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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Dec 24. 2023

파리에서 누드 드로잉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한국에서는 쉽게 해 볼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 하고 싶었다. 


놀랐던 건 첫째로, 신청 전에는 그래도 '누드 드로잉'이라고 하면 조금은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림 그리기 바빠서 부끄러울 틈도 없었다. 그래도 처음과 두 번째 포즈를 그리는데 내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오른 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손을 얼굴에 몇 차례 대보게 되었다. 


둘 째는,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현저히 너무 못 그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나조차도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볼 새 없이 내 그림 그리기 바빴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집중해서 그림을 그렸다. 5분씩 7장 그리고 쉬는 시간 뒤에는 2분씩 10장을 그렸다. 




특히 2분짜리 포즈를 연달아 그릴 때엔 마치 예능에 나오는 '고요 속의 외침'을 하는 것 마냥 정신없고 재밌었다. 이미 5분 크로키로 긴장도 풀리고 익숙해져서인지 2분 크로키가 제일 재밌었던 것 같다. 스케치북을 보면 장을 넘길수록 2분 동안 시간 분배를 더 잘해서 그린 것이 한눈에 느껴진다. 


모델 두 명이 포즈를 바꾸는 데엔 5-7초 정도 걸렸는데 그 사이에 종이를 넘기고 모델 두 명 얼굴 위치를 잡았다. '시작' 소리와 함께 재빠르게 형태를 잡는데 어깨에 힘주고 그렸는지 수업이 끝나고 나니 오른쪽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마지막은 30분 동안 같은 포즈로 그렸다. 드디어 숨을 편하게 쉬며 그릴 수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막판 10분은 속으로 하품도 하고 너무 졸렸지만 최대한 집중해서 모델 분들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외출한 지 13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취미의 목적은 즐거움이다. 한국인은 취미도 다 제대로 부수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즐거우면,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못 그린다고 왜 왔냐고 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잘 그리고 못 그리고에는 아무도 관심 없다. 


무엇보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모델들은 옷을 안 입고 있고 우리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여기 좀 서늘한데 춥지 않으실까' 생각 말고는 주어진 시간 내에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바빴다. 마지막 그림을 제외하고 2분, 5분 크로키라 생각이란 걸 할 여력이 없기도 했다. 오로지 신체 표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델 두 분이 커플이신지는 몰라도 서로 다정하게 웃고 일을 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미술관에서 살아 움직이는 조각상 같았다. 



한국 사람에게 이 경험을 공유했더니 '뭔 소리냐. 벗고 있는데 당연히 수치스러운 게 아니냐'라고 해서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엔 화가 났는데 이내 더 대화를 이어나갈 의지를 잃었다. 그 말 덕분에 이처럼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한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나는 미술, 음악, 영화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예술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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