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잔에도 취하셨던 어머니
주류 판매점 앞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딸
내 어머니는 술을 전혀 못 드시는 분이셨다.
술 냄새에도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리는 그런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의 자식들은? 애석하게도 어머니의 유전자를 하나도 닮지 않고, 아버지를 주르르 닮아서 술과는 도무지 거리낌이 없었다!
마치 주신(酒神)을 섬기는 것처럼...
더운 여름 어느 날, 저녁에 어머니가 마실을 다녀오겠다고 하시고는 나가셨다.
동생과 나는 저녁을 먹고 나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는데... 아직 어머니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시계를 보면서 나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동생아, 어머니가 어디 가셨겠냐? 이렇게 늦은 적이 없으셨는데...?"
"집 앞에 나가셨잖아... 친구분들하고 재미난 이야기 하고 계시겠지."
하며 걱정 말라고 하였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슬리퍼를 끌고 현관문을 나셨다.
어머니의 동네 친구분들이라 함은, 쌀집 어머니, 기름집 어머니, 야채 가게 어머니... 이런 분들인데 무엇을 하시느라 여태 들어오시지 않는 것인지...
제일 먼저 쌀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저만치 평상에 여러 명의 여인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저 가운데 어머니가 계실까 하며 가까이 다가갔는데... '어! 이게 무슨 일이고?' 내심 놀랐다. 비스듬히 돌아누워 있는 사람은...
'엇, 나의 어머니!!'
"여 봐라, 장 씨! 딸내미 왔다. 와 안 들어오노 싶어서 찾으러 왔는 갑다." 하시며, 누워 있는 어머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내 표정을 보시고는 멋쩍게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너무 걱정 마소. 우리하고 같이 막걸리 한잔에 설탕 가~득히 태워서 마셨는데, 엄마가 원래 술을 못 마셔서 그런지 취했는가 배." 하신다.
나는 쪼금 마음이 안 좋았다. 술냄새에도 취하시는 어머니가 술을, 그것도 막걸리에 설탕까지 타서 한잔 가득히 마셨다니...
"음~, 우리 딸내미 왔네. 아이코 술 마시면 원래 이렇나? 머리가 빙글빙글 도네. 어지러워서 정신 좀 차리면 갈라꼬 이래 누워 있었제." 하신다.
나는 어머니를 부축해서 집으로 와서 방에 눕혀 드렸다. 어머니는 오시자마자 소용돌이치는 어지럼증을 호소하시며 꿈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 가신 것 갔았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에서 깬 어머니는 두통을 호소하셨다.
"아이고 머리야~. 나는 한잔 먹고도 이래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리는데, 너거는 무슨 술을 그리 마시노!" 하신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술을 마신 후, 그 후유증을 알게 되신 것이었다.
"(아이고, 귀여우신 우리 어머니) 흐흐흐... 어머니,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져요." 하며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얼큰하게 끓인 콩나물국으로 해장하시게 상을 차려 드렸다.
이것이 내가 본 어머니의 딱 한 번의 일탈(?)이었다. 막걸리 한잔으로 술맛은 알게 되셨지만, 그 후에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으셨다. 대신 술을 사랑하는 자식들의 행동은 십분 이해하게 되신 것 같았다.
나도 한때는 꽤 마셨다.
주당 아니라고 할까 봐 열심히도 마셨다. 그것도 몸이 받아줄 때의 이야기이다. 20대 초에는 나의 막걸리 사랑이 넘쳐나서 내 세례명에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언젠가 술을 과하게 마시고 난 다음 날, 출근하려고 버스를 탔는데, 한참을 가다 보니, 내 주위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전부 가장자리에 빼곡히 몰려서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속으로 무슨 일인가 싶었다.
겨우 겨우 사무실에 도착하고 보니 사장님이 내게서 술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고 타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나는 원치 않게 그 당시 한참 유행하던 [후라보노]광고의 한 장면을 찍고 말았다. 술냄새 때문에...
교육을 갔을 때, 어느 강사가 한 말이다.
"회식을 하고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20대는 체력으로 일어나고, 30대는 정신력으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40대는 약물 복용(영양제 등)이 필요한 나이라 부지런히 챙겨 먹어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라고.
지금의 나는 약물 복용을 넘어 적정량을 알고, 조절하면서 적당히 마셔야 할 나이에 이르렀다.
술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오래 동안 함께 해온 먹거리 중의 하나이며, 기호식품이다.
적당히 마시면 기분을 좋게 하고,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과하면 정신을 잃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피해를 입기도 한다. 심지어 패가망신하게 하는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술은 적당히 품위 있게 마셔야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무엇이든 적당히 해야 하는데, 그 선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오늘 장 보러 가려고 간다.
대형 마트에 갈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한 곳에 오래 머무르곤 한다. 그것은 바로 주류 판매점 앞이다.
'ㅎㅎㅎ... 뭐지, 이 뿌듯함은...?'
언제부터인가 나는 여기만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저걸 언제 다 마셔보나?
나는 그냥 애주가이다.
젊은 날의 객기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나이에 접어든...
그리고 새로 나온 술을 한 번씩 마셔보고 즐거워하는... 그냥 애주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