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일기 9. 비만 고양이 판별법
이제 인터넷에 올라오는 비만 고양이로 망가진 눈을 되찾을 시간이 왔다. 과연 우리 집 고양이는 살이 찐 걸까?
고양이는 단순하게 체중만 측정해서 비만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것은 어렵다. 개체별로 체격에 차이가 있으니 오래된 병원에서 흔하게 조언하듯 6kg 이상이면 비만, 5kg 이하면 안심, 같은 식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하였으나 강아지와 다르게 고양이는 대형종 일부를 제외하면 전반적인 평균치가 존재하긴 한다. 도메스틱 고양이를 기준으로, 아무리 남아여도 정상 체중으로 6kg를 넘기가 상당히 힘들다!
우리 집 고양이는 이른 불임 수술로 뼈가 얇고 길어져 웃자라는 바람에 다른 고양이에 비해 체구가 큰 편이다. 고양이 임상 경험이 많은 수의사도 이렇게 큰 코숏은 드물다며 놀라고, 많은 고양이 보호자 집에 놀러 갔지만 파이와 스프보다 더 큰 고양이는 만나보지 못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6kg라는 체중은 다소 비만인 상태가 맞았다.
고양이 비만을 외면하고 싶을 때 파이와 스프는 크기 때문에 체중이 더 나가기도 한다고 제멋대로 감안하고 있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둘 다 도메스틱 캣(코숏) 사이즈를 크게 벗어나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스프는 글을 쓰는 현재(21년!) 5.8kg 정도, 파이는 6.4kg이니 다이어트가 끝나고 나면 아마 5kg대를 유지할 것 같다.
파이와 스프보다도 거대하지 않은데 6kg를 넘었다... 크기는 핑계가 아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여아는 평균적으로 조금 더 작곤 하지만 파이와 스프가 둘 다 남아라 남아를 기준으로 합니다.)
인터넷에서도 우스갯소리로 수의사가 이 정도는 비만이 아니라고 했다며 우리 집 고양이는 비만이 아니라 그냥 큰 것이라고 자랑하는 사진이 떠돌곤 한다.
바로 지난번에도 인스타그램에서 고양이가 10kg인데 수의사가 비만이 아니고 그냥 큰 거라고 했다며 올라온 사진을 봤다. 사진 속 고양이는 대형 종이 아니었고 식빵을 구웠을 때 옆구리 살이 튀어나오는 데다 누워있을 때 배가 동그랗게 살이 쪄서 영락없는 비만이었지만 그렇게 농담거리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인터넷에 올리기 위해 거짓말을 덧붙인 것이어도 문제이고, 실제로 수의사가 그렇게 말했어도 문제이다. 전자라면 고양이 비만을 가볍게 여기도록 부적절한 정보를 퍼트린 셈이고 후자라면 수의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거니까. 물론 수의사도 매일같이 비만 고양이만 진료하다 보면 기준점이 망가지기 쉬우니 아주 약간 이해는 간다.
여하튼 우리의 눈을 믿을 수 없으니 직접 자로 재어 체지방률을 계산해 보기로 하였다.
전문가가 공개하는 체지방률 간단 계산법 공식은 다음과 같다. 복잡한 표가 있지만 넘어가고 보통 이 체지방률을 계산해서 30 이상이면 비만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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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양이 체지방률을 계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고양이 체지방은 사진과 같이 고양이가 제대로 서 있는 상태에서 재야 한다. 가슴둘레는 가장 넓은 곳, 아홉 번째 갈비뼈가 있는 부분을 재야 한다는데 이 부분에 줄자를 넣어 감으면 고양이는 쏙 빠져나가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기 일쑤였다. 고양이가 앉거나 엎드린 상태에서 가슴둘레를 재면 오차가 생겼다.
또 고양이의 뒷다리 길이는 무릎부터 발목까지를 의미하는데 이 부분도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재기가 어려웠다. 더 정확히는 고양이 허벅지처럼 보이는 부근(=배 주변에서 접히는 곳)이 무릎, 뒷다리에서 꺾어지는 부분이 발목이다. 발목 아래는 실은 전부 고양이 발이라는 걸 처음 알고 웃은 적이 있다. 고양이는 항상 깨금발을 짚고 다닌다.
참고로 서서 뒷다리를 살짝 뺀 상태로 다리 길이를 재는 것이 그나마 정확한 편이라고 한다. 그런 자세를 하고 보호자가 측정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고양이가 있단 말이야?
몇 cm 차이로 체지방률이 확확 바뀌곤 하니 잴 때마다 들쭉날쭉한 수치가 나왔다. 오늘은 주저앉았으니까 귀찮다며 식빵을 굽는 상태에서 가슴둘레를 재거나, 고양이 체지방률이 낮아 보이고 싶어서 일부러 무릎과 발목의 위치를 널찍하게 잡았다. 무릎과 발목을 연결한 줄자 각도를 조금 달리하면 몇 cm 정도 더 나오기도 한다.
이 글을 처음으로 쓸 때도 실시간으로 스프 둘레를 재고 왔는데 가슴둘레 37cm, 다리 길이 19cm로 체지방률이 18%가 나왔다. 흐으으음......... 믿을 수 없구나.......
인터넷에서는 체지방률 계산 다음으로 눈으로 직접 비만도를 확인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아마 고양이 보호자라면 한 번쯤 봤을 법한 익숙한 그림이다. 오래전에 주운 그림이고 다들 원 출처를 게시하지 않고 퍼 나르고 있어서 어디서 온 그림인지는 잘 모르겠다.
버전은 여러 가지 존재하지만 과체중(Overweight) 기준 중 꾸준하게 언급되는 조건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나를 항상 안심하게 해주는 지표였다. 우리 집 고양이가 9.99kg가 되어가는 과과과체중이 되어도 여전히 허리는 구분이 갔고 갈비뼈는 만져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뱃살이 아래로 제법 늘어진 비만도 20% 단계 그림이 되어도 허리는 구분 가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가지로 몸이 아파 저체중인 고양이를 임보 해보니 더욱 비교가 잘 됐다. 내가 이 정도면 만져지는 거라고 꾹꾹 눌러보던 척추와 갈비뼈는 다른 고양이에 비해 거의 만져지지 않는 셈 쳐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외국 고양이 사진에서나 볼 정도로 정말 심각한 비만이 아니고서야 허리는 대부분 구분이 가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뒹굴면서 기지개를 켤 때면 뱃살이 쏙 들어가고 길어져 여전히 작은 고양이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리뒹굴 저리뒹굴하는 고양이에게 적극적으로 속아주고 싶었다. 얼굴도 작고 팔다리에도 살이 찌지 않으니 고양이가 살이 찌긴 했다는 걸 외면하며 그날도 우리 집 고양이 너무 작다를 외쳤다.
우리 눈을 믿을 수 없으니 체지방률 계산, 허리 구분, 갈비뼈 만져보기 등의 방법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구분 방법이 필요했다. 물론 나처럼 여전히 고양이 비만을 부정하고 싶던 사람에게 필요한 방법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고양이 일기 4편에서도 적었지만 2016년 미국 고양이 60%가 비만이라고 했으니 2020년 한국에선 훠어어얼씬 높은 비율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고양이가 살이 쪘는지 궁금하다면 이미 살이 쪄 있을 확률이 높다. (^^;)
내가 고양이 다이어트를 하면서 가장 크게 체감한 부분이다. 고양이는 살이 찌면 가슴에도 살이 찌므로 앞다리가 벌어진다. 가만히 서 있을 때 앞다리를 모으기가 어려워진다. 이 상태로 앞발을 모은다면 다리가 \ / 모양으로 확연한 대각선이 된다. 인터넷에 fat cat 등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정말 심각한 케이스는 훨씬 많이 벌어져 있지만 좋은 사례가 아니니 생략한다.
앞에서 보는 고양이 모습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가슴에 살이 쪄서 다리가 벌어진다거나, 뱃살이 발등을 덮는다던가, 목과 뒤통수에 살이 쪄서 목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거나, 엉덩이 부분에 살이 찐 부분이 튀어나와 삼각김밥 모양으로 넓적하게 보인다거나, 겨드랑이 살이 쪄서 불룩하게 나와있다면 비만일 확률이 높다.
고양이는 살이 찌면 뒤통수부터 목덜미를 타고 윗부분에 출렁거리는 등살이 생긴다. 일어나면 커튼처럼 내려오는 뱃살과 다르게 등에 찐 살은 서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누웠을 때 목덜미가 어쩐지 물컹하고 울퉁불퉁하다면 살이 쪘을 확률이 매우 높다. 실내에 사는 비만 고양이는 주로 누워있기 때문에 관찰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다.
고양이는 원래 목덜미에 가죽이 여유롭게 있는 편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미 고양이가 물고 나르는 부위가 되고, 커서는 그루밍하기 어려운 위치라는 점도 활용해 주로 접종을 맞거나 피하 수액을 놓는 자리가 된다. 그런 가죽과는 좀 더 다르게 지방이 만져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식빵을 굽고 있을 때나 누웠을 때, 심지어 서 있을 때 목덜미 살을 한 꼬집이 아니라 한 움큼 쥐어서 주무를 수 있다면 살이 제법 찐 상태라고 봐도 좋다.
살이 찐 고양이의 배 쪽엔 걸을 때마다 좌우로 출렁거리는 뱃살 커튼이 생긴다. 앞다리 주변에는 날개가 생긴다. 겨드랑이에 마치 물갈퀴처럼 넓은 살이 찐다.
이 부분은 가죽도 있기 때문에 정상체중인 고양이에게서도 비슷한 것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살을 빼고 나니 예전처럼 돌아다닐 때 겨드랑이 살이 툭 튀어나와 보이는 것이 꽤 줄어들었다. 정상 체중 고양이는 평소에 접혀서 잘 보이지 않고 직접 만져야 존재를 알 수 있다면, 비만 고양이는 평상시에도 겨드랑이 살 부분이 많이 튀어나와있다.
예전에 TV 고양이 행동교정 프로그램에 살이 너무 심각하게 찐 고양이 사연이 나온 적이 있다. 고양이가 이상하게 짜증이 늘고 이유 없이 가족 구성원을 공격하길래 사연을 신청했는데, 알고 보니 지나치게 찐 뱃살 때문에 똥꼬 그루밍이 어려워 위생관리가 안되고 간지러우니 짜증이 늘어 사람을 공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해당 방영 이후로 비만 고양이 보호자는 고양이가 그루밍을 할 때마다 긴장을 바짝 하기 시작했다. 파이와 스프는 똥꼬 그루밍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루밍을 할 때 어쩐지 자세가 불안정해 보이고, 적당히 하다가 관두거나 자세가 무너지는 등, 그루밍을 어려워하는 눈치가 보인다면 역시 비만일 확률이 높다.
어떤 절대적인 한 가지의 잣대만 가지고 비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똥꼬를 못 핥으면 비만, 잘 핥으면 비만 아님, 이런 식으로 딱딱 선을 그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각자가 자신의 고양이를 객관적으로 여러 기준을 종합해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집은 그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아, 라는 면피 용도로 사용하고 지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적은 내용은 우리 집 고양이에게서 중점적으로 느꼈던 신호이다.
그 외에도 파이와 스프는 어딘가에 오르고 뛰어내릴 때마다 소리를 내곤 했다. 사람도 움직이기 힘들 때 읏차! 하고 소리를 내며 일어나듯, 고양이도 착지할 때마다 충격이 크면 뮥, 쀽, 하는 소리를 낸다. 우다다 도중에 신나서 뿌르륵~ 꾸르릉~ 하는 것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위에서 내려와 착지할 때 무게 때문에 윽, 하는 느낌이 든다면 비만일 확률이 높다. 6kg대로 진입한 현재 파이와 스프는 내려올 때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는다.
혹은 발뒤꿈치 부분에 땜통이 생기기도 한다. 앉아있을 때 바닥과 직접 닿아 몸을 지지하는 부위라 그렇다. 지지할 무게가 많은 경우 바닥에 오랜 시간 쓸려 발뒤꿈치에 굳은살이 생긴다. 고양이라면 무조건 다 생기는 줄 알았는데 날씬한 다른 집 고양이를 만나보니 털이 보송보송하게 잘 나 있었다. 아주 당연한 건 아니었구나.
나는 아마도 한 움큼 손에 한가득 그러쥘 수 있는 살이 있다면 대부분 비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뱃살이 아니라 원시 주머니라는 부위가 남아있어 배 주변에 살이 찌는 건 당연하다고들 하지만, 원시 주머니가 확연하게 찌지 않은 고양이도 충분히 많았다.
살이 아니라 거죽만 어색하게 늘어져 있는 원시 주머니와 주물럭거릴 수 있는 살은 분명히 다르다. 고양이를 자주 쓰다듬으며 뱃살, 등살, 목살, 턱살 등을 잘 관찰해주자.
고양이 다이어트를 오래 하면서 고양이가 꾸준히 살을 빼고 나니 깨닫는 게 많다. 파이와 스프는 원래 놀이 반응이 덜 하고 오래 놀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몸이 무거워서 불편한 것이었다. 심각한 비만이어도 여전히 우다다는 종종 하길래 충분히 움직이는 줄 알았다.
다이어트가 진행된 현재의 행동반경과 과거의 행동반경을 비교하면 꽤 차이가 난다. 장난감 반응이 좀 더 활발해졌고 좀 더 오래 논다. 그전에는 타지 않던 캣타워의 슬라이드 보드 등을 타기 시작했다. 슬라이드 보드나 기둥은 자신의 체중을 고스란히 지탱해야 하는 놀이공간이기 때문에 살이 지나치게 찐 상태에서는 놀기가 어렵다. 누워있는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언젠가는 기둥을 타고 오르며 점프를 엄청나게 높게 뛰는 날씬한 고양이처럼 놀 수 있겠지.
생명은 먹는 재미로 사는데 어떻게 그런 재미를 빼앗고 식이를 제한하냐고 안쓰러워하는 반응을 자주 보곤 한다. 고양이 역시 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동물이니 간식 한 입, 사료 몇 알 더 먹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생활의 질을 따졌을 때, 입이 잠깐 기쁘고 종일 무력하게 누워서 움직임을 싫어하게 된 고양이와 적당히 먹을 만큼만 먹고 가볍게 뛰어노는 고양이 중 누가 더 행복하게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년간 파이와 스프가 변화한 모습을 관찰하면서 나는 절대로 먹고 싶은 밥, 가장 좋아하는 사료를 먹고살던 예전의 살찐 모습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이 있다면 사람의 미뢰 수가 약 1만 개일 때 고양이의 미뢰 수는 사람의 1/10에 불과하다는 점이다(약 800개). 우리가 느끼는 다채로운 맛을 고양이가 고스란히 느끼지는 못 한다. 단 맛도 느끼지 못하며 훨씬 발달한 후각 등으로 사람과는 맛을 다르게 인지할 테니 우리 입장을 완전히 투영해서 생각하는 건 잠깐 내려놓는 게 좋겠다. 생각해보니 그래서 어렸을 때 모래를 음식으로 알고 냠냠 먹은 건가..
(*갑자기 모래를 먹는 이식증이 생긴 경우 스트레스 혹은 빈혈의 증상일 수도 있으니 가볍게 넘기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고양이는 살이 쪄도 고양이 장기는 살이 찐 무게에 비례해 늘어나지 않는다는 걸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언제 갑자기 췌장이 못 해 먹겠다고 인슐린 생산을 던져버릴지, 언제 관절이 더 지탱하기 어렵다며 백기를 들지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스케일링을 위한 짧은 마취를 할 때도 늘어난 체중에 맞게 마취제를 더 써야 하지만 그걸 해독하고 처리해낼 장기 크기는 다른 고양이에 비해 특별히 커지지 않았다. 먹어야 하는 약도 항상 두배였다. 비만 고양이는 정상체중인 고양이에 비해 돌연사할 확률이 높다는 언급을 처음 들었을 때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조그마한 고양이 심장 한 개에 고양이 두세 마리 분량의 덩치가 붙어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고양이 비만에 관해 공부하고 다이어트를 하면서 비만을 희화화하고 가볍게 만들던 농담을 깊게 반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