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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Sep 05. 2022

손수레를 밀던 날들

그 무게감을 기억하며

             



내 작업실에는 몇 년이고 험하게 사용해서 파란 칠이 여기저기 벗겨지고, 진득한 박스 테이프 자국이 덕지덕지 남아있는 오래된 이케아 철제 손수레가 구석을 지키고 있다. 작가들에게 가장 애착이 가고 기억에 남는 물건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대부분 자신이 가장 오래 써 왔던 이젤이나 미술 도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 싶지만, 나는 주저 없이 단연코 파란색 이케아 철제 손수레를 떠올린다. 그동안 나를 거쳐 간 엑스-손수레들이 몇 개 있긴 하다. 그러나 터프한 주인을 만난 덕분에 대부분 그 수명을 일찍 달리했고, 오직 파란 이케아 손수레만은 꽤 오랫동안 이 못난 주인을 버텨줬다. 그리고 그 노고 덕분에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긴 휴가를 보내고 있다. 


전시가 잡히거나, 심사 받을 일이 있어 작품을 이동 할 때면 작가들은 보통은 1톤 용달 차량을 이용한다. 자가용이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걸 유지할만한 여유도 없고, 그렇다고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지 않는 이상 차를 몰 일이 그렇게 많지 않기도 하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일반 승용차에 들어가는 사이즈를 초과하는 일이 잦아서, 그때그때 용달차를 수배해 작품들을 옮기곤 하는 것이다. 


어렵사리 전시의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슬프게도 주최측에서 작품 운송을 책임져 주는 경우는 정말 가뭄의 콩 나듯 했다. 심지어 일반적인 상업 갤러리가 아닌 국공립 기관이나 미술관에서도 운송비용을 부담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이 온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쩌다가 어느 갤러리에서 운 좋게도 작가의 작업실로 운송 차량을 직접 보내주는 경우라도 생기면, 그 갤러리는 작가들 사이에서 ‘착한 갤러리’로 소문이 났다.


개인전과 같이 작품 수십 점을 한 번에 옮겨야 하는 경우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적게는 십만 원에서 십 오만 원 정도 지불하고 왕복 용달 트럭을 수배하는 수밖에 없지만, 주로 크고 작은 단체전시회에 적게는 한 점에서 많게는 대여섯 점 정도 그림을 걸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므로 결국 직접 그림을 들고 옮겼다. 그 일이 정말 매번 고역이었다. 손수레에 그림들을 차곡차곡 쌓아 박스 테이프와 노끈으로 단단히 고정하고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거리를 걷는다. 무거운 그림들 때문에 압력을 한껏 받은 손수레 바퀴가 보도블럭 위를 굴러가며 내는 달달거리는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앞에서 거센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넓은 캔버스가 마치 뒤집어진 우산처럼 저항하며 몸이 잠시 휘청인다. 여자저차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 가장 한산한 시간을 골라 맨 뒤 칸에 탑승한다. 열차 맨 끝이나 맨 뒤 칸 기관실 앞의 벽면에 손수레를 최대한 붙여놓고 잠시 한 숨을 돌린다. 이따금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어르신들도 있고, 그림을 짚고 기대려는 사람도 있다. 목적지 근처에 도착하면 지하철까지 왔던 것처럼, 다시 전시장을 향해 행군을 시작한다. 


당시에 크고 작은 단체 전시회에 수도 없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림이 판매되는 일은 정말 기대를 아예 하지 않을 만큼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전시가 끝나면 다시 손수레를 가지고 와서 작품들을 싣고 되돌아가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작품들이 바닥에 쓸려서 그림이 손상이 되는 일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무척 지쳤다. 내가 낳은 자식과도 같은 소중한 작품들이었지만, 전시가 끝나고 불이 꺼진 전시장에서 그림을 떼고, 가져온 빈 손수레에 다시 그림들을 싣고 작업실로 향할 때에는 어쩐지 모진 고생만 시키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신세를 지게 하는 것 같아 내 작업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 동시에, 이 작업들로는 아직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아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비록 시간이 흘러 지금은 더 이상 그 파란 손수레를 꺼낼 일이 좀처럼 없게 되었지만, 그림이 잔뜩 실린 손수레를 힘겹게 밀었던 그 날들의 묵직한 무게감은 아직도 붓을 드는 손끝으로 전해져온다. 내 작업에 대한 그만큼의 책임감으로. 




2016년 어느 아트페어에 걸었던 그림들을 철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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