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쌈이 제일 좋다!

어머니의 밥상 -- 쌈 시리즈

by 마들렌

채식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여름이 오면 날마다 종류가 다른 여러 가지 채소를 다듬느라 손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엄마, 웬 채소가 이렇게 많아요?"

"된장찌개에 쌈을 싸 먹으려고 샀다. 니도 한번 먹어봐라." 하시며 분주히 손을 움직이셨다.

호박잎, 우엉잎, 깻잎, 상추, 적상추, 양배추, 쌈배추, 치커리, 케일, 겨자, 근대, 비트, 치콘, 그리고 다시마까지... 거기다가 가지, 풋고추, 오이, 당근 등을 곁들여 먹기 좋게 썰어서 한 상 가득히 차려진 밥상을 자주 보게 되었다.

나는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밥상에 올라오는 각양각색의 채소를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쌈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 오늘도 쌈이네요?"

"오늘은 호박 이파리를 찌고, 내일은 깻잎을 쪄 보고, 다음 날은..." 콧노래를 부르시면서 호박 이파리의 껍질을 벗기고 계셨다. 어머니가 짜박하게 끓인 된장찌개와 쌈은 한 끼 식사로 부족하지 않았지만, 여러 날 밥상에 올라오는 쌈은 나에게는 조금은 지겨운 식단이 되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어머니의 날마다 다른 쌈 시리즈에, 입맛 까다로운 아버지가 전혀 불평 없이 같이 잘 드셨던 것이다.




"어마마마, 어찌 오늘은 온통 풀밭이네요?"

밥상 가득히 놓인 쌈을 보며, 짜증을 내는 내 목소리에 저녁을 드시던 어머니께서 슬쩍 흘겨보시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TV 쪽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히~잉" 나는 짜증이 나서 애처럼 투정을 부렸다.

"어머니,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왜? 내 밥상 내 마음대로 차리는데, 싫으면 넌 다른 거 해 먹어라." 하시며 조금은 무심하게 대꾸를 하셨다.


나물 반찬이 얼마나 속이 편한데, 니는 모르제? 나는 누가 뭐라케도 쌈이 제일 좋다. 고기는 영~ 소화가 잘 안되거든."


이라고 말씀하셨다.


맞다.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어머니가 유독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고집하셨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소식[小食]을 하셨고, 육류를 드시면 잘 체하곤 하셨다. 나도 육류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데, 그것도 어머니의 식성을 닮아서 그런 것 같다.


아버지는 미식가이셨고, 육고기를 엄청 좋아하셨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식성을 가지고 계셨다. 아버지는 당뇨 합병증을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식성이 다른 두 분이 함께 생활하시는 동안 아마도 어머니는 음식 준비를 하면서 어려움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번도 음식 때문에 다투신 적은 없었고, 어머니는 오롯이 아버지의 식성을 존중해 주셨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새색시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어머니(할머니)가 닭을 잡아오라고 하셨단다. 어머니는 닭 한 마리를 데리고(?) 뒷마당에 가서는 한나절이 지나도록 닭을 잡지 못해서 안절부절 하였고, 그 상황을 알아챈 할머니가 오셔서 그 모습을 보시고는 단번에 닭의 목을 비틀어 갖다 주시더라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해 주신 적이 있으셨다.


그 후 어머니는 육류의 냄새가 역하고 싫었지만, 남편과 자식들을 먹여야 했기에 용감해져야 했다고 옛날이야기처럼 말씀 해 주신 적이 있으셨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당신을 위해서는 고기반찬을 준비하신 적이 없으셨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사랑하셨던 어머니는 비슷한 연배의 다른 어르신들보다 훨씬 건강하셨다. 고혈압도 없으셨고, 피도 맑고 깨끗하셨으며, 심지어 관절염도 없으셨다! 마치 청정지역에 사신 것처럼 건강하셨던 것이다.




중년이 지나면서 나 역시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건강검진을 하였을 때도, 어깨 통증으로 여러 가지 검사를 했을 때에도, 나 역시 혈관 상태가 깨끗하고 내부 장기도 상태가 아주 좋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아마도 어머니의 식성을 물려받아서 그런 것 같았다.


현대의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위해서, 또는 자라나는 내 아이들에게 깨끗하고 좋은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 유기농 채소를 애용하기도 한다. 채소마다 가지고 있는 영양소는 다 다르지만,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채반 위의 호박잎

대표적인 채소 중에 호박잎을 살펴보면, 비타민 C는 물론이고, 뼈 건강에 좋은 칼슘이 함유되어 있고, 눈 건강에 도움을 주는 루테인과 베타카로틴도 들어 있어서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채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런 채소들을 즐겨먹게 되면, 변비 예방과 성인병 예방, 노화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도 나이가 들고나서 이 푸릇푸릇한 채소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싱싱하고 푸르른 색상이 답답한 속을 뚫어주기에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나이가 들면서,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게 되지만, 이왕이면 음식을 통해서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대형마트에 가면 웬만한 물건은 다 살 수가 있다. 가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어김없이 나의 눈에 띄는 <쌈 세트>에 비시시 웃음이 나오면서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넉넉한 미소가 떠 오르곤 한다. 대식구를 거느리시느라 손도 크셨던 어머니의 한상 가득히 차려진 제철 채소의 쌈 시리즈구수한 된장찌개가 그리워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