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4 공연 끝

by 이가연

공연이 끝나자마자 춘천역까지 걸었다. 기차 시간이 약간 신경 쓰였는데, 다행히 20분 전에 도착했다. 즉 공연이 10분만 더 딜레이 되었어도, 불안했을 거다. 한시라도 빨리 서울 올라가고 싶어서 좀 빠듯해도 그렇게 잡았다. 1박 2일에서 보통 두 번째 날은 얼른 올라가고 싶다. 아. 이번엔 그냥 옆으로 가는 거구나.

지금 기차 안이다. 매우 피곤하다. 여수는 50분, 이번엔 15분 밖에 안 불렀는데 왜 피곤할까. 긴장도가 완전히 달랐다. 공연 시간은, 목 피로도에만 영향을 미친다. 목은 멀쩡하지만, 온몸에 힘이 쫙 빠진 그 특유의 긴장 풀린 느낌이 있다.

생각보다 행사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공연 페이에서 눈치를 챘어야 하나. MC 분이 분위기를 막 띄우시는 게 보통 내가 다녔던 버스킹 행사하고 달랐다. 그렇다고 떨리지는 않았다. 평가받는 장소가 아닌 이상 안 떤다. 종종 안 떨리냐는 질문을 받는데, 일이란 게 그렇듯 빨리 기차 타러 갈 생각 했다.

해가 정면에서 나를 지저 놓던 것이 영향을 크게 미쳤다. 해가 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바로 12시 방향에 있는 느낌이었다. 요즘 해 지는 시각이 빨라져서 그런 것 같다. 리허설 때만 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내 공연 순서가 되니 정면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양 사이드를 보거나, 정면에선 눈을 감았다. 그러지 않으면 이마를 너무 찡그릴 거 같았다.

휴대폰 촬영은 스탭 분이 해주셨다. 정면에도 주최 측 카메라가 있어서 보내준다고 하셨는데, 내 생각엔 핸드폰이 더 잘 담겼을 거 같다. 아무리 노력했어도, 정면 영상엔 얼굴을 찡그렸을 거다. 휴대폰으로는 얼굴이 거의 안 보이게 찍혔다. 정도로 반사판 그 자체였다.

그 자리면, 반팔 원피스를 입어도 안 추웠을 거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렇다고 공연 장소를 유동적으로 옮길 수는 없는 구조였다. 첫 곡 미녀와 야수는 햇빛 때문에 당황스러워서 집중을 못 했다.

그래서 첫 곡은 무대에 적응하라고, 살면서 가장 많이 불러본 인어공주를 부른다. 하지만 이번에 주최 측에서 가을 느낌 곡을 준비해 달라고 해서, 바닷가 여름 느낌인 인어공주는 뺐다. 거의 항상 첫 곡으로 부르는 곡인데 이례적이었다.

두 번째는 '그런 너라도'를 불렀다. 가장 공연에서 부르기 편한 자작곡인 데다, 어디서나 사람들 호응도 좋다. 영국에서 가사를 모르는 사람도 좋다고 해서 믿음이 있다.

다음은 '월량대표아적심'을 불렀는데, 압도적으로 반응이 좋았다. 몇 달 전 여수에 이어, 또 한 번 이 곡 반응이 제일 좋으니 올드팝을 강화해야겠단 생각이 또 들었다. 중장년층 관객이 많으면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는 곡이다.

이 곡은 2018년부터 간간히 불러오고 있는데, 올해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올해 이 곡을 부르는 나의 모습이 예전과 다른 게 티가 난다. 내 노래가 분명 영국 전후로 달라졌고, 깊어졌는데, 디즈니 노래에선 티가 잘 안 난다. 이 곡은 티가 날만 하다. 전에는 곱디곱게만 불렀다면, 이젠 목소리에 첼로 느낌이 묻어나는 것 같다.

마지막은 라푼젤 'When Will My Life Begin' 노래로 장식했다. '월량대표아적심'에서 아까까지 안 쳐다보던 사람들마저도 다 쳐다보고 집중하는 느낌을 받아서 힘을 팍 받은 상태였다.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공연이 끝나고 MC 분이 오셔서는 아까 한 아버님이 저기 노래하는 사람 주라고 하셨다고 빵을 건네주셨다. 이런 적이 굉장히 오랜만이라서 찡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님'이라 하신 거 보니, '거 젊은 사람이 고생하네.' 하는 마음으로 주셨을 거다...

이럴 때마다 하늘이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년이 10주년인데 항상 혼자 다니는 거 서럽다고 했는데, 혼자 아니지 않나. 예나 지금이나 종종 사진이나 사인 요청을 하거나, 이렇게 선물도 주신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객들하고 함께하면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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