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미국, 하물며 인도네시아까지 총 54군데의 페스티벌에 공연하고 싶다고 지원서를 냈었다. 몇 년 전 렌즈삽입술을 받은 이후로 쉽게 안구건조증이 오는데, 지원하느라 눈알도 많이 시렸다.
'그렇게나 많이 넣었는데 당연히 하나라도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쪽 바닥이 그렇지가 않다. 살면서 수백 번의 기획사, 오디션 프로그램, 공연팀 모집에 떨어져 봤다. 연락 없던 메일만 천 번에서 이천 번 사이일 것이다.
하물며 한국도 아니고 영국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 해보면, 영국이니까 '한국인'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내가 지원한 페스티벌들에는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다. 처음 들어보는 도시가 대부분이었다.
'뮤지션으로 살아남기' 1원칙은, 지원하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내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이미 몸에 배어 있다. '연락이 오면 좋고, 아님 말고'가 전부터 커리어에선 참 잘 됐다. (그동안 인간관계에선 잘 안 되어 문제였는데, 이제 좀 된다. 다행이다.)
그런데 방금 전 처음으로 답변이 왔다.
너 얼마 받냐는 짧은 회신이었다. 이렇게 잊고 살면, 기대를 안 했기 때문에 연락이 왔을 때 감동은 두 배가 된다. 아직 하기로 확정 난 것도 아닌데, 답변이 온 것만으로도 울컥했다.
애초에 무료 재능기부도 좋다는 생각으로 돌린 것이기 때문이다. 내 비행기 값, 호텔 값을 들여가며, 어떻게든 영국 페스티벌 경력을 더 쌓고 싶었다. 사우스햄튼은 영원히 내 마음의 고향이라, 일 년에 한두 번은 방문해야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고향이 뭔가. 마침 조만간 설 명절이라 다들 이해가 될 것이다. 고향은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은데, 막상 가면 할 게 없다. 그래서 고향 방문 겸 경력과 즐거움을 쌓고 싶었다.
심지어 그 첫 답신이, 사우스햄튼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얼마 전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에서 읽은 대로, 나에게 줄 수 있는 예산을 먼저 알려 달라고 했다.
두 가지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1. 열정과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 뒤도 안 돌아보고 잊어버리는 건 정말 잘 들여놓은 습관이다. 이 습관 덕분에 싱어송라이터 생활을 지치지 않고 10년 할 수 있었다.
2. 요즘 기분 좋은 일들이 계속 생겨서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