기장은 어느새 감사할 거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불평과 감사는 한 끗 차이다. 현상은 같지만 불평하기로 작정하면 끝없이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찬다. 반면 감사로 생각을 바꾸는 순간 그 어떤 힘든 상황조차도 감사할 거리로 보이기 시작한다.
참 놀라운 경험이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종이한창 차이의 변화로 인해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일기쓰기로 시작된 일이 간증거리가 될 수 있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지금의 이 감정을 글로 써서 남길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마지막으로 내 작은 다이어리에 적은 일기를 이 곳에 옮겨보려한다.
26.02.28 토
주말을 맞아 집안 구석 구석 미루던 정리를 하고 온갖 쓰레기를 다 비웠다. 빨래통에 모든 빨래를 해치우고 화장실 두 군데도 모두 청소했다. 쓰레기들과 함께 나의 묵은 오래된 감정 또한 함께 버려진 것 같아 후련하다.
추운 날씨였지만 킥보드를 타고 달리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바람대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가는 길에 교회에 들러 내일 예배 준비를 위해 청소를 했다. 걸어다닐 만큼 가까이에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나와 청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큰 감사거리다.
청소를 끝낸 후 바로 근처에 있는 단골 미용실에 갔다. 친정 엄마와 나이가 비슷한 원장 선생님은 어떨땐 엄마보다 더 엄마같게 느껴질만큼 푸근한 분이다. 남자 아이들머리도 어쩜 그렇게 순식간에 잘 잘라주시는지~ 몇 달 기른 내 머리카락도 온 김에 정리를 해달라고 했다. 머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와 수다떠는 것보다 더 즐겁다. 기분좋은 따뜻함을 안고 나서는데 왠지 마음이 찡하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미용실을 운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녁은 시어머니집에서 먹기로 했다. 남편이 일주일 전에 어머니께 미리 부탁을 드려 삼계탕을 끓여달라고 했다. 마침 그때 내가 감기로 고생하던 차라 남편이 내심 날 위해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진실은 모르지만 어쨌든 남편에게 감사하다.
어머니 집에 들어서자 능이와 대추 인삼을 잔뜩 넣은 삼계탕 냄새가 구수하게 났다. 비록 잔소리는 많이 하셔도 이렇게 음식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고생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더욱 음식이 귀하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아이들 밥을 챙기느라 나는 먹지도 못하는 걸 보고 어머니가 가장 많이 염려해주시면서 가장 큰 대접에 내 삼계탕을 내어주셨다. 무려 본인 아들보다도 큰 그릇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는 저녁 식사여서 감사했고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는데 이 행복한 감정이 너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예비하신 천국이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가족들에게 하루빨리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하루하루 더 감사로 가득찬 삶을 살아내야겠다는 사명감이 든다.
2월의 마지막을 이토록 평온한 주말로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