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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DHD와 나

ADHD 수행 연령

by 이가연

27살, 일주일에 1-2번 이상 돈을 벌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3시간 이상 일해본적도 거의 없다.


베이비시터나 개인 레슨을 하고, 일회성 공연 페이를 받아보기만 했다. 외국어 공부와 봉사 활동을 꾸준히 했다. 밖에 나가서 어른들 상대하면서 돈 벌 자신이 전혀 없었다. 당연히 그랬겠지. 실제 나이 22, 23살이었을 때 ADHD 수행 연령은 14, 15세였다. 그러니 딱 그 수행 연령에 맞는 일을 잘 찾아서 한 셈이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진작 다 알고 잘 살아왔다. 오빠가 너 같이 똑똑한 ADHD 없다고 말해줄 때마다 안심이 된다. 내 이력서, 홈페이지를 보면 누가 상상이라도 할까. 능력은 출중하지만 사회에서 뭔가 수행할 수 있는 나이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수준이란 걸.


이젠 내 의지로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더 명확하게 알고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걸 계속 붙잡고 있으면, 자기혐오로만 빠진다. 내내 '나는 왜 남들처럼 알바하는 건 아예 상상도 못 할 거 같은가.'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한창 한 달에도 몇 번씩 공연 다니던 때 ADHD 수행 연령이 고작 14살이었는데 그게 더 대단하다.



남들하고 다른 신경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매번 또래를 기준으로 삼고 비교하고 속상해했던 게 안타깝다. 전두엽 발달이 또래보다 늦지만, 말 그래도 늦을 뿐 차근차근 내 속도에 맞춰서 살아왔다.


지금은 수행 연령이 18세라 한다. 난 군대도 안 갔는데 대학 휴학도 3번 해야 했다. 근데 18살에 해외 석사까지 따왔으면 이제 그만 칭찬해 주자. 거기 있을 땐 17.33살, 미성년자였다.


이제는 어른들 상대로 1대 1 레슨은 가능하다. 물론 여전히 단순한 1대 1이 아닌, 뭔가 소속되어 틀에 맞춰 따라가야 하는 건 전혀 못하겠다. 이번에 일을 갑자기 그만둔 것도, 1대 1 레슨 자체는 재밌고 잘했는데 그게 아닌 시스템적인 문제에 갈등을 빚었다. 폭발하고 올 차단해서 월급도 안 받았다. 결국 ADHD 탓이었다. 그것도 다년간 상담 치료로 욕도 안 하고 끝까지 존댓말도 쓰고 면전 앞에서 소리 지르고 난장판 피운건 아닌 거란 걸 사람들이 알까. 남들이 보기에 용납 안 되는 행동도, 나는 치료로 지금이 가장 놀랍도록 호전된 결과란 걸.


앞으로도 계속 개인 레슨이나 공연 페이만 가능할 거 같다. 개인 레슨은 한 번 시작하면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 주어서, 2년 반 가까이했었다. 나 역시도 일하는 느낌이 아니라, 돈을 안 받고 봉사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행복했다.


대학생들이 과외하는 것처럼, 그렇게는 가능하다. 흔히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요구되는 다른 일은 나 역시도 수행 연령이 25살쯤은 되어야 될 거 같다. 그럼 계산이 맞다.


이번 계기로 내가 이게 정말 안 되는구나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 이상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그저 아직 뇌가 18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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