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사람과 친구하기] 고구려 검모잠

잿더미 속에서 고구려의 부활을 외친 사람

by cm

[삼국시대 사람과 친구하기]가 드디어 마지막화를 맞이했습니다. 마지막을 장식할 친구는 고구려의 망국을 지켜보면서 부흥을 외쳤던 인물입니다. 오늘의 친구는 고구려 부흥운동의 상징이자, 끝까지 조국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불굴의 장수 검모잠(劍牟岑)입니다.


하루아침에 700년을 이어온 위대한 제국이 멸망했습니다. 왕은 포로로 끌려가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자랑스럽던 평양성에는 적국의 깃발이 나부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절망의 순간, 무너진 잿더미 속에서 불씨를 그러모아 다시 거대한 횃불을 피워 올리려 했던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검모잠입니다.


668년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고구려를 지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검모잠과 그의 동료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검모잠은 당나라의 핵심 병력이 잠시 빠져나간 틈을 타 과감하게 수도 평양성을 탈환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둡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장왕의 외손자인 안승을 찾아내어 고구려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죠. 망국의 폐허 위에서 '고구려가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 세상에 벼락같이 선포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라의 완벽한 부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분노한 당나라 대군이 몰려오자, 검모잠과 부흥군은 어쩔 수 없이 남쪽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새롭게 자리 잡은 곳은 고구려의 별도(別都, 또 다른 수도) 역할을 했던 한성(황해도 재령 일대)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검모잠은 안승을 다시 한번 왕으로 추대합니다. 어떻게든 고구려 재건의 정통성과 명분을 굳건히 지켜내려 했던 검모잠의 눈물겨운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러 역사학자들은 검모잠을 고구려의 영토 안에서 고구려 왕실의 핏줄을 이어받은 왕을 세워 완벽한 독립국을 재건하려 했던 뼛속 깊은 '정통론자'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에서 찾아왔습니다. 부흥군을 이용해 당나라를 견제하려던 신라가 "우리 땅(금마저, 지금의 익산)으로 들어와 나라를 세우라"며 유혹의 손길을 내민 것입니다. 끊임없는 전쟁에 지친 안승은 신라의 그늘로 들어가 안전하게 목숨을 보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꼿꼿한 원칙주의자였던 검모잠은 맹렬히 반대했습니다. "고구려의 재건은 반드시 고구려의 땅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찌 남의 나라 밑으로 들어가 신하 노릇을 한단 말입니까!"


이 치열한 이념의 대립은 결국 끔찍한 파국을 맞습니다. 신라로 가고 싶었던 안승이 자신을 왕으로 세워준 은인, 검모잠을 암살해 버린 것입니다. 부흥운동의 심장이었던 검모잠이 허망하게 쓰러진 후, 안승은 무리를 이끌고 신라로 투항해 버립니다.


비록 그의 몸은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고구려 땅에서 차갑게 식어갔지만 그가 남긴 저항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를 잃고 한성에 남겨진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의 제안을 거부하고 무려 673년까지 당나라에 맞서 처절한 항전을 이어갔습니다.


검모잠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체념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타협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나의 가장 소중한 신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가? 멸망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그의 뜨거운 심장 소리가 1,300년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검모잠이라는 친구와 더 가까워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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