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을 지키기 위한 기준들

by 이가연

50분 공연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최상의 컨디션에서 50분 공연해도 힘들 텐데, 내 컨디션은 대개 최상이 아니다. 관객들하고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50분 공연은 재밌을 거다. 하지만 많은 공연이 그렇지 못하다. 최악의 경우에는, 노래가 끝나도 박수도 안 나올 정도로 아무도 안 듣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시간 채우기란 고역이다. 어차피 아무도 안 듣는 것 같은데, 시간 채우는 게 무슨 의미인가 회의감이 심하게 든다.

앞으로 공연은 최대 40분 하고, 각 곡마다 무슨 멘트를 할지 대략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외워두기로 했다. 보통은 분위기가 좋으면 멘트가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도무지 관객이 없을 경우, 뻘쭘하기 때문에 노래만 줄줄이 이어 부르게 된다. '관객 없어도 멘트 해라'라고 다짐해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그런 공연 장소는 최대한 만나지 않는 것이 좋지만, 미리 알 수가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항상 대비해야 고생을 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직, 너를'을 부르고 나서는 이 노래를 영국에서 쓴 만큼 영국 날씨와 음식에 대해 썰을 풀 수 있다.

설렘이 느껴지는 곡들로만 공연을 채우려면, 레퍼토리 개발을 꾸준히 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작곡을 15곡이나 발매한 만큼, 공연에서 부를 수 있는 곡이 많지만, 이젠 더 이상 안 부르고 싶은 노래들도 많다. 너무 예전에 발매한 자작곡들은 별로 감흥이 없다. 몇 달에 한 번은 새로운 노래를 공연에서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공연 가는 발걸음도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있고 설레게 된다.

돈 받고 공연할 수 있는 기간은 4월부터 10월까지다. 7개월, 일 년 중 거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5개월 동안은 최선을 다해 레퍼토리 개발을 해야 한다. 이번 겨울에는 프랑스어 공부와 샹송 레퍼토리를 쌓았다. 'Comment Te Dire Adieu' 가사를 외웠고, '사랑의 찬가'도 외우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즐거움과 설렘이다. 즐거움이 없는 공연이라면, 얼마를 받았든 의미 없는 공연이다. 내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돈 한 푼 안 받아도 좋다. 오로지 내 행복이 중요하다.

무료 공연에 대한 경계는 전부터 주의 깊게 세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음료나 음식은 제공받아야 한다. 더 이상 아예 아무것도 주지 않는 무료 공연은 하지 않는다. 예외는 있다. 장소에 따라 재능기부 공연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해외였다. 작년에 영국에서 느꼈다. 영국에선 오픈 마이크 공연자에게 맥주라도 주는 펍을 못 봤다. 그래도 해외는 홈페이지 공연 이력에 쓰는 의미와 '올해도 영국에서 노래했구나' 하는 보람이 있었다. 그런 목적이라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괜찮다만, 그 이상일 필요는 없다.

나를 지키는 기준을 세우는 건 매우 중요하다. 나 말고 해 줄 사람이 없다. 기획사가 있다면, 공연 시간과 행사 장소에 따라서 페이를 얼마를 받을 것인지 정해져 있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페이 공연이 생기기만 하면 다 가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어릴 땐, 공연이라면 다 오케이였다.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지만, 그만큼 프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프로는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지금도 이렇게 기준이 세워진 만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명확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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