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간증일기입니다
신기한 일이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내 일기장은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미움과 짜증을 쏟아내는 글들로 가득했다. 또 그런 나 자신을 비하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 자신도 싫고 남편도 싫고 아이들도 싫고 왜 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교회를 다녀도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교회 사람들께 토로해봤지만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괜히 말했나하는 자책감이 더 커졌다. 교회라 해도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날마다 지옥에 사는 듯한 이 마음을 구원해 줄 이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교만했다. 스스로 해결하려 했고 사람에게 의지하려 했다.
창피했다. 이젠 이런 나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싫고 두려웠다. 이런 나를 손가락질 할까봐, 교회다니는 사람이 믿음이 이것밖에 안되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느냐고 비난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 동안 이런 글을 쓰기도 주저했다. 괜한 글을 써서 다른 크리스천들까지 욕먹이고 더 교회를 비난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사람들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의 글로 인해 뭔가 엄청난 변화가 생길거라는 망상을 내려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글을 써서 좋은 점은 메타인지가 점점 정확해진다는 것이다)
어쨌든 최근 일주일간의 심경의 변화를 거슬러 올라가니 아이들과 잠들기 전 잠언을 읽기 시작한 날부터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의 마무리를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잠든 적이 그 전에도 종종 있긴 했었다. 그러나 동화책이 대부분이었고 그 마저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지 않은 날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고보니 한 동안 아이들을 먼저 재운 날에는 어김없이 밤늦게까지 유튜브나 드라마를 보며 늦게 자는 날이 많았고 아침에는 피곤이 쌓여 늘 기분이 안 좋은 채로 깨야했다. 그렇게 피곤한 상태로 남편 밥을 차릴려니 남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겐 스트레스로 느껴졌다.
그러다 수면부족으로 인해 생활의 모든 패턴이 엉망이 되고 할 일은 여전히 많으니 또 스트레스가 쌓이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또 단 걸 자꾸 먹어대는 탓에 몸은 점점 살이 찌고 무거워져 예전엔 넉넉했던 출근복이 이젠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 되버렸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몸도 마음도 영적으로도 병들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툭 하면 눈물이 쏟아졌다. 출근하다 지하철에서 울고, 교회에서 찬양하다가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다. 그러다 우울하고 공허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불을 끈 채 아주 희미한 무드등에 의지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읽어가다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고 나는 여지없이 눈물이 났다. 그 때의 눈물은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의 그것이 아니었다. 치유의 눈물이었고 따뜻한 위로에서 나오는 그것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울다 잠이 들었다. 밤새 꿈을 꿨는데 돌아가신 할머니와 친정 가족들이 생생하게 보였다. 아침에 꿈이 하도 생생해서 무슨 일인가 생각하니 마침 그 날이 할머니의 기일이었다. 살아생전 고생만 하셨는데 손녀로서 효도는 커녕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 것이 두고 두고 죄송하고 후회로 남아있었다. 그런 할머니를 꿈에서라도 보니 좋으면서도 그리움에 사무쳐 또 아침부터 눈물이 났다.
나는 평생을 스스로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며 살았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노래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이었다. 그 노래를 들으면 거북하고 급기야 화가나기도 했다. 그래봤자 나는 사랑받지 못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아름다운 찬양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 무의식 중에 쌓인 상처들이 만들어낸 비합리적인 신념은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더욱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엄마로서 사랑을 줘야 하는데 사랑이 고갈되어버린 나 자신을 보며 자괴감에 빠졌고 지난 시절 부재했던 부모의 사랑을 대체할 남편을 찾았지만 그 남편 또한 사랑이 부족한 그저 나약한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좌절했다.
결국 나는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사회적인 역할에만 충실할 뿐 감정이 없는 존재로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텅 빈 껍데기로 살아가고 있었다. 교회에서도 앞에 나와서 찬양까지 멀쩡히 하면서도 속으로는 우울증이 오고 허무함에 빠져 죽고 싶은 적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나를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어떻게 이런 나를 사랑할 수 있겠어?’ 용서해달라는 기도 대신 교만하게도 내 잣대로 하나님을 감히 판단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이런 쓰레기같은 나도 용서하실 뿐더러 그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회심하면 용서하시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
이 구절이 마침내 나를 살렸다. 나도 새롭게 될 수 있다는 이 말씀은 내 인생을 다시 살게 하시려는 주님의 음성이었다.
고통의 멍에를 매고 살아가던 나에게 자유함과 기쁨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 동안 받은 사랑이 얼마나 많았는지 얼마나 많은 복을 누리며 살아왔는지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나의 생명을 주신 주님, 주님이 계획하시면 당장이라도 나의 숨이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하루하루의 삶을 허락하신 것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이 마음을 담은 찬양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옵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 버리려고 주께로 옵니다
교만한 맘을 내버리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복되신 말씀 따르려고 주께로 옵니다
실망한 이 몸 힘을 얻고 예수의 크신 사랑받아 하늘의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옵니다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로 나옵니다
영원한 집을 바라보고 주께로 옵니다
멸망의 포구 헤어나와 평화의 나라 다다라서 영광의 주를 뵈오려고 주께로 옵니다
주께로 옵니다 주께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