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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명국 Nov 05. 2015

게임 장르의 진화, 액션에 머물다

장르 구분이 안되면 하이브리드라고 외치자

게임 장르 구분, 과연 의미 있을까?



장르의 구분에 대해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민감했던 적이 있었다. 게임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이건 무슨 장르, 저건 무슨 장르… 이런 식으로 구분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이유가 있었다. 알콩달콩 연애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로맨스 장르 영화를 언급하면 대번에 흥미 없다는 표정이 읽힌다. 그러면 자연스레 다른 장르의 영화로 이야기 방향을 돌릴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 지다. 블루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바로크 시대 클래식 음악을 얘기하면 상대의 눈 속에서 심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무관심함을 표시한다. 즉, 장르 구분에 몰두했던 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장르로 큰 가닥을 잡고 이야기를 시작할 경우 좀 더 쉽게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춘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바하 평균률 얘기하는데 Peace를 외쳐보자. 독일어로 욕먹을지도...]


40~50대 아주머니에게는 자녀들 성적이나 학원 이야기를, 30대 초 중반의 남자들과는 맛있는 안주가 있는 술집 이야기를, 20 ~30대 여성분들과 신상 구두나 가방, 인기 있는 파스타 가게, 아이라인을 기가 막히게 지워주는 리무버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 서먹한 분위기를 보들보들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난 20~30대 여성분들과 당최 보들보들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건가.


내가 무슨 대단한 이야기꾼도 아니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가면서까지 이야기의 소재를 찾는 상냥한 성품도 아닌데, 괜히 장르에 대해 민감하다 할 정도로 구분을 하려고 꽤나 노력했던 것 같다. 근데 이 짓(?)이 별 의미 없는 일이라 그만둬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 건 게임 때문이다.


한 때 직업상의 이유로 좋아하는 게임을 추천할 일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 스포츠, 어드벤처, 대전 액션,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국가 경영 시뮬레이션……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를 알면 추천해줄 게임의 범위가 대폭 줄어들고, 알고 있는 게임 중 해당 장르의 인기 게임이나 독특한 요소가 있는 게임들을 추천해주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좋은 게임 알려줘서 고맙다’라는 인사를 받고 내심  흐뭇해했다.


정말 푹 빠져서 즐겼던 게임 중 Battlestation (배틀 스테이션)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전투기, 전함을 타고 2차 대전 배경의 미군, 혹은 일본군이 되어 적을 쓰러뜨리는 게임이다. 근데이게 참 묘한 게임이다. 폭격기, 전투기, 뇌격기 등은 물론이고 어뢰정, 구축함, 순양함, 전함, 항공모함까지 컨트롤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뇌격기로 적의 전함에 어뢰를 선물하다가 전투기를 타고 공중전에 돌입하고, 나중에는 전함으로 갈아타 함포를 쏠 수 있었다..


[ 함포사격하다가 싫증나면 비행기로 갈아탄다. 하이브리드 전쟁 게임 배틀스테이션]


적절한 2차 대전 배경의 스토리와 맞물려 꽤나 몰입해서 즐겼던 배틀스테이션….. 장르 구분을 당최 못하겠더라. 단순한 액션 게임이라 치부하기에는 각 전투  무기마다 차이점이 나름대로  세분화되어있었고 이걸 비행 시뮬레이션이라 해야 할지, 전함 시뮬레이션이라 해야 할지도 헷갈렸다. 우선 시뮬레이션 장르로 분류하기도 참 애매하다. 구현해 놓은 무기와 장비는 실로 다양했지만 극도의 현실성 넘치는 기기 운용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이 재미있는 게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기가 참 힘들었다. 게임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다 보면 장르를 기반으로 한 게임의 재미 어필이 불가능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뭐 내가 전도해 봤자 얼마나 했겠느냐만.



대세는 액션 게임이다.


시간을 쭉 뛰어넘어 현재로 넘어오자.


올해 GOTY의 강력한 후보로 일컬어지는 게임들은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상당수가 액션 게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배트맨 : 아캄 나이트, 메탈기어 솔리드 5, 위쳐 3가 바로 그들이다.


[ 올해 게임계엔 중년이 풍년이다]

백 뷰 혹은 1인칭 시점에서 적과 역동적인 전투를 벌인다는 플레이 방식의 장르 구분에서는 세 게임 모두 액션 게임에 속하지만 위쳐 3는 당당히도 정통 RPG 게임의 향취를 진하게 풍긴다. 각종 재료를 모으고, 아이템을 제작하고, 스킬을 분배하며, 퀘스트를 받고 진행하고 완료한다. 메탈기어 솔리드 5는 잠입 액션 게임이라는, 액션 게임의 하위 장르 개념으로 구분된다. 아마도 순혈 액션 게임이라면 배트맨 : 아캄 나이트가 그 대상에 가장 근접하지 않나 생각된다. 하지만 그 배트맨 : 아캄 나이트도 간단하게나마 스킬을 분배하고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RPG의 성장 및 육성 개념을 탑재하고 있다.


이제 단순 장르 게임은 없다. 각 장르의 장점을 취합하는 가운데 고화질의 그래픽과 음향 효과, 그로 인한 높은 몰입감, 육성의 재미와 장대한 스토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 장르 게임이 대세다. 위쳐 3의 경우 궨트라는 카드 배틀 게임 삽입으로 TCG 게임의 전략성과 수집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두통, 치통, 생리통 까지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복합 종합 진통제처럼 액션 장르의 짜릿한 손맛, RPG의 육성, TCG의 전략성으로 무료함을 해결해 주는 복합 종합 장르 게임인 것이다.


꽤나  쓸데없는 글이 되고 있지만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러한 복합 장르의 게임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장르가 현재 액션 게임이라는 외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왜일까? 왜 하필 액션 게임일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참 좋은 사람이 있다. 성격도 좋고, 말도 조리 있게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하지만 몇 번 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 전에는 그런 내면의 장점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것이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1차적으로는 상대의 외모, 옷차림 등 외적인 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 난 해맑은 장동민 팬 ]


게임의 재미, 즉스토리, 육성과 성장, 수집 등 그 수많은 게임의 재미 요소들을 포장하는 것은 외형, 즉 그래픽이다. 이 그래픽이 가장 어필할 수 있는 게임 장르는 바로 액션 게임이라 생각된다. 화려한 광원과 그림자 효과, 현실감 넘치는 텍스쳐, 역동적인 움직임, 호쾌한 타격감이라는 옷을 입고 RPG, 어드벤처, 시뮬레이션 장르의 재미 요소가 장기를 구성하고 있다.


즉, 복합장르의 재미 요소를 액션 게임의 외형으로 포장한 것인데 가끔 화려한 외형이 게임 내면의 재미를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 급부로 아주 재미있는 요소를 지닌 게임인데 그래픽이 철 지났다는 이유로 인해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후자의 경우가 안타까운 경우다.



다음에는 과연 어떤 장르가 대세?


[ 가상 현실 이론의 양대 산맥 : 장자와 Jamiroquai ]


장르 구분의 실효성이나, 복합 장르의 시세 확장이나, 사실상 게임의 본질은 재미에 있으니 재미만 있으면 끝이다. 하지만 음악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고, 소설이 그렇듯, 장르가 혼합되는 양상을 보이다가 또 어느 시기가 되면 순수한 장르로의 회귀할 지 모른다. 특히 게임쇼마다 화두로 제시되는 가상현실 (Virtual Reality)기기가 곧 상용화 된다. VR기기가 보급되면 기기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 방식보다는 아주 원초적인 게임들이 초반에 선보여질 듯 하다. 대전 액션, 연애 시뮬레이션, 어드벤쳐 등 게임 장르의 원형이 다시 인기를 끌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가상 현실 기기가 상용화되면 이제 인기 게임은 어느 장르에 머무르게 될까? 연애 시뮬레이션이 므흐흣한 호기심으로 초반을 장악하고 백뷰 시점 혹은 1인칭 시점의 액션 게임이 VR의 매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며 그 뒤를 잇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시뮬레이션 게임류는 그 옛날 어드벤처 게임과 같은 몰락의 수순을 밟게 되는 건 아닐까? 혹은 수많은 계기판을 눈앞에 두고 하나 하나 컨트롤하는 극한의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 기장이 된 나에게 커피를 가져다 주는 스튜어디스의 숨결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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