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그 묵직함에 대하여

영화 리뷰 <우리들>

by 골방우주나

*당연히 개인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11살 나의 친구

11살을 추억하자면 어떤 기억이 떠오를까. 나의 11살엔 대부분의 시간을 몇몇 친구들과 보냈다. 때로 편을 갈라 축구 같은 걸 할 때면 조금을 뛰다가 이내 나의 무리들과 함께 딴짓을 하곤 했다. 몇몇과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기에 같은 반 안에서도 친한 친구와 어색한 친구가 있었다. 마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 친구들은 나의 무리, 저 친구들은 다른 무리라는 '분리'를 말이다. 어느 날 '자연스러운 분리'가 위기를 맞게 되었다. 발단은 다른 무리의 친구가 나의 무리를 놀린 것, 절정은 의리의 주먹이었다. 후에 무리의 친구 중 한 명이 이사를 가버리고 다른 친구들과는 반이 갈린 후 무리는 자연스레 달라졌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곳에 언제나 함께할 이들을 찾는다. 인생의 동반자부터 친구의 친구의 친구처럼 얼굴만 아는 사이도 생긴다. 때론 강남에 갈 일도 있을 수 있다. 요즘에 당신이 담아온 관계가 혹은 인간관계라는 단어가 마음속 어딘가에서 신경 쓰이게 끔 한다면, 이 영화를 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이 영화, [우리들]은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혹 영화에 대해 짧은 후기를 남기자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 말하고 싶다. '영화관을 나와 정처 없이 길거리를 떠돌 것' 적어도 나는 30분을 떠돌다가 카페에 안착했다. 심란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는 화면에 잡히지 않는 아이들의 소리로 시작한다. 이내 화면이 밝아지면서 소리의 저 멀리 서있는 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두 팀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무리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이 약간의 거리감이 마치 마음의 거리와 같을까. 무리는 아이와 한 팀이 되기 싫다는 것을 감추지 않고 말로 드러낸다. "너 금 밟았어. 빨리 나가." 일상에서 보기에 마냥 간단해 보이는 일들에서도 아이들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휙 지나쳐 보고 말아버리는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복잡하고도 위태로운 감정들을 절대 알 수 없다. 약간의 시야를 바꿈으로써 감독은 아이들의 세계를 본다. 'The world of us', [우리들]의 영문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는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단순히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판단하는 어른들의 관점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관점으로 들어가 본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말을 실현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숨었는지 모를 동심을 찾아내어 어린아이들의 시선에 맞추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연기력, 그런 좋은 순간들을 포착해내는 촬영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영화는 이런 의문점들을 특이한 방법으로 해결한다. 아이들에게 대본이 아니라 상황을 주고 연기를 시켰다고 한다. 모든 촬영이 애드리브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초반 몇몇 장면에서는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또한 장면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촬영자의 마음이 약간의 화면 떨림으로 느껴졌다.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장비를 손에서 놓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태도를 '보라'..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 대사가 들어가니 주의하세요!






사실 [우리들]의 영역, 그러니까 '우리들'이라는 의미에 나와 당신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며 내가 가진 기억들이 몇몇 떠올랐다. 아이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내가 마주 보았던 이의 표정에 겹쳐진다. 자연스레 상황을 '보여 주는' 경험에 내가 느꼈던 사람을 대할 때의 당혹스러움이 기억났다. 지아가 선과 선이 어머니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등을 돌리는 장면부터 '상대가 나를 오해하거나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을 느꼈다. 보라와 함께 가는 지아를 보는 선이의 표정을 보았는가.


아니 나는 그게 아니고...


선이가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나는 언제나 꼿꼿이 바른 자세로 있고 머리를 단정히 넘긴 선이가 '항상' 말을 잘 못 건넨 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저 말은 선이가 한 말들이 잘못 전달된 것이 아니라 선이의 말을 자르고 판단해 버린 다른 아이들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본심을 전하기 위해 선이는 저 말을 꺼낸다. 상대가 오해하고 끊어버린 관계를 다시 이어보려는 노력의 말인 것이다. 저 말이 쓰인 여러 장면 중 현장 학습을 간 공원에서 선이 지아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장면에서 지아는 너는 말을 그렇게 하는 게 더 나쁘다고 한다. 답답하게 구니까 왕따나 당하는 거라고 한다. 선이의 마음은 또 그렇게 '...'처럼 전달되지 못한 채 단절 당하고 만다.

끝까지 남은 봉숭아 물과 천진난만의 아이콘 강배우님 출처 : 네이버 영화


관계는 당연히 혼자서 가지는 게 아니다. 어떤 관계에서든 서로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복잡하게 뒤엉킨 관계에 있으면 두려움에 가려 상대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 평소에도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안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고 어떤 말과 행동들이 오갔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관계에 있어서 벌어진 모든 일은 나와 상대의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주요 인물들을 '억지로' 모아놓은 '화해의' 공간에서도 오가는 건 변명과 꼬리물기뿐이다. 문제와 오해들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그렇게 답답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가득 찬 선이에게 두 번의 전환이 일어난다. 첫 번째는 역시 천진난만한 동생이 던진 말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이다. 부글부글 끓는 속내를 참아가며 위태로운 상태의 선이가 저 말을 듣고서 "어..어?" 한다. 친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동생의 입으로 전해 들은 것이 덜컥 선이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을까. 그럼 언제 놀아.. 소중히 여기는 친구가 때리더라도 나도 때리고 다시 친구도 때리면 우린 언제 놀까.
그리고 난 후 영화의 처음과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아이들이 다시 편가르기를 하고 자신의 편을 꾸려나간다. 그리고 선이가 처음 당했던 배척처럼 지아가 배척당한다. 팀에 들여주기는커녕 함께하기 싫어서 불만 가득히 쏘아댄다. "너 금 밟았어. 빨리 나가" 자신이 당한 배척의 행위들을 받는 지아를 보고 선이가 말한다. "내가 봤는데 금 안 밟았어." 그 장면을 보는 선이는 짧은 순간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우리가 그 상황이 되어 선이의 입장에 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대에게 전하는 진심, 그리고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내 마음을 돌아보고 친구와 함께 마음이 통하는 것 그것이 영화에서 느낀 '진심'이었다.

마음이 통했으면 좋겠어.


서로를 다시 마주 보아야 하는 어려운 과정.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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