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 그리고 어머니와의 추억

절실한 바람과 기도

by 마들렌

새로운 세상


건강 때문에 직장에서 물러나와 치료를 하는 동안 글을 쓰고,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구경하면서(?) '아하~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신세계를 들여다본 것 같이 짜릿하기도 하였고, 흥분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통증이 잦아들면서 그래도... 사람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되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매슬로우 욕구 이론]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며,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을 시작해야 했고, 내 전문 분야에서 다시 활동하기 위해 구직활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경력도 많은 나로서는, 새 출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어려움을 예상은 했지만,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지원서를 제출한 몇 군데에서는 연락 조차 오지 않았고, 내 마음을 끄는 곳은 3차 전형까지 있는 곳이었다. 나이를 커버하려면 아무래도 시험을 쳐야 하겠다는 생각에 1차 서류 전형에 지원서를 제출하고는 부지런히 <인적성 직무능력검사 시험>을 준비하였다. 집에 있는 전공 관련, 업무 관련한 여러 가지 책을 살펴보기도 하였고, 도서관에 가서 새로운 책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시험 동향도 살펴보았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답답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책만 붙들고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집 주변에 있는 가 볼만한 곳을 검색하다가 [독산성 세마대지]에 가보기로 하였다. 운전하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고, 흙을 밟으며 산책할 수도 있는 곳이라 머리도 식힐 겸 바람을 쐬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후덥찌근한 날씨를 무릅쓰고 핸들을 잡았다. 간간히 유리창에 흩뿌리는 비를 와이퍼로 닦아내면서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를 찾지 못해 잠시 헤매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절 입구처럼 만들어진 문을 통과하였고, 가파르게 다져진 시멘트 길을 헉헉대며 올라갔다.

극기훈련을 하듯 힘겹게 걸어 올라가는 내 옆으로 몇몇 차들이 '스윽' 하고 지나가는 곳을 보니, 저 위에도 주차장이 있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곳에는 [세마대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있었다. 역사적인 내용이 정리된 문구를 훑어보고는, [보적사]라는 아담한 절에 들러서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어 보기로 하였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시주함에 성의 표현을 하도록) 그냥 나오지 않았고, 이왕이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쌈채소를 닮은 지전을 시주함에 공손히 밀어 넣으며, 나의 바람도 함께 빌어보았다.

[오산 독산성 세마대지 안내문과 보적사 입구]

나는 천주교 신자였고, 어머니는 불교 신자이셨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엔 여섯 자식들을 키우며 먹고살기 바빠서 절에 가지 못했다고 하셨다. 내가 20살 넘어서 받아들인 '천주교'라는 종교를 못마땅해하셨던 아버지는, "집안에 종교가 둘이면 우환이 있다."라고 하시며, 혹독한 박해 아닌 박해(?)를 하셨고, 나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각을 바꾸지 않아서 기어이 집에서 쫓겨나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나를 안쓰러워하셨던 어머니는, "딸은 '출가외인'이라 우리 집안 종교와 달라도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는데, 아마도 마음속으로는 나를 인정해 주기로 하신 것 같았다.

그 뒤로 내가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특히 주일(일요일)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시고는 행여나 내가 주간의 피로로 떡실신하여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시며 깨워주곤 하셨다.


그런 나는 어머니의 절 방문에 자주 동행하면서, 이런저런 절에서의 예절을 귀동냥하여 듣게 되었다.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셨듯이 나도 어머니를 지켜드려야겠기에 혼자서 불편하게 절에 가시는 일이 없도록, 함께 하는 날이 많았다. 서로의 믿음문화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면서 말이다.

어머니가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셨다.


야야, 니가 나중에 피정[避靜] 가게 되거든, (안 바쁘면) 근처에 있는 절에도 가서 엄마 생각도 좀 하고, 기도 좀 해주면 어떻겠노?"


라고......


<피정 :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피정의 집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조용히 자신을 살피고 기도하며 묵상하며 지내는 일>


나는 "예스, 마더(mother)!" 하며 흔쾌히 대답을 하였다.

절에만 오면, 그때 어머니와 했던 그 언약[言約]이 떠 오르곤 한다.


절을 나와 나지막한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역사의 한 장소인 세마대에 도착하였다. 아름다운 단층 무늬는 언제 봐도 좋은 것 같다. (사실 내가 단층 무늬를 엄청 좋아한다) 역사적인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고 난 후 발걸음을 돌렸다.

[세마대 : 임진왜란 때 흰쌀로 말을 씻기며 멀리 있는 적에게 성안에 물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였다고 함]


[세마대 : 아름다운 단층 무늬]


공사 중인 일부를 제외한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거리두기를 피해 마실 나온 듯한 여행자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한적한 나무 그늘에 앉아 사색을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그런 모습을 보면서 피서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탁 트인 성벽 끄트머리에 걸터앉자,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에 젓은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우와~ 시원하다!'

두 눈을 감고 한참 동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그동안 쌓여있던 내 안의 답답함이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조용하고, 인적 드문, 초록의 벌판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어디로 피할까 이리저리 살피다가 큼지막한 돌로 만든 남문의 기둥 아래로 뛰어가서 비를 피하게 되었다.

[독산성-고즈넉한 여름 비 오는 날 오후]

지나가는 비를 바라보며 빗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새로운 장소 한 곳을 탐방하고 돌아올 때에, 마음속에는 큰 보물을 얻은 듯한 뿌듯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긴 시간 동안 나는 들어 올리기도 힘든 오른팔 대신 왼손잡이가 되어 보기로 마음먹었었다.

어설픈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포트를 들고, 책을 들고, 청소를 하면서 되도록 왼쪽 팔과 친해지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안간힘을 쓰며 "긍정의 힘"을 끌어 모으려고 노력하였다.

'저에게는 아직 왼팔과 멀쩡한 두 다리가 있사옵니다.' 하면서... ㅋㅋㅋ


나는 내 인생에서 막막하고 힘든 고비가 있을 때마다 <기도의 힘>을 믿고 의지하였다.

어릴 때 읽었던 에디슨(T. Edison, 미국의 발명가, 사업가) 전기집에 있는 명언,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나머지 1%는 하느님께 의탁하곤 하였다.


내가 햇병아리 신자였을 때 어느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하느님께) 맡겨 놓았나? 무조건 해달라카고, 내놓으라고 하면 안된대이!"

깔깔깔 웃으면서 들었지만, 그때에 하셨던 말씀을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뻔뻔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고, 뭔가를 요청해야 할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다. 그래도 힘든 때가 오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끊임없이 기도의 화살을 쏘아 올리며 그분께 도움의 손길을 내밀곤 하였던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그분께 매달리는 것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마치도 보고 계시는 것처럼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