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고마운 이유

by 이가연

하늘은 내 편이란 걸 느낄 때가 있다. 2024년 12월, 나는 그날 사우스햄튼 호텔 앞에서 '만날 사람은 만난다'를 제대로 실감했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졸업식에 안 온 것을 확인하고, 힘들어 하고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한 생각에 꽂혀서, 이 친구는 미안하지만 생각도 못 했다.


나는 어딘가로 당일치기 다른 도시 여행하러 기차역에 가는 길이었다. 호텔 문을 딱 나서는 순간, 아는 친구인 것 같은 뒷모습을 봤다. 친구는 아빠로 보이는 사람과 같이 엄청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뒷모습이라 긴가민가했는데, 슬쩍 가서 얼굴을 딱 확인하는 순간, 울컥하면서 서로 끌어안았다.


유일한 기숙사 친구였다. 우리는 세탁실에서 처음 만났고... 나야 늘 스몰 토크를 좋아하니 대화하다가 연락처를 주고받고 친구가 되었다. 대체 뭔 얘기를 세탁실에서 나누다가 연락처까지 주고받았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중국어를 하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쉽게 호감을 사곤 했다. 하하.


친구는 5층에 살았고, 나는 11층에 살았다. 친구 방에 종종 놀러 갔고, 친구도 내 방에 종종 왔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아파서 뭘 해먹을 힘이 없을 때, 국수를 끓여 와줬던 거다... 맛있었다... 그건 다시 먹고 싶어도 뭔 요리인지 이름도 모르는 중국 국수였다. 또한 같이 중국집에 가서 맛있는 딤섬을 먹기도 하고, 나의 그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도 많이 하곤 했다. (내 외국인 친구들에게 전부 S로 통했다.)


친구는 캐리어를 끌고 이제 사우스햄튼을 떠나 비행기 타러 런던으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때 그렇게 마주치지 않았으면... 그냥 그렇게 인연이 끊겼을 수 있다. 같이 기숙사 살던 시절 인연으로.


호텔 앞에서 눈물겨운 상봉을 한 덕에, '하늘이 이 친구를 만나게 했구나'하는 생각이 각인되었다. 졸업식에 오지 않은 사람 생각 말고, 온 사람 여기 있다고.




그런데 그러고도 인연은 끝날 거 같았다. 친구 고향이 마카오 근처인 선전이었어서, 작년 11월에 마카오에 간다며 메시지를 보냈었다. 답장이 안 와서 잊고 있었다. 3개월이 지난 오늘에야 친구는 답장을 했다. 인스타그램을 잘 안 해서 이제야 봤다고 했다. 바로 위챗 아이디를 알려줬다.


영국 오빠도 2024년 12월에 한국에서 얼굴 보고, 그 뒤로 내가 영국에 두 번을 가는 동안 한 번도 못 만났다. 실제로 자주 만나는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는 걸 그래서 알았다. 심지어 이 친구는 올해 안에 한국에 올 계획이 있어 이미 비자를 발급받았다고 한다.


사실 중국어 좀 연습하고 싶었다. 영어 준 네이티브, 일본어와 중국어는 프리토킹 레벨이라고 소개하곤 하는데, 일본어와 중국어 실력에 차이가 난다. 일본어는 좀 안 해도 안 잊어버릴 자신이 있는데, 중국어는 그렇게까지 자신이 없다. 영국에 살 땐, 중국인 친구들과 다 영어를 했다. 내가 중국어를 하니, 수업 중 토의를 해야하는 시간에도 계속 중국어로 얘기해서 화가 났기 때문이다. 내가 포함되어 있으면 당연히 영어를 써야 하거늘, 영국으로 유학 갔는데도 반에 '중국인이 아닌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그런 상황들이 발생했다.


그래서 유학 초기에나 중국어를 썼지, 계속 영어를 쓰게 되었다. 다만, 이 친구는 영어가 좀 부족했다. 그래서 영어가 막힐 때 "괜찮아. 중국어로 말해도 나 알아들어."라고 하고 나도 중국어로 제법 얘기했다. 강의실 밖에서 만난 친구라 내가 그랬던 거 같다.


영국에 있을 땐 중국어 연습을 전혀 안 하고 싶었는데, 한국 오니 그런 생각이 들었고, 친구가 다시 나타났다... 중국어 튜터를 구하려는 시도도 몇 번을 했었지만, 이상하게 중국어만큼은 나랑 마음 맞는 튜터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내가 맨날 영국에서 중국인들한테 둘러 쌓여있었는데, 돈 주면서 튜터를 구한다고?' 마음도 당연히 들었다.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다. '졸업식 안 온 사람 생각하지 말고, 나 버린 사람 생각하지 말고, 영국 생활 끝. 까. 지. 함께해 줬던 친구 여기 마주치게 해 준다' 했던 하늘이,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그 졸업식 안 왔던 사람 때문에 지난 3일 간 정신과 약을 먹으며 힘겨웠던, 이 타이밍에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게 하늘이 날 도와주는 게 아니라면 뭔가.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글 중에,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줬던 사람, 그리고 나를 그 어려움으로 몰아넣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걔는 가장 큰 어려움에 몰아넣었던 사람이다. 그토록 정신과와 마음 건강 챙기기에 수년간 단련된 게 아니었으면, 진심으로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하늘에 너무 고맙다. 사람과 다르게 하늘은 못 알아들으면 알아들을 때까지 알려주는 거 같다. 진짜 널 생각하고, 너와 끝까지 함께해 줬던 친구가 있다고. 호텔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고도 제대로 못 깨우친 것 같으니, 한 번 더 알려주는 하늘에 고맙다.



여긴 내 기숙사 방이었다. 주로 저렇게 고기에 찌개를 끓여서 먹곤 했다. '내가 친구 밥을 차려주다니!' 감격하며 찍었던 사진이다. 한국에선 누구 집에 놀러가거나, 누굴 초대해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유학생 치고 저 정도면 훌륭한 밥상이다. 특히 고기 구워 먹는 걸 좋아했다. 밥에 고기만 있으면 사실 국은 없어도 되었다. 치즈, 계란, 김, 햇반, 고추참치, 두유, 오렌지 주스 등은 항상 있었다.


저 날엔 영국인 친구와 저 친구 두 명을 초대했었는데, 영국인 친구는 김을 보고 "이게 대체 뭔 음식인가"하고 신기하게 쳐다봤는데, 이 친구는 당연히 김을 어떻게 먹는지 알아서 웃었던 기억도 있다.


아. 사진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음과 동시에 다시 겪고 싶지 않기도 하다. 한국이 좋은 것도 30, 나쁜 것도 30이라면, 해외 생활은 즐거움도 100, 힘든 것도 100이다. 그 -50이든 -100이든 어려운 상태에 내 방에 와서 밥을 먹게 해줬던 친구가 가슴에 남는 건 당연하다. 하루 빨리 한국에서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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