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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두부 Oct 27. 2021

12. 자율급식에서 제한급식으로

고양이 일기 12. 고양이 습식 전환 1단계 - 제한급식 편


(습식 전환 0단계. 습식 전환 결심하고 그릇 사기)


 예전에 인터넷에서 수의사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한 사람의 자연식 비판 글을 보고 깜짝 놀란 부분이 있다. "(자연식을 하는 여러분,) 강아지의 밥그릇은 얼마나 자주 설거지하나요?" (다시 봐도 충격)


 그럼... 다른 사람은 설거지를 안 하나? 자연식 말고 건사료를 먹이는 사람은 설거지 안 해????????

 건사료도 매일매일 그릇 설거지하는 거 맞지요????



사람용 굽접시로 밥 묵기



 설거지하고 매번 새 그릇으로 줘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써야 한다면 쓰겠다. 앞으로 먹일 습식과, 매 끼니 새 그릇으로 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고양이 접시, 설거지할 세제와 수세미를 준비해야 한다.


 고양이 접시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생식처럼 쫀쫀한 밥을 급여한다면 고양이 수염이 접시 가장자리에 닿지 않는 납작한 '굽접시' 형태의 접시가 고양이 선호도가 높다. 아예 찻잔 받침에 쓰는 넓은 그릇에 급여하는 분도 보았다. 


 혀에 조금 밀려나는 주식캔이나 화식을 급여한다면 납작하면서 적당히 오목한 그릇이 좋다. 사각이나 벽이 확실하게 있으면 그 부분에 음식물이 껴서 고양이가 깨끗하게 다 먹지 못 할 수도 있으니 원형으로 둥그스름하게 모서리가 있지 않은 그릇이 좋다.



쫀쫀하지 않은 밥을 굽접시에 주면.... 이래서.. 안.. 됩니다.... .......



 굳이 고양이 전용이라는 비싼 접시를 살 필요 없이 사람용 접시 중 저렴한 접시를 여러 개 구비해서 깨끗하게 관리해도 된다. 펫택스를 줄이기 위해 항상 고양이 전용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사람용 제품 중에서 괜찮은 것을 골라서 구입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설거지가 귀찮으면 식기세척기를 구입하자!!!!!! 정말! 모든 분야에서 고양이 관련 지출을 줄이자고 쓰는 일기지만 식세기만큼은 후회하지 않는다. 물때가 남거나 생각보다 성능이 좋지 않다면 그건 식세기가 아니라 식세기 세제 탓이다. 좋은 세제를 찾으면 이만한 가전이 또 없다. 겸사겸사 살균 기능도 있는 식세기 최고.... ^^..




 습식 전환 1단계. 자율급식에서 제한급식으로



 캔을 주든 건사료를 주든 고양이를 제대로 관리하고 싶다면 제한급식을 해야 한다. 아직도 자율급식 형태로 건사료를 많이 부어주고 있다면 수시로 먹는 습관을 고치는 일부터 시작한다. 고양이 성격과 보호자의 사정에 따라 시간과 횟수는 다르겠지만 하루 동안 정해진 시간에 밥을 차려주고 치우는 습관을 먼저 들여본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양이는 스스로 먹을 만큼 조절해서 먹는 동물이기 때문에 고양이가 자율적으로 먹을 수 있도록 사료를 부어놓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생 고양이는 수시로 곤충을 잡아먹고 있으니 하루에 10~15회에 걸쳐 음식을 나눠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하지만 소동물을 사냥해서 잡아먹고 오랜 기간 휴식을 취하는 육식동물의 패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마치 초식동물처럼 방목되어 수시로 풀을 뜯어먹듯 끊임없이 식사를 제공해준다. 그러면서 고양이는 순간적인 사냥을 위해 오래 에너지를 비축하는 습관이 있는 '육식동물'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것이라는 설명은 전혀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집고양이는 온종일 잠만 자다가 만성 탈수로 목마름과 배고픔을 헷갈려서, 혹은 그냥 습관적으로 사료를 씹으며 필요 이상으로 밥을 더 먹고 살이 찐다. 자꾸 집어먹은 건사료로 혈당이 오르고 탄수화물 중독이 되며 미처 소화되기 전에 또 집어먹은 사료로 위장관은 쉴 틈이 없다.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으로 집고양이는 조용한 학대를 받고 있다는 표현이 생기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그냥 조용하고 그윽한 사진



 제한급식은 고양이 상태 변화를 알아차리기 위한 기본이다. 하루 동안 부어놓고 고양이가 자율적으로 먹게 두면 고양이가 컨디션에 따라 먹는 양이 변화해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고양이가 한 마리가 아닌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니 더 심각하다. 고양이가 어딘가 아프거나 불편하면 보통 먼저 먹는 양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니 꼭 먹는 양을 꼼꼼하게 관찰해야 문제를 일찍 발견할 수 있다.


 제한급식은 고양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보호자의 핸들링 실력 부족이든 고양이의 예민함이든 고양이를 매번 붙잡아 알약을 투약하는 것이 어렵다면 밥에라도 섞어 먹여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자율급식을 하면 합리적으로 투약 시간표를 짜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히 식후나 식전 같은 타이밍이 정해져 있는 일부 특수한 약을 효과적으로 먹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다 큰 고양이의 30% 이상이 걸린다는 만성신부전 중기 이상에서 자주 활용되는 약인 '크레메진(독소를 흡착하여 배출하는 용도)'을 먹이려면 식후에 바로, 다른 약과 텀을 두고 섞이지 않게 먹이는 것이 기본이다. 자율급식을 하는 고양이는 이런저런 타협을 거쳐 먹여야 하므로 최적의 효과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건강한 고양이를 위한 영양제나 관리가 필요한 고양이를 위한 보조제, 처방약 등을 먹여야 할 때 난감하지 않으려면 제한급식 습관이 필요하다. 고양이가 나중에 늙고 아파서 약을 꼭 먹여야 할 때는 식이전환을 버텨줄 건강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쉽게 약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면 고양이 투병 난이도가 크게 오른다. 



 또 제한급식은 고양이의 휴식을 돕는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공급되는 음식은 고양이의 위장을 항상 일하게 만든다. 고양이가 음식을 먹고 배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2-24시간이다. 한 해외 수의학 저널(Journal of Feline Medicine and Surgery)에 실린 내용을 보면 고양이는 밥을 먹고 일시적으로 올라간 혈당을 모두 분해하는 데는 평균적으로(중앙값) 12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먹은 음식을 소화하고 분해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고양이에게 짧고 잦은 먹이 급여는 장기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탄수화물이 그득한 건사료를 꾸준하게 장작으로 넣어준 덕분에 고양이들 사이에서 고혈당이나 비만이 흔해지고 있다. 그래서 생기는 대표적인 질병이 고양이 당뇨병이다. 고양이 당뇨의 대부분(70-80% 정도)은 인슐린은 정상적으로 분비되고 있지만 마치 내성이 생기듯 세포에서 인슐린 민감성이 떨어져 생기는 '2형 당뇨'라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식이관리만으로 인슐린을 주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호전시킬 수도 있다는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지만, 바꿔 말하면 건사료 자율급식이라는 좋지 못 한 식이습관 때문에 당뇨병을 앓는 고양이가 상당 수준 존재한다는 뜻도 된다. 무엇이든 나처럼 고양이가 아프기 시작한 이후에 습관을 개선하지 말고 미리 개선해주었으면 좋겠다. 참고 1)



참고 1)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완치할 수 있는 고양이 당뇨병, 전제조건은? - 유현진 수의사 칼럼 https://www.k-health.com/news/articleView.html?idxno=43839

백산동물병원 당뇨 클리닉 안내 페이지 http://www.thecatclinic.co.kr/mycat/content/specialty_06.php 

고양이 당뇨병의 모든 것 - 동그람이 유투브 : 5분 7초부터 습식 사료 언급 https://www.youtube.com/watch?v=KVpj4xfgBLg



나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밥 좀 차리세요!! 하는 눈빛



 그 외에도 자율급식은 고양이에게 상하거나 상태가 안 좋은 음식을 먹이기 쉽다. 아무리 열심히 밀봉하고 소분해도 건사료를 접시에 부어 공기 앞에 내놓은 순간 건사료는 산패하고 눅눅해지기 시작한다. 마르거나 변질되는 습식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운 여름철에는 상하거나 심지어 벌레가 꼬일 수도 있다. 만성질환이 아닌 식중독 등의 다른 질환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예전에 고양이 사료 그릇에 개미가 꼬여있었는데 굴하지 않고 사료를 먹는 고양이가 웃기다며 찍어 올린 인터넷 글을 읽고 내가 서러워 울 뻔했다......... ㅠ.ㅠ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 정도로 줄인다. 고양이 제한급식에 대해 두 수의사가 대담을 나눈 영상을 번역하신 분이 있으니 더 궁금한 사람은 영상을 보거나 번역된 글을 읽어보면 좋다.


-> 영상을 번역한 코스믹라테님 블로그 글 https://m.blog.naver.com/satellite_io/220858785024 

-> 고양이 급여 주기(Feedign pattern)에 대한 수의사 대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8mOkS0347I (약 33분 30초부터 시작)




 그러니 여러분! 다른 건 몰라도 제한급식은 합시다! 


 처음부터 끼니 수를 확 줄이라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가 평소 먹던 패턴에 맞게 여러 번 차려주다가 조금씩 조금씩 공복 시간을 늘리며 수를 줄여 나가면 된다. 파이와 스프도 맨 처음에는 5끼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줄여 지금의 2끼 체제가 되었다.


 밥이 언제나 쌓여있는 상황에 익숙한 고양이라면 대부분 처음에는 차려주는 밥을 한 번에 먹지 않는다. 그러면 어느 정도 기다린 다음에 밥을 치운다. 다음 시간까지 공복이 유지된 고양이는 다음 끼니에는 조금 더 먹을 것이다. 이번에도 정해진 시간에 밥을 차려주고 한 번에 다 먹지 않는다면 기다렸다가 남은 밥을 치운다.


 버려지는 밥이 조금 아깝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고양이는 밥이 항상 쌓여있지 않다는 점을 학습하고 차려지는 밥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기 시작한다.


 밥을 더 맛있게 먹이기 위해 식사 전에 격렬하게 놀아줄 수도 있다. 사람도 힘든 일을 하고 나면 밥이 맛있어지니까. 고양이도 더 열심히 사냥놀이를 해주고 밥을 주면 배고프다고 식욕이 올라가 밥을 더 잘 먹게 된다.



 적응시키는 기간엔 고양이가 여러 변화를 보일 수 있다. 수시로 몇 알만 조금 씹고 말던 고양이가 배가 고픈 상태에서 건사료를 허겁지겁 빨리 먹으면 사료를 먹은 모양 그대로 토해낼 때도 있다.


 고양이 이빨은 고기를 삼키기 좋은 크기로 찢어내는 송곳니와 아주 작은 어금니, 그보다도 더 작고 하찮은 앞니로 이루어져 있어 사료를 씹어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다. 그래서 거의 그대로 삼키듯 사료를 먹게 되는데, 꿀럭이지도 않고 식도 단계에서 음식물을 퐈아악 그대로 토해내는걸 '토출'이라고 부른다.


 급하게 먹어서 토출하는 경우에는 고양이가 최대한 음식을 천천히 먹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푸드 미로, 먹이퍼즐과 같은 도구를 이용해 속도를 조절하거나 아주 넓은 그릇에 흩뿌려 주는 방법이 있다.



아주 간단한 형태의 먹이퍼즐 (설거지가 쉬운 것으로 고르세요)



 건사료는 위 안에 들어가면 수분을 흡수하여 많은 양으로 불어난다. 고양이가 건사료를 배부르게 가득 먹은 경우에는 위장에 자극이 된다. 위장이 예민하거나 소화력이 약한 고양이는 이때에도 소화가 되다 만 음식물을 토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건사료를 물에 불려서 먹이는 팁이 돌기도 했다. 지금은 그럴 바에는 그냥 습식을 주자는 분위기지만.


 습식의 경우 마구 삼킬 수 있는 건사료에 비해 먹는 속도가 느리므로 토출이 많지 않다. 파이와 스프는 기록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습식 토출이 3번가량 있었다. 생식 토출도 스프가 딱 한번 있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습식도 너무 빨리 먹는 고양이는 넓은 그릇, 그래도 안 되면 조금 차렸다가 다 먹으면 바로 더 차려주는 방식으로 습관이 길러질 때까지 한 끼니를 몇 차례 나눠 급여하면 된다.



 밥시간이 되었는데 밥이 주어지지 않으면 미리 생산된 위산이 위를 자극하여 노란색 물을 토하기도 한다. 이렇게 위액이나 담즙, 혹은 거품이나 헤어볼을 함께 토하는 노란색 구토는 '공복토'라고 부른다.


 고양이 공복토는 공복을 유지한다고 무조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는 규칙적인 생활에 안정감을 느끼는 동물이다. 자신이 식사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시간이 되면 위액이 미리 분비될 수도 있다. 위액은 이미 분비되었는데 들어오는 음식이 없으면 위가 자극을 받아 게워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끼니를 여러 번 나누어 급여해서 공복토를 방지하고 식사 시간 적응을 돕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양이가 적응하도록 시간을 오래 두고 천천히 끼니를 줄여나가야 한다. 파이와 스프도 지난 일 년 기록 중 이유 없는 공복토는 없었다. 길에서 구조되어 임시보호를 하며 지낸 고양이들은 더더욱 구토하는 일이 잘 없었다.


 고양이가 공복 몇 시간에 무조건 토하고 지방간이 생기는 위험천만한 동물이라 반드시 자율급식을 해야만 하는 게 사실이라면,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을 위해 반나절 금식을 시키는 것도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닐까? 금식이 필요하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잘만 하는데 식사 간격 조절은 왜 어렵다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추워서 다이어트가 된(?) 요즘 파이



 일기를 적으며 오해가 생길까 봐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건강한 고양이가 식습관을 고치는 동안에 인간의 계획과 맞지 않으면 두어 번의 구토는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그래서 식이 전환 과정에서는 그만큼 고양이를 더 예민하게 살피고 다른 활력에는 이상이 없는지 관찰해야 한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 아픈 고양이의 경우 더 주의 깊게 수의사의 조언을 들어가며 바꿔야 한다.


 고양이 구토가 일주일에 3-4회 이상 지속되거나, 하루에 2-3회 이상(연속적으로 구토를 하는 것은 1회로 생각하고 몇 시간의 차이를 두고 3회 이상 구토하는 경우) 구토를 한다면 병원에 연락하고 검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내원해야 한다. 그날따라 평소와 다르게 유독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 등 활력에 변화가 있는 경우에는 더 병원 방문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요소를 개선하고 고양이 건강에 이상이 없는데도 계속 토출을 한다면 식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장이 짧아 구토를 잘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구토가 지속적으로 오래 반복이 되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 이유를 모를 만성 구토라고 넘어가지 말고 역류하는 위산이 식도나 입 안을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구토가 나오는 상황을 분석하여 개선해야 한다.






 지금까지 적은 것은 더 큰 그림, 고양이의 마지막까지 원활하게 관리하기 위해 건강한 고양이를 미리 적응시키는 방법이다.


 고양이는 언젠가는 나이가 들어 각종 병을 관리해야 한다. 고양이 비만뿐만 아니라 고양이 당뇨, 만성 장 질환(IBD), 췌장염, 간 질환, 신부전, 심부전, 방광염, 결석, 요로질환 등등.. 한 번쯤 들어본 많은 질환 중 대부분이 관리 방법에서 가장 먼저 수분 섭취를 꼽는다. 평생 먹어야 하는 보조제, 약, 수분 섭취를 해결할 방법은 습식 + 제한급식이다. 




웅냠냠냠


 다음 일기는 파이와 스프가 습식을 입에 대는 과정을 기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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