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이 책을 보자마자 당장 읽어야겠다고 집어 들었다. 그냥 비즈니스 이메일 잘 쓰는 법 알려주는 책이 아닌 게 보였다. '내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책, 이거로구나!' 하며 반가웠다. 2016년부터 일 년에 수백 통의 이메일을 일방적으로 보냈다. 주고받을 일은 잘 없다.. 일방적인 전송이다. 나 좀 써달라고. 그런데 정말 거의 모든 메일이 답장이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메일을 잘 못 쓰는 게 아닌가는 필히 생각해봤어야 하는 의문이다.
내가 어때서. 내 능력이 어때서. 누구도 끄덕끄덕하게 만들 자신 있다. 그런데, 현대인이 얼마나 바쁜가. 내가 첨부한 포트폴리오 파일은커녕, 웹사이트도 클릭 안 하고 버려진 이메일이 수두룩 빽빽일 것이다. '아니, 파일 첨부한 거 다운로드하기는 싫은 거 이해해. 근데 링크는 봐야지.'는 내 생각이고. 그래서 나는 이메일로 팔자 고친다는 이 책 띠지의 말, 너무 신뢰가 갔다.
p40 이를테면 "안녕하세요. 저는 모 대행사에서 근무하는 김정아입니다"라고 메일이 왔는데 그의 이메일 계정명이 '붕어빵'일 때, 물론 나는 붕어빵을 너무 좋아하고 지금도 당장 먹고 싶지만 붕어빵 때문에 주의가 흐트러질 수 있다. 김정아라는 모르는 사람과 붕어빵의 연관성을 나도 모르게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분도 붕어빵을 좋아할까...... 꼬리부터 드실까 머리부터 드실까...... 혹시 엄마와 아빠 중 한쪽을 쏙 빼닮아서 붕어빵이라고 지은 것은 아닐까...... 작가나 친구로선 재밌는 질문이지만 업무 메일로 처음 만난 사이에서 상상하기엔 다소 사적일 수 있다.
- 역시 잘 쓴 글은 적재적소에 웃기다. 나도 늘 브런치에 글을 쓰며 웃기려고 노력한다만. 나의 네이버 이메일은 간단하게 'gayeon0811'이다. 이름과 생일, 무난하다. 반면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지메일 (구글 메일)은 사정이 좀 다르다. 네이버 아이디가 평범해서 아쉬웠나. 2016년, 성인 되어서 만들었음에도 상당히 중딩스럽다.
sjforever로 시작한다. sj는... 사람 이니셜이 아니라... 슈퍼주니어다. 감사하게도 슈퍼주니어가 올해 20주년을 맞이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만, 비즈니스 이메일로서는 뭔가 포에버가 들어가면 유치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 이니셜 아니다. 슈퍼주니어가 영원하길 바랐던 당시 팬심이다. 뭐 이런 것도 다 운명이었나 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진짜 짜증 난다... 고 하면서 왜 이리 실실 웃어.)
p45 유재석도 조세호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굳이 날 만나러 오고 싶게끔 만들까? 나는 여느 때처럼 이메일 창 앞에 앉았다. 당시 쓴 메일의 전문을 살펴보겠다. 제목은 다음과 같다. '차를 부르고 술을 부르는 산문가 장기하 님께'.
- 제목... 제목부터 그동안 너무 평범했단 걸 여기서부터 깨달았다. 과거 메일을 떠올려보면 '싱어송라이터 이가연입니다'라는 제목은 참 별로였다. 그게 누군 줄 알고 클릭하나.
p50 "이상입니다. 저는 장문의 이메일을 썼지만 답장은 부디 짧게 해주세요. 길게 쓰시려면 힘드니까요. 문자나 전화로 간단히 회신 주셔도 괜찮습니다." 이런 섭외 메일에 걸맞은 답장을 돌려주려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상대에겐 짧게 답장해 달라고 강조해야 한다.
- 아... 이런 배려도 몰랐다. 메일 길게 쓸 땐 명심하겠다.
p69 헤어질 무렵에 노희경 작가님이 내게 물었다. "정말 하고 싶어?" 생략된 목적어는 물론 작가일 것이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그는 미소 지으며,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힘든데......"
- 여담이지만, 나는 저런 중고등학생이 내 앞에 있다면 "증명해 봐." 할 거다. 한 명도 못 봤다. 나 같은 학생. 그런데 내 학창 시절엔, 그렇게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중3 때든, 고2 때든 내가 얼마나 지금껏 노력해 왔는지 증명할 자신이 있었다. 중2 때도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 틈을 타서 공 CD에 노래를 녹음해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돌렸고, 학교 축제에서 이미 노래를 잘해서 학교 선생님들이며 복도 지나가도 모르는 애들도 날 알아봤다. 진짜 할 애들은, 뭐라도 혼자 하고 있다.
p89 글쓰기도 노동이니 작가에게 일을 의뢰할 땐 꼭 정확한 금액을 명시하자고. 지루할 정도로 당연한 소리다. 그러나 2025년 3월인 오늘만 해도 돈 얘기가 없는 섭외 메일을 세 통이나 받았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다.
- 솔직히 이건 한국이 더 심한 것 같다. 영국은 구직 사이트만 봐도 시급이 다 적혀있었다. 그런데 잡코리아 들어가면 죄다 안 쓰여있었다. '얼마 주는지 알아야 지원을 하지' 싶은데 몰라도 지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렇다.
p91 물론 담당자님께서는 상대가 수락한 뒤에 돈 얘기를 논의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자. 섭외 조건을 모르는 이상 수락도 거절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처음부터 상의해야 할 자세한 이야기가 바로 돈 얘기다. 적혀 있지 않으면 내 쪽에서 귀찮음을 꾹 참고 물어보게 된다. 오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태도를 견지하며 "강연료는 얼마일까요?"라고 묻는 글자 노동을 굳이 추가해야 한다. 이런 수고를 하게 만든 이상 이미 한 번은 실패한 섭외다.
"그래서 저에게 얼마를 주실 건가요?"로 요약되는 답장을 쓰는 것은 꽤 번거롭고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꼭 섭외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상대가 첫 메일에서 한눈에 섭외 조건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돈 얘기를 명시해야 한다.
- 이건 작년에 확실히 깨우쳤다. 대면 미팅까지 거쳤는데도, 그래서 내가 얼마 받는지를 몰랐다. 이상해서 집에 와서 물어보니,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처음부터 이메일 보낼 때부터 명시했으면, 서로 시간 낭비가 없었을 것 아닌가. 나만 시간 낭비가 아니고, 상대도 시간 낭비하는 셈인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졸업 후 영국에 남으면 시간당 7만 원을 받는다고 확 얘기해 버렸다. 올해부터는 다시는 페이를 모르고 대면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쌍방 시간 낭비를 방지하여.
하지만 저 문단에 벌써 격공 한다. 이메일에는 "그래서 저에게 얼마를 주실 건가요?"라고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보통 사람도 힘들 텐데, ADHD인은 더 힘들다. 머리로 아는데 그 충동을 막고 쓰기가 되게 어렵다. 그런 상황 자체에 놓이면 안 된다.
p102 그런데 작업료가 적혀 있지 않아 고민이 됩니다. 보통은 첫 의뢰 메일에서 일의 내용과 정확한 페이를 명시해 주시거든요. :)
- 저렇게는 말해도 되는 거였구나. 저거 수동 공격인데. 저러면 내 마음이 안 좋아질 것 같았는데...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저 정도는 말을 해야 된다. 안 그러면 저 담당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그럴 거 아닌가.
p103 이쯤에서 부드럽게 일러준다. 돈 얘기를 의뢰인 쪽에서 먼저 꺼내지 않으면 작업자가 번거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현명한 의뢰인이라면 이후 다른 작업자에게 메일을 보낼 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 이 책 읽고 저렇게 말해도 되는구나를 깨달았다. 저 정도는 말해야 내 속도 시원하다. 하지만 방금 읽은 이 책에서 배운 내용을, 방금도 실습할 기회가 생겼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ADHD라 말이 정제되어 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 나한테 너무 고문이다. 이미 짜증, 화가 확 난 상태에서는 도무지 안 된다.
이렇듯 사람에 따라 같은 책을 읽어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다 다르다. 이미 난 이메일로도 분노해 본 경험이 좀 된다. 이 책을 쓰신 작가님도, 저렇게 되면 이미 한 번 실패한 섭외라고 하시지 않았나. 나는 더욱 그러하다. 한 번 짜증, 화가 팍 치면, 그 정도가 비 ADHD인에 비해 높다. 물론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가짜 감정이다. 그래도 이미 기분 상한 정도가 남다르다. 그래서 그냥 안 된다. 첫 메일부터 정확한 내용과 페이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담당자는, 어차피 일을 수락해도 힘들게 한다.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방금 브런치 제안하기를 통해 메일이 왔다. 커뮤니티 스타팅 멤버로 함께할 의향이 있냐는 메일이었는데, 이게 나한테 페이를 주고 섭외한다는 것인지, 참가비를 내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별로라는 촉이 작동하면, 그쪽이 맞거늘. 그래도 한 번 참고 메일을 썼다. 역시 참가비 낼 사람 모집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냥 1대 1 맞춤 광고한 거잖아... 브런치 제안하기를 그렇게 광고용으로 써도 되나.
하지만 여전히 나는 즐거운 제안을 기다린다. 명확한 내용과 페이가 명시되어있는 제안. 그런 메일로 메일함이 가득할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