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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6개월 남은 것처럼

by 이가연

삶이 6개월 남았다고 생각하면, 우선순위 정하는데 참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닫고 실천 중이다. 엊그제 한 달 만에 오빠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 영국 지원서 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래서 주변에 좋은 사람이 한 명 있는 건 참 중요하다. 누가 이런 말을 해주겠는가. 내가 지원했다고 하면, 다 '도전하는 거 좋지. 그래서 영국 가냐' 밖에 못 한다. 저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저 한 명이다.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을 짚어주면, 확실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혼자서는 아직 20%는 부족하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이 오빠의 말 없이 혼자서도 해낼 거다.


위 '굉장히 한정적이다'라는 건,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직업 공고 자체가 영국에서도 매우 한정적이란 뜻이다. 조건이 확실하다. 어른 상대하기는 한국이나 영국이나 마찬가지로 무서워해서 애들 상대해야 하고, 사무직 절대 못하고, 말하는 직업이어야 한다. 유치원생 해봤는데 안 된다. 그런데 늘 문제가, 애들을 상대하려면 중간에 어른이 껴야 한다... 그래서 그냥 개인 레슨으로, 애도 착하고 어머님도 좋으신 경우만 즐겁게 가능했었다.


커리어 상담을 45분 동안 하면서, 공고 하나 보여줬다. 나는 영국에서 최저 시급을 받든 상관 없지만, 그 조건들에 맞지 않으면 반드시 때려치울 것을 알고 있다. 그 조건에 맞아도 때려치울 가능성이 많다. 무대 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 잡혀있는 공연 때문에 올해 제대로 알았다. 그거 때문에 정말 열받는 일이 많았는데, 한 번도 화내지 않았고 때려치울 생각도 안 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해서 돈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내가 봐도 진짜로 '노래하는 일' 아니면 언. 제. 든. 지 다 포기할 사람이다. 영국 비자 신청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는가. 그거 회수는 해야할 거 아닌가. 나는 진짜 얄짤이 없이 뇌 스위치가 한 번 훅 나가면, 작년 6월에 한국 휙 돌아왔던 거 또 그럴 수 있다. 아무도 못 막는다.



'가만히 못 있겠고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한 건, 나만 알 수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만 들으면, 막 신나서 말하기 때문에 진짜 좋은 기회인 줄 안다. 그냥, 나의 저 조건에 맞는 직업이 한국엔 없고 영국엔 있는 게 신기했던 거다. 한국에선 구몬 선생님 해야하나 싶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거기서 만난 인간들이 정 떨어지게 해서 참 싫다. 한국도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 가면 나을 수 있고, 영국도 런던 가서 오빠 친구들 만나면 나을 거다. 오빠 주변에 그런 사람 아무도 없다고, 맨날 어디 가서 이상한 사람들에 데여오니 안타까워했다.


그렇지만 삶이 6개월 남았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계속 한국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살아왔던 거 똑같이 살 것이다. 내 삶이 한 달 남았든, 일주일 남았든, 유튜브에 계속 영상 올릴 거다. 그게 세상에 내 흔적을 남기는 참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올해 앨범을 많이 내게 된 데에는 70%는 걔한테 닿을 방법이 이거밖에 없어서고, 30%는 내가 당장 죽으면 남기고 싶은 게 앨범인데 지금 뭐하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도 걔 때문이 포함이다... 노래를 남겨서 걔가 들어야...) 그래서 좀 쉬었다가 앨범도 계속 낼 거다.


삶이 6개월 남았다고 해도, 나는 봉사 다니고 서점에 책 읽으러 다닐 거다.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가끔씩 저렇게 영국에 취직을 하려고 하는 등 발버둥칠 때가 있다. 그럴 때 다시금 떠올려주려 한다. 시한부 인생이라도 그 일을 할까. 아니라면 뭐 하나 좀만 삐끗해도 금방 집어치울 것이다. 순간의 감정이다.


P.S. 진짜 6개월 시한부 선고 받았으면 걔한테 연락 할 거 같은데, 그건 안 해야 된다. 건강하니까요... 내가 죽거나 중환자실에 있으면 오빠 보고 연락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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