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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제작기 #4 혼연일체의 순간

by 이가연

작년에 처음으로 2곡을 한 번에 발매했다. 발매 소감은 이랬다. '다시는 2곡 동시에 작업하지 말아야지.'


계속 소통하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비싼 페이를 받는 사람이 더 수월할 거라는 보장도 결코 없다.


그런데 이번엔 무려 4곡을 동시에 작업에 들어갔다. 벌써 10곡 넘게 발매했지만, 모두 조금씩, 또는 '많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함께 작업했던 분들과는 한 명도 연락하지 않는다. 이번엔 꼭 나랑 잘 맞는 분을 만나서 앞으로도 계속 안정적으로 발매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영국에서 써온 '띵곡'이 많아서 어떻게든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이든, 자작곡이든, 영국 전과 후로 나뉜다.


일정이 꽤 타이트하다. 프라하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인 5월 3일까지 끝내는 게 목표다.




보컬 녹음은 4곡을 두 번에 나눠서 하게 되었다. 어제 발매된 '그런 너라도'도 재녹음했다. '그런 너라도 (Re-record)'로 이번 미니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다.


타이틀곡 '아직, 너를'은 시간이 남으면 녹음하려고 했던 곡이다. 앞의 곡은 대략 50분이 걸렸는데, 이 곡은 첫 테이크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그 이유는 '혼연일체'에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할 때면, 정말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곡과 내가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그 곡을 썼던 시기의 나도 아니고, 그동안의 내가 모두 튀어나와서 곡과 하나가 됐다.


'아직 너를 사랑해서 잊을 수가 없는 거야. 그게 나를 아프게 멈출 수가 없도록'이라는 가사를 불렀을 때 나를 떠올리면 아직도 신기하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른다. 엄청 슬퍼야, 힘들어야, 화나야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럴 때가 아주 가끔 있다. 그러고서 곡이 끝나면, 힘이 쭉 빠지고 멍해진다.


그 시절의 나로 빙의해 부른 그 곡이 포함된 미니 앨범은, 5월 20일 정오 발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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