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y New York!
잘가요, 소방관 아저씨.
내가 미국에 갔던 그해 눈이 참 많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 단 며칠만 있겠다는 그 집에서 지낸 지 벌써 3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새 나를 토깽이라고 부르며 무뚝뚝하지만 츤데레 같던 강원도 소방관 아저씨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어학원에서 돌아오니 반지하 내 방 책상 위에 쪽지 하나를 남겨두었다.
"토깽아! 맨날 한국말 하기 싫다는데 자꾸 말 걸어서 미안했다. 전기장판이랑 라면 두고 가니까 잘 쓰고 항상 몸 건강해. 밥 좀 잘 챙겨 먹고!"
꾹꾹 눌러쓴 손글씨에 눈물이 날려 했다. 좀 더 다정하게 대할걸. 타지에서 어린애가 와서 고생한다고 같이 장도 봐주러 가주고 참 많이 챙겨줬는데.. 언제나처럼 떠난 사람의 자리는 참 허전하다.
나의 이민 가방, 이제야 네가 빛을 보는구나!
모든 게 바뀐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야 깨달았다. 영어를 배운다고 3개월간 어학연수를 하는 건 말도 안 되는구나 라는 걸. 꿀을 한 통 집어 삼킨듯했던 나의 영어는 가장 어두운 암흑기를 벗어나서 이제 조금씩 말이 들리고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멘붕이 오지 않을 정도에 다다랐다. 하지만 깜깜한 밤에 촛불 하나 정도 켠 그런 정도인데 지금 한국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또한 나에겐 든든한 이민 가방이 있지 않은가!
"엄마, 미국은 엄청 넓어서 사계절 옷을 다 가져가야 한대."
엄마는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그래, 기왕 가는 거 배우고 싶은 거 다 배우고 와 딸! 이렇게 날 응원해준 걸까.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있을 때 느껴지는 자유라고나 할까. 22살의 나는 이런 모습이고, 이렇게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던 그 모습 속의 나는 너무 행복했다.
교실 밖 세상, 여기가 진짜 미국이구나.
아빠에게 몇 달 치만 더 어학원비만 대주시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조금만 더 머물겠다고 합의를 보았다. 원래 조금 방목형이었던 우리 부모님. 그 대신 내가 내린 결정에 책임은 스스로 지는 그런 우리만의 암묵적 거래가 우리 집 방식이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베이비시터, 델리 캐시어, 식당 서빙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법이 엄격해져서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유학생도 이렇게 아는 분들을 통해서 알바를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한국에서도 알바라면 자신 있던 나였기에 어디에 가서든 인정받으며(?) 순조롭게 미국생활비와 어학연수 비용을 벌 수 있었다. 물론 영어 때문에 등에 식은땀이 흐른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어학원에선 분명 대충 말해도 다 알아들었는데, 역시 교실 밖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구나.
14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설레게 하는 그 이름, Sex and the City!
수많은 이들에게 뉴욕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던 그 이름도 유명한 바로 그 섹스 앤드 더 시티. 처음엔 영어 공부하려 나중엔 이 네 여자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우정 이야기에 빠져서 에피소드 한 편당 적어도 20번 아니 30번 이상씩 수도 없이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우연히 방송을 보게 되면 대사가 기억날 정도로 나에게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서 그리고 뉴요커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드라마였다. 이때만 해도 나와는 거리가 먼 그 이름이라 생각했다. 뉴요커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아마도 꿈에서는 상상해봤던 것 같다. 드라마 속 캐리처럼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신고 맨해튼을 누비는 그 멋진 내 모습을.
아, 드디어 도착했다.
꿈에 그리던 그곳,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