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되게 잘했다. 음악으로만 대학 가겠다고 결심하고 학교 수업 외엔 안 했는데도 고2 11월 모의고사를 반에서 2등 했다. 국어 2등급, 영어 1등급, 사탐 2등급. 그때까지 모의고사란 기본 실력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입시 준비는 성악에서 실용음악 작곡, 작곡에서 연기과 준비를 했다. 전부 타의에 의해서였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모습만이 나의 살 길이라고 생각한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 나의 자아는 상당히 억눌려있었다. 정말 목숨 걸고 준비했던 예고 입시에서 합격은 했는데, 막상 학교 들어가서 3일 만에 전학 간다고 했다. 그리곤 한 달 만에 실제로 전학 갔다.
고등학교 때는 클래식 작곡에서 뮤지컬, 뮤지컬에서 끝내 보컬 아니면 대학 안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전공을 계속 옮겨다녀야한 이유는, 다들 보컬만은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대형 학원들조차도 반대했다. 심지어 중2부터 고2까지 늘 학교에서 노래로 인정받고, 전교생 앞에서 계속 노래해 왔다. 노래 잘하는 거 다 알았다.
당시 모의고사를 보면 갈 수 있는 예상 학교 리스트를 줬다. 인서울이었다. 보컬 전공을 가겠다고 하는 순간, 5-6등급이나 갈만한 학교도 보컬로는 가기 어려워진다. 공부로는 서경대는 생각도 안 한 대학인데, 당시 서경대 보컬 경쟁률이 500대 1쯤 했다.
공부는 대략 어느 정도 학교를 갈 수 있을지 알지만, 보컬은 절대 모른다. 아무리 평소에 잘해서 상위권 대학을 갈 수 있을 거라고 하는 사람도, 하위권 대학까지 다 떨어질 수 있다. 결국 백석예대에 합격한 걸 생각하면, 하도 노래 못한다고 가스라이팅 당해서 당시에는 터무니없이 낮은 학교들을 예상했다. 백석예대는 지금과 비할 수 없이 상위권 학교였다. 힘들게 들어갔는데 학교 레벨이 떨어져서 슬프다.
정시 6명 뽑는데 900명 지원했고, 최초합했다. 그 천 명 가까운 노래 잘하는 학생들 중에 6등 안에 들었다.
결코 두 번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떨어지면 죽겠다고 하면서 예고 들어간 거였다. 그래서 타인의 조언에 의해 경쟁률이 보컬보다 낮은 연기과를 썼다. 아직도 서공예 홍보 모델이었던 교복 입은 설리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학교 홈페이지 들어가면 딱 보이던 설리 얼굴을 백 번도 더 봤다. 학교를 좋아하면 뭐 하나, 과가 안 맞는데.
그 나이에 너무 뼈아프게 깨우쳐서, 고3 때부터는 정말 내 고집대로, 내 뜻대로 살았다. 성인 되어서 겪은 그 어떤 일도, 중고등학교 시절 겪은 힘듦에 비할 바 못 된다.
고3 때는 그렇게 돌고 돈 4년이 한탄스러웠다. 이제와 보니, 그 덕분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의 조언 듣고 후회해 봤다든가, 누가 뭐라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못했다던가, 내가 꺾여버린 적이 없다. 누가 뭐래도 나를 펼치는 방법을 10대 때 이미 다 깨우쳤다.
실용음악과가 아닌 연기과를 쓴 걸 후회헀다. 그런데 그 때라도 너무 힘들면 학교를 자퇴하든지, 다른 예고 편입 시험을 준비하든지, 아니면 고3 때 위탁 학교라도 지원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러기 어려웠던 걸 이해한다.
한국에 돌아온 걸 후회했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후회의 시간을 보내며 깨우친 게 있다. 나는 늘 나아가는 사람이란 거다. 후회하는 이유는 그저,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욕심 때문이다. '아우 깝깝해'라고 하면서도 계속 상황을 바꾸려고 쉬지 않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