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텐 '이거 다 하늘의 뜻이다' 하는 마음이 종교다. 주로 '유니버스'라는 단어를 쓴다.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 배였는지 모르겠으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책에 크고 작은 오류가 있어서 무척 속상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부탁했어도 다 제대로 안 읽어봤으니까 아무도 오타, 오류를 한 개도 지적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는데, 그다음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으면 니가 백번이고 봤어야지.' 하며 자책으로 이어졌다. 또한 책이 나온 지 거의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 친구 한 명만 사서 이 역시도 짜증과 자책이 뒤섞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내가 보기에도 오류가 있는 책이 많이 팔리면 부끄럽지 않은가. POD 방식이라 얼마든지 수정해서 제출할 수 있고 4월에 만 원이면 해결된다. 책을 배송받기 전에는 표지에 이름을 쓰지 않은 게 거슬렸는데, 이제는 그게 제일 안 거슬리는 부분이다. 이렇듯 한 치 앞을 모른다. 단순 오타 수정뿐만 아니라, 추가하고 싶은 내용도 생각이 나서 오히려 더 잘 되었다. 그냥 그대로 만족한 것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훨씬 낫다.
어제 앨범 발매 일정을 미뤘다. 미뤘으면 됐네. 내가 음원 발매 일정을 미뤘다고 해서 손해 보는 사람이 있나. 없다. 그때 내면, 늦게 내어서 더 잘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제일 큰 문제는 낮 동안 지금 내내, 내 방에서 들렸던 미세한 도도도도 소리가 여기 부엌에서도 그대로 들린다는 거다. 게다가 여기는 누구나 들리는 생활 소음도 심하다. 옆집에서 물을 틀 때마다 소리가 그대로 방 안을 가득 채우게 크게 들린다. 도저히 더 지낼 수가 없다.
내가 살기에 마음 편한 장소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오사카 호텔에서도 뭔가 돌아가는 소리가 거슬리긴 했지만, 지내다보니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여의도 집이나 할머니 집이나 똑같은 소리가 골을 울린다. 가족과 같이 지내는 건 여러모로 아니라는 신호를 우주가 주는 거 같다. 나만 들리는 소음 때문에 괴롭지만 않았어도, 여의도 집에 어떻게든 붙어 살 작정이었다. '응, 그건 아냐'라며 유니버스가 날 내보낸 거 같았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집이었다. 내가 자꾸 버티려고 하니까 유니버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나를 위해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게 한 거 같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일본에서 밤 11시 반에 집에 도착했는데, 또 가족들 때문에 새벽 12시 반쯤 모텔을 찾고 있었나. 하늘이 나를 너무 못 살게 구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 집에 계속 살려고하는 내가 안타까워서 하늘도 눈물을 머금고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한 거 같다.
멍으로 얼룩진 다리가 이틀이 지난 아직도 욱씬거린다. 집안 두 놈을 생각하면 확실히 남자로 태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그랬다면 쌍방 폭행으로 더 얼룩졌겠지.
이렇다.
부산 단기숙소를 알아보고 있다. 원래 대한민국 땅에서 가장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장소가 광안리다. 일이 이렇게 되어 또 뜻 밖의 힐링 시간을 갖게 될지 모른다.
똑같은 증상에도 그 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언제든 휙 떠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가자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