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땅을 지울 수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청년 세대에게

by 성용

안개 속에 가려진 해안선: 플로렌스 채드윅이 가르쳐준 것

미국 장거리 수영의 전설 플로렌스 메이 채드윅(Florence May Chadwick, 1918~1995)을 아시나요? 그녀는 1950년과 1951년, 영국 해협을 양방향으로 횡단한 최초의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성공'이 아닌 한 번의 '포기'에 있습니다.

1952년 7월 4일, 그녀는 카탈리나 섬에서 캘리포니아 본토까지 34km에 이르는 대장정에 나섰습니다. 상어의 위협과 차가운 수온, 그리고 15시간의 사투. 모든 조건은 가혹했으나 그녀는 묵묵히 나아갔습니다. 뒤따르는 보트 위에서 어머니가 끊임없이 응원했고, 온 국민이 중계를 지켜보고 있었죠.

하지만 짙은 안개가 문제였습니다. 해안선을 불과 1km 남겨둔 지점에서 그녀는 공포에 젖어 돌연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훗날 기자가 포기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추위 때문도, 피로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안개 때문이었어요.
땅이 보였다면 저는 끝까지 헤엄쳤을 것입니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희망의 가시성'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자신의 능력보다 더욱 무능해집니다.


청년 세대, 안개 속을 헤엄치는 고독한 주자들

지금의 청년 세대의 자조와 냉소는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앞날에 낀 안개가 너무도 짙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좋은 대학은 대기업 취업으로, 이어서 결혼과 내 집 마련이라는 해안선이 선명했습니다. 안개가 끼더라도 땅이 저기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대기업을 보장하지 않고, 내 집 마련은 신기루처럼 멀게만 느껴집니다.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의 안개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려버린 것입니다. 기성세대의 "노력하면 된다"는 조언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 "열심히 저어라"라고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입니다.

그렇다면이 막막한 바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희망 삼아 헤엄쳐야 할까요?

신앙을 가진 청년들에게는 십자가의 예수가 그 해안선이 되어줍니다. 최근 한 청년 캠프에서 만난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과 위로를 얻었으니, 이제 우리의 것을 베풀 차례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세상의 조건(성공, 부)에서 희망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비록 현실이 가난할지라도, 그것이 방탕의 결과가 아니라 신실한 믿음의 과정이라면 그 가난은 결코 우리를 망가뜨리거나 죽일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신앙은 헛된 희망 고문이 아니라, 안개 너머에 땅이 있음을 믿고 한 팔을 더 내뻗는 근력입니다.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도 감히 전하고 싶습니다. 각자의 눈을 가리는 안개는 다릅니다. 어쩌면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마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 모를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매일 기도하며 당신의 안녕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분명 혼자 있기에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홀로 있지 않습니다. 저 멀리서 누군가 진심으로 당신의 하루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바다에서 외롭게 헤엄치고 있는 것 같지만, 서로 알고 있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느슨하지만 강력한 연대' 속에 있습니다. 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모든 청년 세대여 그저 하루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홀로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8:28 KRV]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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