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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29. 2022

침거품이 고인 입

담글방 두번째 글-내가 버린 스승들

침거품이 고인 


햇빛이 쨍하고 더운 바람이 불던 날 나무 그늘에서 개들을 쓰다듬던 스승을 처음 만났다. 내 몸의 두 배만 한 개들의 몸에서 털이 풀풀 날렸다. 나는 여덟 살이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흐릿하다. 어릴 때부터 비염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재채기를 했던가? 스승이 개를 만져보라고 했나? 젋은 선생과 커다란 개 두마리가 뜨거운 햇살과 참으로 잘 어울려 그림 같다고 생각했던건 기억난다.


나는 일반 초등학교 교실에서 앉아있는 것을 잘 버티지 못했다고 한다. 스승은 모부가 그런 나를 데리고 간 기숙학교의 농사, 체육, 목공 선생이었다. 스승은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스승을 어떤 방식으로 좋아하는지 유심히 보고 베꼈다. 스승은 쉽게 화내고 쉽게 야단을 쳤다. 스승의 화내는 모습을 매일같이 보아도 누워있는 스승의 배에 올라타거나 앉아 있는 스승의 등에 기어오르는 것을 서슴잖았던 건 그만큼 스승이 다른 선생님들보다 친근했기 때문이었다. 스승은 우리를 잘 놀아주었다. 우리를 잘 웃겼다. 학교 홈페이지에 쓸 사진을 찍는 날 목도리도마뱀 흉내를 열심히 내며 우리를 웃겼던 스승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됐다. 나는 그것이 왜 웃긴 줄 모르면서도 따라 웃었다.


스승은 언제나 면도한 지 하루 이틀 지나 새로 올라온 수염이 부숭부숭 나 있었다. 감지 않아 떡져서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키는 평범했는데 배가 남산만 했다. 언제나 담배를 피우고 핀다는 사실도 냄새도 숨기지 않았다. 우리가 스승의 화를 돋우면 담배를 피우러 가는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승이 살던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은 학생들을 모두 집어넣고 남는 가장 끄트머리 기숙사 한 칸이었다. 너구리 굴 같이 컴컴한 곳에 담배 전 내가 진득했다. 컴퓨터가 올라가 있는 책상의 가장 아래 칸 서랍에 10개 묶음 비닐로 포장된 담배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같이 들어간 오빠들이 다 안다는 듯 담뱃값이 오르기 전에 쟁여두는 것이라 속닥였다. 우리를 쿰쿰한 침대에 앉힌 스승이 먼지 쌓인 모니터로 보여준 영화를 기억한다.


스승의 손은 목공과 농사를 하며 베긴 굳은살로 아주 거칠었다. 그 힘센 손으로 우리의 어깨를 꾹꾹 누르며 안마해주었다.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댈 만큼 강한 힘을 주어 목부터 등까지 눌렀다. 스승에게 안마를 받고 나면 아주 시원하고 따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 안마가 정말로 좋아서 우리는 늘 안마해달라고 졸랐다. 스승은 안마란 단순한 마사지가 아니라 해주는 사람의 기를 받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에 충전이 필요하댔다. 내 모부의 영향으로 종교도 없고 미신도 귀신도 그다지 믿지 않던 내가 인간 몸의 기운 같은 것에 대해서 믿을 리가 없었다. 스승이 진짜로 ‘기’를 체험시켜 주기 전까지는. 스승에게 ‘기’를 체험했다는 아이들의 열띤 후기를 듣고도 반신반의하는 내게 스승은 어느 날 정말로 ‘기’를 느끼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스승은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어 앉아서 한동안 집중했다. 아무 말 없이 집중하던 스승이 천천히 두 손을 몸의 위아래로 내리고 올렸다. 나는 그 진지한 장면이 좀 민망했다. 쭈뼛거리는 내게 스승이 한 손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스승의 두 손이 내 손의 위아래로 위치했다. 스승의 후끈한 두 손 사이에서 나는 그걸 느꼈다. 정말로 무언가, 스승의 손과 손 사이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연결하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것이 내 손 가운데를 통과했다. 경이롭고 기묘한 감각이었다.


스승은 밥도 많이 먹었다. 기숙학교답게 학교에서 삼시세끼를 모두 먹었던 우리는 고기반찬이 나올 때면 환호성을 지르고 고기가 없는 날엔 대놓고 실망스러운 한숨을 쉬었는데, 그런 식으로 굴지 말라고 자주 혼났다. 밥을 만들어주는 선생님께 큰 실례라며. 스승은 우리에게 학교의 넓고 넓은 부지를 뛰어다니는 개들과 돼지가 다른 것이 뭐냐고 물었다. 우리가 개고기를 먹어봤다는 스승의 말에 경악하며 불쌍하다는 아우성을 지른 후였다. 나는 둘이 다르다고 분명히 믿었지만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똑같은 레파토리가 나올 때마다 어물쩍 넘어갔다. 어느 비 오는 날 교장 선생님의 눈먼 차바퀴에 치여 강아지 두 마리가 쓰러지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수의사를 부르라고 매달렸을 때도 스승은 우리만큼 안타까워하지는 않았다. 밤이 늦도록 수의사를 기다리는 우리, 여자애들이 너무 과하게 반응한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상대적으로 훨씬 멀쩡하게 구는 오빠들과 선생님들이 매정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스승이 또다시 차에 치인 강아지와 저녁 식사로 나온 닭이 무어 다르냐고 물을까 봐 무서웠다.


무엇보다 우리가 스승을 사랑했던 것은 스승이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에게서 들을 수 없고 들으리라 기대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찮은 단어 하나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줄줄이 말하는 스승의 입가에는 자주 침이 거품으로 고였다. 스승은 정말 잡다한 것들까지 알고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주었다. 왜요-왜요-왜요-그럼 왜요-로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에 지치지 않았다. 전에 들었던 것도 같은 그 이야기들을 우리는 또 해달라고 졸랐고, 스승은 질리지도 않고 이야기하고, 우리는 질리지도 않고 들었다.


스승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일제강점기 때 돈을 많이 번 사악한 인간들의 후손이 차를 몰고 길가는 아가씨들을 향해 ‘야, 타!’라고 말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야타족에 관해서 경멸스런 어투로 이야기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쉴 새 없이 떠드는, 다이어트가 영어단어인 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재밌다는듯 다이어트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어떤 건지 설명했다. 우리의 꿈을 해석해주고 어린 우리의 미숙한 연애사와 얕고 다양한 짝사랑에 대해 모조리 듣고 첨언했다. 우리가 자는 좁고 벌레가 나오는 기숙사의 기원에 대해, 우리가 달리는 학교 흙길 아래 원래 어떤 무덤과 뼈들이 잠들어 있었는지를, 자신이 보았던 귀신과 기현상에 대해 말했다. 가공식품의 해로움과 스마트폰의 유해성과 지구생태계 파괴의 잔혹함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 안마당의 느티나무와 대나무에 대해, 앵두와 감을 언제 따먹어야 완벽한지에 대해 말했다. 따로 사감이 없어서 선생님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사감 역할을 했는데, 스승이 밤을 지키는 날에 열심히 조르면 스승은 우리가 졸려 참을 수 없어질 때까지 대화해주곤 했다. 무엇보다도 스승은 초등학생들에게 섹스에 대해 말해줬다. 심지어 19금일 게 분명한 공포영화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우리가 어떻게 그 강렬함을 뿌리칠 수 있었겠는가? 스승은 남자애 여자애 가릴 것 없이 인기가 많았다.


모두 다 스승을 좋아했지만, 여자애들의 좋아하는 방식은 좀 더 노골적이었다. 여자애들은 마치 각자의 아빠에게 하듯이 몸으로 스승에게 매달렸다. 진짜 아빠에게 그 정도로 친근하게 굴지 않는 애들도 그랬다. 우리의 스스럼없는 행동을 몇몇 어른들은 불편해했다. 물론 어느 쪽도 그런 의도 하나 없는 걸 알지만 좋게 보이지 않으니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교장 선생님이 그랬다는 스승의 말을 여자아이들은 물론 이해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마음과 몸으로 치대며 스승을 좋아했다. 우리는 누워있는 스승의 위로 올라타서 마구 발을 구르곤 했다. 잘 몰랐으니까. 어쩌면 모른척하고.


몸으로 치대는 것보다 스승과 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건 너무 이상한 것 같았는데, 나보다 먼저 학교에 와서 스승의 제자가 된 친구들은 다 자연스레 여겨 나도 애써 익숙한 척을 했다. 스승은 정말 가릴 것 없이 이야기했다. 내 가장 먼젓번의 성 지식은 스승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동의 없는 성관계는 절대 안 돼요’ 같은 재미없고 선생님도 의무적으로 하는 성교육 말고, 자위와 원나잇과 야동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좀 변태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핸드폰도 없었던 초등학생들에게 그보다 자극적인 것이 없었다.


스승은 스스럼이 없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많이 나가는 만큼 들어오기도 많이 들어왔는데, 학생 수가 늘면서 분위기도 점차 변했다. 스승은 1학년부터 학교에서 살았던 친구들과 갓 전학 온 학생들이 다르다고 말했다. 전학생들이 학교의 분위기를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바꾸고 있다고 화를 냈다. 전학생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나는 전학생 언니오빠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눈치를 봤다. 스승은, 마음 같아서는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도입하고 싶댔다. 계급을 나누고 싶다고. 물론 반농담이라고 했지만 스승의 화내는 어투도, 카스트제도란 것을 대충 이해하고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스승을 보는 언니오빠들도 농담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나는 스승이 입을 다물었으면 했다.


스승이 나보다 한 살 많던 언니의 가슴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성욕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다. 스승은 나도 A의 가슴을 만지고 싶지만 사회적인 학습으로 인해 참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열 살, 어쩌면 아홉 살이었다. 스승이 두 손을 내밀고 무언가를 움켜쥐듯 손가락을 굽혀 움찔거리는 동작을 했다. 언니는 말이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그 말이 굉장히 징그럽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 때 나는 스승을 버렸다.


나는 스승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모르는 것이 훨씬 나을 이야기들을. 그것이 만약 사실이 아니더라도 굳이 상대에 대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주제들을. 내가 졸업하기 몇 년 전 스승은 교장과 틀어진 이해관계 때문에 학교를 나갔다. 그즈음 나는 스승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중이었다. 과거에 내가 스승을 사랑했던 만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스승과 학교가 하나라고 생각했다. 스승은 학교에 살았기 때문에 방학 중 내 밭의 작물을 보살피라는 숙제를 받고 학교에 갔을 때도, 친구들이 보통 입교하는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입교했을 때도 언제나 늘 학교에 있었다. 집으로 가는 차에서 운동화로 갈아신는 것을 잊고 다시 돌아갔을 때도 스승은 거기 있었다. 스승이 학교에서 사라지면 내가 큰 허전함을 느낄 줄 알았다. 물론 아니었다. 스승이 서서히 불편해지는 중이었고 나는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잘 잊는 편이었다. 목공 수업은 사라지고 농사는 선택으로 바뀌었다. 개들은 계속 새끼를 낳고 나는 강아지를 던지며 노는 애들에게 화를 냈다. 나는 화가 많아졌다.


스승이 학교를 나가고 일 년쯤 후 잠시 학교에 들렀을 때, 나는 그가 왔다는 소식에 반가워하지도 교실을 뛰쳐나가지도 않았다. 스승을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속이 불편했다. 스승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다. 나 혼자 앉아있던 교실 문을 스승이 열었는데 나는 책에 고개를 박고 몹시 집중하는 척을 했다. 그날 밤 기숙사에서 뜬눈으로 스승에 대해 곱씹고 또 곱씹었다. 스승이 했던 말. 스승이 얼굴. 스승의 손. 스승의 입. 스승의 말. 말. 말.


그 수많은 말들. 아주 아주 많은 이야기들.


내 졸업식에 스승도 왔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를 보면 수치스러웠다. 졸업식이 모두 끝나고 스승은 잠시만 남으라고 했다. 소란스런 바깥소리를 들으며 텅 빈 공간에서 어색함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발을 꿈지럭대는 내게 스승은 작은 비닐을 내밀었다. 이런걸 좋아할는지 모르겠다며 졸업선물이라고 내민 것은 하도 주물러 구겨진 포장 비닐에 들어있는 게르마늄 팔찌였다. 받고 싶지 않아 잠시 망설였지만 거절할만한 용기는 없었다. 스승의 관심을 차지하고 싶어 끙끙대던 어린 내가 머쓱해하며 싸구려 팔찌를 내미는 늙은 스승 위로 겹쳤다. 나는 끔찍한 불편함 위로 묘한 우월감이 스미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기분이 더러웠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팔찌를 싸구려 포장지째로 창문밖에 던졌다. 산성비가 내려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으면 했다. 스승은 산성비에 관해서도 이야기했고, 우리는 비가 올 때 비를 맞지 않으려 교실과 식당 사이를 숨 한번 쉬지 않고 달려가곤 했다. 그러다 넘어져서 무릎이 온통 피와 모래 범벅이 되어 우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스승은 소독약을 들고 조심스럽게 닦아줬다. 나는 따가움을 견디지 못하고 발버둥 쳤다. 스승은 참지 못하는 나를 붙잡아 마저 치료하지는 않았다. 내 무릎은 그맘때 넘어진 상처 때문에 만들어진 흉들로 얼룩덜룩하다.


시간이 갈수록, 시간이 점점 더 흐를수록 문득 그가 생각나는 순간에 나는 수치스러워졌다. 그가 했던 말들과 내가 했던 말들,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 내가 얼마나 스승을 좋아했는지, 얼마나 얼마나, 그 모든 것들이 수치스럽고, 입가에 거품을 만들어내며 말하는 그 입, 그 입술, 점점 확대되는 입, 거품, 거품. 징그러워서.


그에게서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 중 아주 자극적인 것들 빼고는 거의 잊었다. 그가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감동적이어서 감탄하고 놀라워했던 이야기들도 들었던 것 같다. 순했던 순간들은 휘발되고 가장 선명한 건 공포영화다. 어둡고 좁은 그의 방 한 칸 기숙사에서 담배 전 내로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끼며 보았던 영상.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태양 앞을 여행하는 검은 기차. 번쩍이는 붉은 경고등에 맞춰 냉동 캡슐에서 깨어난 인간들. 어느 외딴 행성으로 기차는 추락하고, 인간들이 해변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들은 곧 찾아온 어둠 속에서 날개 달린 괴물들에게 갈가리 뜯어먹힌다. 날카로운 부리에 상체와 하체가 찢어지며 새된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보면서 친구들과 목이 쉴 때까지 소리 질렀다.

 때문일까? 나는 웬만한 고어 물은 즐겨   있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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