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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비 Nov 04. 2020

이런 글을 썼더랬다.

망상 노트.

무려 칠 남매를 건실하게 기르시고, 이제는 그야말로 앙상해진 모습의 할머니는


무엇이 그렇게 응어리지셨는지...

무엇을 그렇게 참아내셨는지...


손주의 손을 잡고, 채 터져 나오는 응어리를 억지로 누르시다가 억하고 쓰러지셨다.


온 집안이 뒤집어진 후에야 간신히 다시 정신을 차리시곤,

생판 모르는 남을 보듯 자식, 손주들 얼굴을 훑고야 자리에 누우신다.


내 어머니는, 당신의 어머니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엄마, 내가 누구야?' 하고 묻는다.


사위도, 아들도 못 알아보던 노인이...


'우리 큰 딸...'하고 맑은 눈을 깜빡거린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할머니의 눈빛과,

차마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미소 지으며 할머니를 보던 어머니의 눈빛.


감히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의미들이 담겨 있으리라.


내 기억, 가장 앞서 삶을 걷던 모습들이...

하나둘씩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한다.


할 말을 참다가 혼절하시는 모습에,

그 지난 세월 당신께서 감당하셨을 삶들이 얼마나 클지 감히 더듬어본다.


나이를 먹는다. 


아직은 젊다고 하나, 

그 노랫말처럼 매일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는 된 듯하다.


할머니...


나 그 어릴 적에,

시골집 대청마루에서 떨어져 코가 깨져 울던 때에.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아래서

훌쩍거리는 날 업고 동네를 거닐었잖소.


여름날 방에 누워 잠이 들라치면,

행여 모기 하나라도 닿을까  밤새 향을 피우고 부채질을 했잖소.


나 하나도 잊지 않았다오.


허리도 다 피지 못하고 내 강아지 부르며 버선발로 마중 나오던 걸음도,

그 두터운 손마디가 내 얼굴 훔치던 결도...


나 하나도 잊지 않았다오.


가시려는 걸음, 남아있는 사람들이 어찌 그 걸음 잡겠냐만은...

가기 전에 다 내려놓고 가시오.

외로움도 노여움도 다 주고 가시오.


한 평생을 손마디가 나무토막이 되는 지경으로 쥐고 오셨으니...

이제 그거 다 놓고 가시오.


할머니 아들도 딸도 쓰리지 않게...

먼저 간 할배 그리워 가는 걸음 서두르지 마시고,

신나게 웃고 쉬다가 다 놓고 가시오.


여기서 조금만 여기서 더 쉬다가오.

조금만 더 웃다가 가오.


.

.

.


예전에 적어둔 글귀를 옮긴다. 

내 바람이 통한 탓인지 아직 할머니는 가지 않으셨지만,

글을 적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과연 같은 마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감정에 취했던 아련함과 무덤덤한 현실을 저울질한다.

적어둔 글처럼 절절하게 할머니를 대했는가.

또 어쭙잖게 바쁘다는 핑계로 내 현실에 숨었는가.


스스로에게 깊은 혐오를 느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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