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_혹시 어쩌면 나도 캐리가 될 수 있을까

내 마음속 작은 불씨를 던져주었던 그 여행

by 지금은 디자이너



아, 그때의 난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놀았구나.


나는 참 나의 본분에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나의 본분이란 무엇인가?


영어를 배우고 최대한 많은 다양한 세계적 문화를 접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거창해 보이지 실상은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하루가 멀지 않게 시간 날 때마다 놀러 다니는 게 나의 일과였다. 물론 알바도 해야 하고 나름 꼬박꼬박 다가오는 시험도 준비해야 했지만, 나의 철학은 확고했다.


후회 없이, 자유롭게, 그리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치열하게 경험하고 놀아보자. 지금 30대가 돼서 나의 20대를 되돌아보니 제일 잘한 일이 이때 온 마음을 다해 놀러 다니고 즐긴 것이다. 후속 글에 등장하겠지만 정작 내 꿈을 찾아서 다시 돌아온 뉴욕은 이렇게 여행 와서 내가 보았던 화려하고 매력적인 그런 도시가 아니었다.


여행이 아닌 현실이 된 순간, 지극히도 아름답던 뉴욕은 참 지독하게 잔인한 곳이 되었으니 말이다.


뉴욕 여행은 혼자 해야 제맛이지!


내가 살던 메릴랜드에서 뉴욕은 차로 운전해서 4시간이 조금 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유난히 친했던 브라질 친구들과 난 두 번 다 함께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나, 문득 혼자 하는 여행이 갑자기 너무 하고 싶어졌다.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사는 영혼이 빙의했던 그 시절의 나는 물론 주저하지 않고 2박 3일 그렇게 혼자 뉴욕 여행을 떠났다.


유일하게 남은 이 흐린 사진 한 장. 어찌나 돌아다녔던지 신고 갔던 샌들이 끊어져 버렸다. 어딘가 들어가서 대충 골라신은 저 오렌지색 쪼리. 참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어쩌면 이때였을지도 모른다. 가슴 뛰는 삶에 대한 나의 열망이 시작된 건.


그저 평범하게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 나도 이곳에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열정이 가득 찬 인생을 살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의

시작을 하게 해준 게 바로 이 여행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꿈에서만 그리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었다.


모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주었지만, 그중 나의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은 작품이 하나 있었다. 너무나 운이 좋게 앞에서 4번째 줄에 앉아서 볼 수 있었던 The Phantom of Opera, 그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그 공연의 여운이 얼마나 컸는지 뉴욕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그렇게 오페라의 유령에 빠져있었다. 무대 위의 열정적인 배우들과 내 시선을 강타했던 무대 디자인,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음악까지.


내 인생도 이렇게 뜨거울 수 있을까? 나도 어쩌면 이들처럼 가슴속 불타는 열정이 있는 건 아닐까? 꿈이라는 거, 가슴 뛰는 열정이라는 거. 그게 뭔지 아직 감도 안 오지만 정말 눈물 나도록 찾고 싶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사실 마음속 불꽃은 뉴욕 여행에서 시작되었지만 나를 바꾼 건 내가 만난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그저 부러웠다. 뭔가에 갇혀 있지 않은 그들의 사고방식. 그래도 난 아주 단단한 보호막 속에 나를 가두어 두었었나 보다.


입으로는 그래, 열정이 있는 인생을 살아야지! 남의 시선이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말로만 했지 정작 내 마음속 의심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경제학과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내가 이제 와서 무슨 꿈이고 열정인가? 얼른 영어 부지런히 배워가서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게 효도하는 길이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가 무엇에 열정이 있는지 나조차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방황하고 고민하는 게 꿈을 찾아가는 당연한 과정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저 내 입으로 뱉을 수 있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꿈도 꿀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지레 겁을 먹고 있었나 보다.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한 사람.


나와 모든 게 달랐던 사람과 너무 뜨거운 사랑을 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미련도 없고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 다시는 못 올 그런 절절한 사랑이라는 걸 20대에 해봤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건, 뒤돌아보니 이 사람 끊임없이 나에게 얘기해주었다. 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게 참 별것 아닌 말인데 이것도 반복 학습 효과처럼 조용히 내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었나 보다.


그래, 어쩌면 한 사람이 변화하는 데에는 그런 사람 한사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2020년 100권의 책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스타그램에 책 리뷰와 글쓰기로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중입니다. (@readn_g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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