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사람과 친구하기] 백제 성충

망국의 어둠 속에서 홀로 간언을 한 자

by cm

[삼국시대 사람과 친구하기]도 어느새 2편 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2편을 어떤 주제로 쓸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망국의 아픔을 겪은 고구려와 백제인 각각 한 명씩과 친해져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우선 백제의 친구를 알아보겠습니다. 백제의 피날레를 장식할 마지막 주인공은 무너져가는 조국과 타락해 가는 군주를 향해 목숨을 걸고 마지막까지 직언을 멈추지 않았던 백제의 가장 고독하고도 충직한 친구, 성충(成忠)입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마지막 군주 의자왕은 즉위 초반만 해도 해동증자(海東曾子)라 불릴 만큼 총명하고 효심이 깊은 성군이었습니다. 그는 신라의 40여 개 성을 빼앗으며 백제의 전성기를 다시 여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잦은 승리는 자만심을 낳고 말았죠. 권력의 정점에 선 의자왕은 점차 정사를 멀리하고 궁궐을 화려하게 치장하며 향락에 빠져들었습니다. 충신들의 자리는 달콤한 말로 왕의 눈과 귀를 가리는 간신들로 채워졌습니다.


이 아슬아슬한 망국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온몸으로 막아선 이가 바로 좌평(佐平, 백제의 최고 관직) 성충이었습니다. 모두가 왕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침묵할 때, 성충은 왕의 옷자락을 붙잡고 뼈아픈 직언을 쏟아냈습니다. "전하,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사치와 향락을 멈추시고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권력의 단맛에 취한 의자왕에게 성충의 충언은 그저 귀에 거슬리는 소음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크게 분노한 왕은 충신 성충을 차가운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어둡고 축축한 옥창 너머로 조국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성충은 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굶주림과 병마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오직 백제의 앞날만을 걱정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쥐어짜 내어 왕에게 피 끓는 유언이자 상소를 올립니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법이니, 한 말씀만 올리고 죽겠습니다. 머지않아 반드시 외적이 쳐들어올 것입니다. 만일 적군이 오거든 육로로는 탄현(침골)을 넘지 못하게 하시고, 수군으로는 기벌포(금강 하구)의 언덕에 오르지 못하게 하십시오. 험준한 지형에 의지하여 적을 막아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성충이 절대 적에게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기벌포'와 '탄현'은 백제의 수도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훗날 계백 장군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나간 황산벌 역시 이 탄현을 이미 빼앗긴 뒤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최후의 방어선이었습니다. 성충의 뛰어난 군사적 안목을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 처절한 마지막 편지조차 의자왕의 마음과 백제의 멸망이라는 운명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660년, 성충의 예언대로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했습니다. 적군이 이미 탄현과 기벌포를 넘었다는 다급한 전갈을 받고 나서야 의자왕은 "성충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된다"며 통곡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성충의 죽음과 함께 백제의 심장부 사비성은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는 흔히 영웅이라 하면 칼을 들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장수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진실을 향해 홀로 외치다 스러져간 성충의 말과 붓 역시 그 어떤 칼보다 날카롭고 용감했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때로 듣기 싫은 조언을 마주합니다. 그때마다 나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성충 같은 진짜 친구가 내 곁에 있는지 되돌아보곤 합니다. 화려했던 백제의 역사는 지도에서 사라졌지만 죽음의 문턱에서도 조국과 왕을 포기하지 않았던 성충의 서늘한 충절은 지금도 우리 가슴속에 묵직한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달콤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벼랑 끝으로 향하는 당신을 막아서며 쓴소리를 내뱉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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