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데자뷔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작년 봄에도 이렇게 한국에서 계속 재능 낭비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해외에 지원서를 보냈다. 작년 5월과 9월에 영국에 방문했었다. 작년 5월에도 교수는 한국에서 왜 그러고 있냐며 나오라고 했다. 9월에 다녀와선, 커리어 팀과 상담 끝에 영국에 취직 원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10월 초를 끝으로 더 이상 해외에 취직 원서를 넣지 않았다. 10월 중순에 갑자기 타로 채널이 잘 되었다. 10월 한 달 동안 구독자가 800명이 늘었다. 동시에 한 달 동안 공연이 4번이나 있었다.
그리고 지난 한 달 동안은 구독자가 20명이 줄었다. 지난 네 달 동안 한국에서 공연을 한 번도 못 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서울에 혼자 있고, 조만간 날 찾을 거라는 믿음이 작년 내내 너무 강했다.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 하겠지만,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차단당한 지 1년 반은 되었었는데, 영국에 원서 넣는 게 어려웠다. 홍콩에도 몇 번 취직 메일을 보냈었다. 한국에서 왔다 갔다가 가능하니까. 2주에 한 번은 주말마다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해외 박사를 알아보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대체 허송세월 뭐 한 건가 싶어서 갑갑한 건 작년과 비슷해서 데자뷔가 든다. 작년에 일적으로 성과가 드러난 건 다음 다섯 가지다.
1. 미니 1집 발매하기.
온라인으로 다 가능하다.
2. 공연하기.
작년에도 몇 번 못 했다. 그건 영국에서 박사 하면서도 여름에 한국 들어왔어도 한다.
3. 타로 채널 키우기.
온라인이다.
4. 책 '영국에서 찾은 삶의 멜로디'
온라인 제출이다.
5. 중, 고등학생 노래, 영어 가르치는 봉사 활동
영국은 뭐 봉사 활동 없나.
당연히 한국에서 돈을 못 벌고 지냈더라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 했다. 그런데 꼭 있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꼭 있어야했던 이유는 정말이지 나 싫다고 2년 동안 한결 같이 거부하는 사람이 서울에 있을 거 같아서였다.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것도 다 작년에 했던 노력이라 더 갑갑한 데자뷔가 든다. 할머니랑 같이 노래방 가고, 꽃구경 가기. 조만간 벚꽃이 피고 예쁠 텐데,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시즌이다. 매일 벚꽃 보러 다닐 거다.
작년의 데자뷔라고 생각하면 정신 건강에 좋을 게 없다. 분명 한국에서 좋았던 순간도 많았을 테고, 영국에서 거지 같던 순간도 많았을 텐데, 너무 먹구름으로 퉁치는 느낌이다.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천지 차이다.
작년에는 애초에 영국에서 돌아오지를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짙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그게 벌써 거의 2년 전 일이고, '그땐 다 사정이 있었지' 하며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작년에는 이것저것 다 들쑤시고 다녔다. 영국 학교 교수도 작년에는, "취직이 하고 싶은지, 박사가 하고 싶은지 하나만 정해서 몰두해 봐라."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둘 중 우선순위를 정할 수가 없었다. (실은 둘 다 싫었기 때문이다. 그냥 걔랑 서울에서 알콩달콩 잘 살고 싶은데, 그걸 못 하니까, 상대방이 날 거부하니까, 뭐라도 하려고 이리저리 찾아봤기 때문이다. 이래서 원하지 않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동기는 오래 못 간다..)
지금의 나는, 작년과 다르게 명확한 기준이 세워졌다. 내가 뭘 할 수 있고, 뭘 못 하는지 안다. 그러니 이것저것 다 들쑤시느라 괜히 힘 빼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어디 보컬 트레이너 취직하는 것도 안 되고, 해외에서 일하더라도 가치관이 한국스러운 한국인 밑에서 일하는 것도 안 되고, 영국이어도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일반적인 직업도 절대 못 한다. 하여간 선택지가 확 줄었다.
지금의 나는, 아무리 봐도 내가 가장 빛났던 건 영국에서 6개월 동안 학생 생활할 때였기 때문에, 빨리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커졌다. 6개월은 너무 짧았다. 너무 짧아서, 신기루 같았다. (영국 석사는 말이 1년이지, 수업 기간은 6개월이고, 3개월이 방학, 3개월은 개인 학습이다.)
'답답함'으로 퉁치면 안 된다. 그 안에는 내가 외국 나가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잘한다는 자부심도 있고, 설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