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의 굴레

by 이가연

음악 하는 사람들이 정신 질환에 취약한 이유가 있다. 노래를 쓰고 부르다 보면, 감정을 강하게 느낀다. 그런데 그 감정이 행복하고 설레는 게 아니라, 대개 슬프고, 그립고, 힘들다. 행복하게 설렐 때는 음악을 잘 안 찾게 된다. 예를 들어, 시드니 여행을 즐겁게 했지만 이에 대해서 곡을 쓰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구구절절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잘 다녀왔다.' 끝이다. 만일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다면, 단 한 곡도 나오지 않았을 거다.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는데, 저 사람을 나를 쳐다도 안 보면 그게 얼마나 스스로 비참해지는가. 그런데 곡이 술술 나오면, 싱어송라이터 자아를 지키며 나 자신이 좀 멋있어 보인다. 한 사람을 가지고 20곡을 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뭐 대단히 오래 알고 지냈다고. 3개월 알고 지냈는데, 2년 째 곡이 나온다. 나도 이게 말이 되나 싶다. 상대방이 이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할지는 안 중요하다. 곡을 쓰고 발매하는 일, 이건 싱어송라이터로서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악순환이지 않았을까. '혼자 울고불고만 하지 않고 음악 하는 멋진 나 자신!!'이 있더라도, 슬픈 노래 계속 듣고 부르면 더 슬퍼진다. (그래서 요즘 밖에 헤드폰을 안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던 거 같다.) 상실의 예술적 승화였다며 좋아했는데, 문득 '어라?' 싶었다. 왜냐하면 이번 신곡 준비하면서, 진짜 이제 이 사람 생각이 2주 동안 거의 안 났는데, 갑자기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곡 발매를 미루면 된다.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하면 된다. 뭔가 꺼림칙해질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어차피 올해 안에는 발매할 거다. 그게 4월이 되든, 10월이 되든 상관 없다. 팬들이 내 신곡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날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편안한 게 가장 중요하다.


그 20곡에는 아픔이 많이 담겨있다. 하지만 난 이 사람을 생각하면서 고마움과 긍정적인 감정을 챙겨가고 싶다. 과거란 재편집하기 나름이다. 상처 받은 기억만 재편집하든, 좋았던 기억만 재편집하든, 그건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다.


어제는 그 20번째 곡이 나왔다. 최근 통기타 연습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타를 잡고 C코드를 치자마자 또 멜로디와 가사가 술술 나왔다. 이번 곡은 아픔이 담겼다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쓸쓸한 고찰이랄까. 최근 들어 내 정서가 그랬기 때문이다.


'멋진 싱어송라이터' 자아에 취해서 더 슬펐던 것이든 말든, 그건 내가 어찌 할 수가 없다. 난 싱어송라이터로서 나를 사랑하니까. 그 어떤 누구보다 더. 예를 들어, 그런 사람이 존재하진 않겠지만, 누군가 "너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야되는 거 아니냐. 10년 동안 싱어송라이터 해도 돈도 못 벌잖아."라고 한다면, 그게 내가 2년 동안 좋아한 사람이든, 지구 끝이라도 쫒아가서 만나고 싶던 사람이든 가차 없이 평생 안 볼 자신이 있다. 그만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싱어송라이터로서 나다.


그러니 아무리 날 슬프게 해도, 계속 이렇게 노래하고 살아갈 거다. 대신, 부정적인 감정보다 긍정적인 정서를 더 자주, 깊게 느낄 수 있도록 바꿔볼 거다. 그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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