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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y 10. 2022

다시 산티아고로 - 11일 차

다시 만나자는 약속

11일 차


라 포르텔라 - 트리카스텔라

오늘 걸은 거리 : 35.4km

걸은 거리 : 241km

남은 거리 : 140.6km




4 30 처음 생장에서 걷기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한낮의 햇볕도 따스하다고 느낄 정도로 기분 좋은 느낌이었고, 알베르게에서 잠에  때에는 일상복을 그대로 입고 침낭 속에서 잠을 청해야  정도로 일교차가 무척 심했는데, 5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요즘은 햇볕의 세기가 무서울 정도로 강해지고 있다. 길에서 만나는 순례자들도 하나같이 날씨가 너무 덥다며 구슬땀을 흘리며 bar 들어가 시원한 콜라나 맥주를 들이켠다. 5월의 초입도 이런 마당에, 7월이나 8 한여름에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으면서도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정을 시작하는 이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날씨 덕분에 조금 더 출발 시간을 앞당기기로 했다. 아마 여름에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해가 제대로 뜨기 전에 어둠 속에서 부지런히 걸어서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상당히 줄여놓으리라 생각된다.





어제는 데이빗이 저녁식사에 초대해준 덕분에 샐러드와 미트볼 샌드위치로 푸짐하게 배를 채웠다. 데이빗은 미국 엘에이에서 음악 관련 일을 하다가 순례길을 풀 코스로 걷게 되었고, 여차 저차 해서 이곳에 피자집 겸 알베르게를 열게 되었다고 했다. 누가 봐도 예술가라고 짐작할 만큼 멋진 레게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40대 미국인인 그는 '락앤롤 피자'라고 이름 붙인 이 3층짜리 건물을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게 꾸며놓았고, 피자도 기가 막히게 맛있게 구웠다. 그는 내가 먹은 피자 값, 저녁식사, 숙박 그리고 디저트로 먹은 아이스크림 등등 모두 알아서 내고 싶은 만큼 내고 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이런 종류의 호의에 무척 약한 편이어서, 결국 다음날 떠날 때 돈을 넣는 유리병에 50유로 한 장을 집어넣었다.




잠에 들기 전 데이빗은 내게 몇 시에 출발할 예정인지 물었고, 나는 오전 6시쯤 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그 시간에 맞춰 커피를 준비해주겠다고 했다.

일어나서 짐을 싸고 1층으로 내려가니 이미 '락앤롤 피자' 앞치마를 두른 데이비드가 카페 콘레체를 준비해주었고, 이어서 가스버너로 미리 데워놓은 튀김기의 식용유 속에 기다란 츄로스 반죽을 집어넣었다. 츄로스가 쪼로록 하며 튀겨지는 군침도는 소리와 함께 바삭바삭한 갈색으로 익자 그는 츄로스를 집게로 꺼내어 접시에 담고, 막 녹인 따뜻한 초콜릿 퐁듀까지 내어 놓았다. 아침은 걷다가 대충 해결할까 싶었지만, 덕분에 행군에 필요한 고 칼로리의 에너지원을 얻었고,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숙박 손님이 나 혼자 뿐이어서도 더 그랬겠지만, 우리는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캄캄한 아침부터 함께 츄로스를 먹으며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뜨거운 츄로스와 뜨거운 초콜릿 디핑에 혀를 델 뻔했다가, 이 먼 곳에서 같은 예술가를 만났다는 반가운 마음에 배낭을 열어 드로잉 북을 꺼내 데이빗의 얼굴을 슥슥 그려주었다. 그는 내 그림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면서 언젠가 내가 엘에이에서 전시를 하게 된다면, 동료 뮤지션들을 데리고 반드시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위에서는 하루에  번씩 이런 종류의 약속을 한다. 잠시 걷는 속도가 비슷해서 한두 시간 함께 걸은 , 마을의 바에서 콜라를 마시는 동안 대화를 나눈 옆자리의 순례자, 우연히 저녁 식사나 아침 식사 테이블에 함께 하게  사람들.. 이들과 헤어질 때는  '다시 만나자'라며 웃으며 미소 짓는다. 나는  인사가 '언제   밥이나 먹자' 같이 언제든 다시   있을 사람에게 하는 말처럼 재회에 대한 아무런 의심도 없이 건네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안도한다. 우리가 결국 영원히 다시 만나게 되지 못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그렇게  가능성이 현저히 높겠지만), 우리가 만나고 헤어졌던 순간은 여전히  위를 걷고 있을 테니 말이다. 혹여나 견디기 힘들 정도로 몹시 그리운 날이 온다면, 다시  길로 돌아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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