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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두부 Nov 10. 2021

13. (눈)물에 젖은 밥을 먹어본 적 없는 고영이여

고양이 일기 13. 고양이 습식 전환 시도하기



보호자의 눈물 젖은 밥을 먹어보지 않은 고영은 인생의 진정한 체중을 찾을 수 없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뻥) 



고양이 습식 전환 1단계. 제한급식 습관 들이기 (지난 일기)



습식 전환 2단계. 고양이가 먹는 습식 찾기



 대부분의 고양이는 새로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기꺼이 먹는 음식은 '익숙한 음식' 뿐이다. 어떻게든 새로운 제형이 익숙해지게끔 구면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양이가 입맛이 굳어지기 전인 어린 시절에 다양한 제형을 먹여보라는 말이 도는 것이다.


 가능하면 생식과 같은 쫀쫀한 질감도 먹어보고, 습식 안에서도 탱탱한 젤리 같은 제형, 몽글몽글 덩어리로 뭉쳐놓은 머셀 제형, 슈레드로 찢어놓은 제형, 생선 살이 그대로 있는 제형, 고운 무스 등을 성장기에 고루 먹여보면 좋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 이미 시기가 늦어 고운 무스 외에 다른 제형에 익숙하지 않아 씹어먹을 줄 모르는 고양이가 많다. 바로 인터넷에서 흔히 보이는 '우리 집 고양이는 차려주면 국물만 핥아먹어요' 고양이다.




정말 국물만 먹고 건더기는 다 버리던 2018년의 스프



 파이와 스프도 건사료에만 익숙해져 있을 때는 습식을 씹어먹을 줄 몰랐다. 국물만 싹 먹고 나머지는 꾹꾹 혀로 누르기만 해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나는 한없이 물만 타고 고양이는 국물만 마시고 덩어리는 고스란히 버려지곤 했었다. 다행히 습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요즘은 제법 큼직한 알갱이도 와아압 입에 넣어 잘 씹어먹는 고양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 습식에 충분히 적응이 되어 있었어도 오랜 기간 건사료를 먹여왔으면 소용이 없을 확률이 높다. 파이와 스프는 구조 직후 어린 시절에 아팠기 때문에 항생제를 섞어 먹이기 위해 습식을 자주 먹었다. 병원을 다닐 때마다 받아온 서비스 간식캔이든 해외여행에서 건져온 미수입 주식캔이든 항상 반갑게 먹어주었다. 하지만 건사료로 돌아와서 몇 년간 탄수화물 맛을 들이고 나선 아무리 주식캔을 까 주어도 먹지 않았다. 다시 입맛을 돌려놓기 위해 더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ㅠㅠ)

 


 일단 먹는 습식이 있으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비교적 순조로운 일이다.


 8번째 고양이 일기에서 사람의 미뢰 수가 약 1만 개일 때 고양이의 미뢰 수는 사람의 1/10에 불과하다(약 800개)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미각이 사람이나 강아지만큼 발달하지 못 한 고양이는 맛 자체보다 음식을 둘러싼 환경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환경을 다양하게 살펴보고 바꿔가며 고양이의 취향을 탐색해야 한다.


 그냥 무작정 인터넷에 '기호성 좋은 고양이 주식캔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할 확률이 높다. 고양이마다 성격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고양이는 닭을 좋아하고 저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 다른 고양이가 좋아한다고 해서 우리 집 고양이도 좋아할 거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질문은 항상 구체적이어야 한다. 주성분, 제형, 제조국가, 브랜드 등...



  넓은 범위에서 조금씩 우리 집 고양이에게 맞는 것을 직접 찾아본다. 자기 고양이 입맛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고 맨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면 인터넷에서 흔히 추천받는 좋은 주식캔 목록(성분이 깔끔하거나 영양성분 구성비가 좋고, 오랜 기간 리콜 없이 신뢰를 획득한 기업 제품 등)을 참고하면 좋다.


 네이버 카페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의 낭이v님이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표가 있어 많은 사람이 유용하게 참고하고 있다. 가입해야 볼 수 있지만 이 글을 위해서라도 카페에 가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고양이 습식 정리 https://cafe.naver.com/ilovecat/6450147 

습식 고르기 게임을 시작하지 https://cafe.naver.com/ilovecat/6461979 



파이는 스프가 입맛에 맞는 것 같아 (냠냠념념)



 이도 저도 다 안 먹고 까다로운 고양이라면 아예 대기업 제품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팬시ㅍㅅㅌ, 로얄ㅋㄴ, 미유ㅁㅅ, 위스ㅋㅅ 등 주식으로 삼기에는 다소 부족하거나 찜찜한 부분이 있어도 기호성 하나는 인증받은 제품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한 돈을 들여 조미료 배합 연구를 했을 테니 이를 통해 습식 첫걸음을 떼는 것도 좋다. 경험적으로 저런 대기업 제품 외에 좋아하는 고양이가 많다고 느낀 제품은 동물병원에서 판매하는 시그니처ㅂㅇ, 인터넷에 흔한 아보ㄷ, 알모네ㅇㅊ 등이다.



 보존제 성분이 있고, 증점제가 있고, 이물질이 나오고, 다양한 문제가 있다며 까다롭게 주식캔을 고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습식을 잘 먹는 고양이 기준에서 더 나은 주식 선택지를 찾기 위함이다. 그냥 건사료만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부족한 주식캔, 그보다도 부족한 간식캔을 섞어 먹는 것이 음수량과 다이어트 면에서 이득이다.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캔을 먹여보며 우리 집 고양이가 좋아하는 고기 종류와 제형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참치, 닭, 오리, 소, 양 등등 전반적인 고기 종류나 제형을 고르면 그와 비슷한 주식캔을 찾아 가지치기로 뻗어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애니ㅁㄷ 봄파인ㅅㅌ을 좋아하는 고양이라면 역시 비슷한 스팸 냄새가 나는 독일산 덩어리 캔인 ㅁㅍ캔이나 릴리스ㅋㅊ을 좋아할 확률이 높다. 보ㄹㅇ처럼 곱고 증점제 없이 바스러지는 완전 고운 축축캔을 좋아한다면 비슷한 제형이면서 같은 캐나다산인 퍼스트ㅁㅇㅌ, 캐나다ㅍㄹㅅ같은 캔을 좋아할 확률이 높다.


 이렇게 주 육류와 제형이 비슷하면 어느 정도 먹어주거나, 처음에는 안 먹더라도 건사료를 전환하듯 천천히 섞어서 비율을 늘려주며 먹이는 것이 가능하다. (완전 딴판인 캔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 ^^)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며 충분히 답을 찾을 때까지 무한정 기호성 테스트만 할 수는 없다. 사람의 지갑 사정도 문제지만 고양이한테 잘 맞는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빠른 간격으로 밥이 교체되면 알레르기나 이상 반응이 와도 어떤 제품이 원인인지 명확하게 밝혀내기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양이가 점점 입맛이 까다로워지면서 금방 질려하는 성격이 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조금 싫은 시늉을 내면 바로 더 맛있고 다른 밥이 나온다는 것이 학습된 고양이는 밥투정을 부리기 쉽다. 이 단계의 인터넷 버전은 '우리 집 고양이는 캔을 금방 질려해서 매번 돌려먹여야 해요' 하는 캔 유목민 보호자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주식캔은 대기업 제품도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잦다. 유통이 어렵다며 갑자기 장기간 동나는 일도 있었다. 수입이 갑자기 중단되거나 리뉴얼되는 상황도 의외로 흔하다. 이물질이나 기타 기업 논란, 가격 상승 때문에 제품을 강제로 바꿔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악조건을 디디고 남은 작은 선택지 안에서 방랑하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올해 상반기 중요한 처방캔 하나가 단종 소식을 알려와 환묘 보호자들이 남은 캔을 쟁여보려고 고군분투한 일도 있었다. 선택지가 한두 가지만 남지 않도록, 고양이 입맛이 지나치게 까다로워지지 않을 선에서 습관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한다.


 위의 설명을 참고해서 적응시킬 한두 가지의 밥을 정하고 방법을 달리하며 습식의 질감과 먹는 양에 익숙해지도록 하면 좋다. 



 고양이가 습식을 먹을 때는 까주는 습식 종류뿐만 아니라 이를 담아주는 그릇 재질, 그릇 높이, 먹이는 방법, 주로 밥을 먹는 위치, 차려주는 시간, 음식의 온도, 제형, 다른 고양이의 위치 등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있다. 바꿔 말하면 안 먹던 습식도 주는 방법을 달리하면 먹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습식을 먹는 습관을 들인 다음에는 이전에 안 먹었던 것도 대부분 잘 먹기 시작하기도 한다. 실제로 파이와 스프는 생식으로 완전히 정착하자 이전에 팽하니 지나가버리던 캔도 거의 다 먹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밥그릇을 가깝게 붙여 급여하면 대부분의 고양이는 완존 시러함.. 





습식 전환 3단계. 습식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 바꾸며 정착시키기



 (1) 그릇 : 그릇의 재질과 높이를 따져본다. 플라스틱 그릇은 열탕 소독에 불리하고, 특유의 냄새가 나는 스테인리스 그릇은 고양이가 안 좋아할 수도 있다. 요즘은 내열 유리나 도자기 그릇을 많이 사용하는 느낌이다. 파이와 스프는 적당히 저렴한 도자기 그릇을 사용하고 있고, 각자 고양이가 좋아하고 잘 쓰는 그릇을 사용하면 된다. 


 그릇의 높이도 적절하게 조절해주어야 한다. 고양이 취향에 달렸지만 지나치게 낮은 그릇은 고개를 숙이며 먹는 자세가 식도를 자극해 구토를 유발하거나 허리에 무리를 줄 수도 있다. 한입에 들어가는 양도 줄일 겸 높이를 조금 높여주면 좋다.


 네코ㅇㅉ, ㄷㄷ해 식기 등 자체적으로 높이를 높여주는 제품이 많지만 무겁고 식기세척기에 불편해 나는 도로 중고로 팔아버렸고 기대란 화분 받침대(!)를 저렴하게 사서 그 위에서 밥을 주고 있다. 아예 적응하고 나서는 귀찮아서 그냥 맨바닥에 주기도 한다. 식도나 다른 위장 문제가 없어 먹토하지 않는 고양이라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대충 접시를 쌓아 높이를 만들기도 함


임보냥에겐 너무 높은 화분 받침대 식탁 (ㅋㅋ)



(2) 주는 방법 : 일단 첫걸음을 떼기 위해서는 꼭 그릇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보호자 신뢰도가 높은 경우엔 보호자가 직접 손으로 떠서 먹이면 먹는 경우도 있다. 파이가 그랬다.


 냄새가 강한 캔을 손으로 한참 떠먹이고 손에 남은 냄새를 지우겠다며 굵은소금으로 빡빡 지우고 스테인리스 비누를 사서 수없이 문지르던 날도 있었다. 어쩔 수 없으면 쓰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방법이다. 흑흑.


 아니면 그릇에 있는 건 먹지 않다가 그릇에 있는걸 수저로 떠서 바닥에 흘려놓으면 흘린 덩어리는 쏙 주워 먹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땅그지 스타일로 밥을 먹이기도 했다.


 자꾸만 맛없는 음식이 나왔던 기억을 주는 주식용 그릇보다 맛있는 간식을 주던 방식대로 주면 먹는 경우도 있다. 손, 수저, 바닥도 모자라 심지어 길쭉한 소분 봉투에 캔을 갈아 넣고 고데기로 밀봉하여 스틱형 간식인 척 주는 팁도 돈다.


 수제 츄르 만들기 등으로 검색하면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데, 고양이 건강에 검증되지 않는 엉뚱한 레시피 부분은 가볍게 무시하고 소분하는 방법만 참고하면 된다.


 그렇게라도 일단 먹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갑자기 잘 먹는다.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ㅠㅠ)



평소처럼 떠먹이려다가 파이가 직접 먹어서 충격받았던 19년 5월 3일



(3) 온도 : 고양이는 미각보다 후각이 훨씬 더 발달한 생물이다. 후각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살짝 따뜻하게 데워져 냄새를 많이 풍기는 상태가 더 유리하다. 우리 집 고양이도 전자레인지에 약 10초 돌려 살짝 데워진 미지근한 캔을 좋아한다.


 그런데 생식은 반대로 냉장고에서 갓 나온 차가운 생식을 더 좋아한다. 미처 해동이 덜 되어 사각사각 살얼음이 씹히는 상태에서도 좋다고 냠냠 먹어 치울 때도 있다. 음식마다 어떤 온도를 좋아하는지 파악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생식은 절대 익지 않도록 전자레인지나 높은 온도를 피해야 하며 미지근하게 중탕하여 데우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참, 양 트라이프 등이 들어가서 냄새가 지독한 캔(주로 뉴질랜드 산이 많다)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 구토할 수 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다. (ㅜㅜ)



(4) 제형 : 고양이 습식에는 무스(파테), 머셀, 슈레드, 스튜(주스) 등 다양한 타입이 있다. 처음 습식을 먹는 고양이는 덩어리를 씹어먹는 것을 어색해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혓바닥만 찍어도 먹을 수 있는 질척하고 고운 무스캔이 도움이 된다. 국물은 먹는 덩어리진 습식을 믹서기에 갈아서 먹이는 것도 방법이다. 괜찮게 잘 먹는 파우치를 찾았는데 알갱이가 큼직해서 씹어먹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다 튀게 먹길래 한동안 물을 조금 넣고 믹서기로 갈아 먹인 적이 있었다.


 습식에 적응되면 곧 다른 제형을 먹는 법을 배우게 되지만, 주식캔을 잘 핥아먹지 못하는 경우에는 생식이 큰 도움이 되어준다. 생고기를 갈고 다져서 쫀쫀해진 생식은 고양이의 거친 혓바닥에 잘 붙는다. 혀를 가져다 대기만 해도 딸려와서 먹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주식캔과 생식을 나란히 보면 먹는 속도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냥 이렇게 입에 훅훅 딸려 들어감



(5) 먹는 시간 : 고양이가 충분히 배고플만한 시간을 밥시간으로 정하면 좋다. 방금 밥을 먹었으면 다음 밥을 차리지 말고 조금 기다려본다. 어느 정도 공복을 유도하면 음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먹곤 한다. 도저히 고양이를 굶기지 못하겠으면 강제로 금식해야 할 때를 노려보시라. 그건 수의사가 허락한 합법적인(?) 금식이니까.


 스프는 파이보다 습식 전환에 오래 걸린 편이다. 지지부진하게 조금씩 씨름하다가, 건강검진을 위해 반나절을 금식하고 병원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날 내가 차려준 습식 한 캔을 모두 먹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아 매일 까고 버리기를 반복하던 캔이었지만 하루를 굶은 스프는 자연스럽게 캔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강제적으로 캔과 구면이 된 스프는 이후 매 끼니때마다 차려주는 캔을 잘 먹기 시작했다. 습식 전환은 계단식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한 단계씩 건너뛴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던 것 같다.


 꼭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 있는 고양이가 아니라면 한두 끼 굶는 공복에 지나치게 공포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 시간이라도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고양이가 더 좋아하는 음식만 차려주다 식습관이 바르게 잡히지 못한 경우, 차라리 과감하게 하루 이틀 잘 지켜보며 밥을 드문드문 먹이다가 식습관이 바르게 잡힌 경우를 장기적으로 비교해본다면 어느 쪽이 더 고양이를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 고양이 습식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한 수의사를 주치의로 두고 조언을 받아 가며 진행하면 된다.



(6) 토핑 :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위에 올려놓아 먹는 것을 유도할 수도 있다. 위에 적은 것처럼 고양이는 혓바닥이 까슬까슬하기 때문에 토핑만 먹으려고 해도 밑에 있는 밥이 함께 딸려 올라간다.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맛보게 되면서 해당 음식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토핑을 뿌려주다가 수시로 토핑을 줄일 기회를 노려 나중에는 토핑이 없어도 먹도록 길들인다.


 다른 잘 먹는 간식캔, 스틱형 간식 등을 위에 짜 줄 수도 있고, 트릿 간식을 올려놓기도 한다. 아예 토핑용을 위해 동결건조 제품을 잘게 부수어 가루로 나온 제품도 있다. 물론 토핑을 뿌리는 것도 역시 간식이므로 전체 간식 칼로리를 넘지 않도록 계산이 필요하다. 괜히 토핑을 많이 뿌리다가 간식만 많이 먹고 입맛이 잘못 잡힐 수도 있으니 조금씩 주의하면서 시도해본다.


 먹던 건사료 알갱이를 올려두기도 한다. 자극적인 간식보다는 차라리 나을 수도 있지만 건사료는 수분을 흡수하여 불어나면 영양분이 분리되고 변질되기 시작하므로 음식 상태를 잘 눈여겨보며 빠른 시간 내에 급여해야 한다.



생식을 잘 안 먹길래 찔끔찔끔 토핑을 뿌려 먹여보던 2020년 봄



 완전히 비벼서 섞는 것보다 위에 올려서 맛이 희석되지 않는 것이 적은 토핑으로 더 많은 양을 먹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주 조금씩만 얹어주며 고양이가 먹는 정도를 찾아낸 다음 끊임없이 토핑을 줄일 기회를 노려본다.


 스프는 한동안 토핑을 뿌리지 않으면 안 먹겠다고 나를 쳐다보며 버티길래 일부러 토핑 뚜껑을 닫고 뿌려주는 시늉만 했었다. 그러자 뭔가 토핑이 올라갔다고 생각했는지 먹기 시작했다. 고양이에게 미안하지만 가끔은 이런 속임수도 필요한 법이다.



 다른 습식캔에 정착시킬 때 토핑을 끊은 방법은 순전히 내 실수였었다. 그날 내가 일이 있어 하룻밤 집을 비웠고, 고양이 밥 차려주기를 부탁한 친구에게 토핑을 같이 뿌려주란 말을 깜빡한 상황이었다. 친구는 정해진 캔을 따서 정해진 양을 파이 스프에게 덜어주었고 내가 언급하지 않은 토핑 통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도 파이와 스프는 캔을 맛있게 먹었고 나는 빈 밥그릇 사진을 전달받을 때까지 무엇을 실수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토핑 전혀 없이 밥을 먹었다는 것을 깨닫고 토핑을 끊었더니 그제야 파이와 스프는 쳇...하는 표정으로 아쉬운 듯 밥을 잘 먹었다. 이렇게 쉬울 수가. 그래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나서 한동안 관심을 팍 끊어보라는 팁이 돌기도 했다. 조를 대상이 없도록 밥을 준 다음에는 아예 나가서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남은 것을 치운다든가.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외출이 자유롭지 않지만 참고할 만한 방법이다. 



(7) 강제로 먹기 : 마지막은 강제적인 수단이다. 소극적인 강제 방법은 음식을 슬그머니 앞발 등에 발라주어 그루밍 중에 강제로 먹도록 하는 방법이다. 파이와 스프는 이런 식으로 강제로 친해진 캔들이 몇 가지 있다. 강제로 발라보면 정말 끔찍하게 싫어해서 살짝 핥는 것도 거부하며 온 동네 벽에 다 문대고 다니는 최악의 캔과 그래도 마지못해 먹어주는 캔을 가릴 수 있어 은근 도움이 된다. 전자면 나도 깔끔하게 포기하고, 후자면 좀 비벼보면서 언젠가는 먹일 수 있다는 얘기. (^^;)


 적극적인 강제 방법은 아예 강급을 하는 방법이다. 사람 유아용 작은 이유식 실리콘 수저를 구해 고운 캔을 고양이 입안에 강제로 넣어준다. 고양이가 거부하거나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송곳니 뒤쪽 공간으로 수저를 비집고 들어가 입천장에 샥 바르고 나온다. 알약을 먹이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알약은 목 깊숙이 넣어준다면 강급은 얕은 입천장에 바르는 정도?


 이유식 수저는 필건과 비슷한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이라 어딘가에 찔리거나 상처가 날 위험도 적다. 입천장에 빠르게 발라야 하므로 오목한 수저보다 거의 납작한 모양이 좋다. 탱글탱글 덩어리가 져서 입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풍차돌리기로 뱉어낼 수 있는 제형 말고, 생식이나 질척한 무스 제형이어야 한다.


 고양이가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다치지 않는 선에서 사용하면 꽤 유용한 방법이다. 몇 번 연습하다 보면 익숙해지기도 하고, 음식을 익숙하게 만들며 한 번에 먹는 양을 늘려 식습관을 잡는 것에 도움이 된다.



요렇게 생긴 실리콘 이유식 수저 말이죠 (마켓컬리 사진 펌, 해당 제품을 꼬집어 추천한 것은 아님)



 고양이가 강제로 하는 행동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면 강급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음식에 기분 나쁜 기억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프는 반항이 은근히 있었기 때문에 강급을 자주 시도하지 않았다. 파이는 자꾸만 다 먹지 않고 한두 숟갈을 남기는 습관이 있을 때 잠시 사용했다. 한 번에 먹는 양이 적어 금방 배부르다고 돌아설 때, 꾸준하게 남은 음식을 강급하는 마무리를 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먹는 양이 늘어 충분히 정해진 식사를 하게 되었다. 


 강급은 쉽게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니다. 지난번에 강제급수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고양이와 합이 충분히 맞지 않으면 고양이가 사레에 들리거나 상처가 날 수도 있다. 음식에 트라우마가 남아 먹는 것을 더욱 꺼리게 되기도 한다. 최대한 다양한 선택지를 연구해보고, 마지막으로 더 방법이 없을 때 충분히 공부한 다음 고양이 성격에 맞추어 강급을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8) 그 외 : 이것은 그냥 심증인데, 고양이가 예전에 거절하고 돌아선 밥도 어쨌든 '구면인 밥', '익숙한 밥' 안에 들어가는 것 같다.


 먹고 싶지 않은 싫어하는 밥이었지만 더 싫어하는 최악의 밥 앞에서는 그나마 덜 싫은 밥을 찾을 때가 있다. 최악의 밥을 만나고 나면 한동안은 '너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었잖아?' 하는 마음으로 그전에 거절했던 밥을 맛있게 먹어서 신기해했었다. 어쨌든 고양이가 구면이었네! 하는 밥을 찾아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나는 오랜 기호성 테스트로 이미 예전에 거절당하고 버린 캔 목록이 그득 쌓여있다. 실제로 먹여보고 그 결과를 엑셀에 정리해둔 캔만 세 자릿수다. 그런데 습식 전환에 성공하고 나서 습식에 익숙해졌을 때, 파이는 예전에 싫어하던 캔도 다시 반갑게 먹어주기 시작했다. 스프도 아주 거절은 아니고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는 캔을 구입할 때 상세페이지를 보면 둘 중에 누가 먹을지 대강 감이 온다. 캔을 그릇에 덜면 더 확실해진다. 대강 이 캔은 먹을 것이라는 느낌이 오고, 그 느낌은 대체로 맞는다. 실패하는 쇼핑이 줄어든 것이다!



그래도 채소앞에서는 편식왕 파이(하지만 고양이 캔을 이렇게 만든 게 잘못 아니에요?!??)




 몇 가지 요소가 더 있을 텐데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다. 고양이 밥을 둘러싼 환경은 생각보다 참 다양하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면 언젠가는 마음을 열고 입을 열어줄 것이다.


 고양이의 취향을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선택지를 주면 된다. 사람이 의도하고 원하는 선택지만 나열한다는 점에서 고양이 의견 100%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지를 마련하여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 확인한다. 어느 높이를 더 좋아하는지 궁금하다면 두 가지 높이로 밥을 준비해서 주고 무엇을 먼저 먹는지,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관찰해보는 식이다.


 사람이 의도한 대로 살아야만 하는 반려동물이지만 이런 식으로 숨통을 내어준다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돈만 낭비하는 기호성 테스트는 멈춰야겠지만, 다른 테스트는 힘이 닿는 대로 열심히 시도해본다.




습식 전환의 소소한 부작용 : 바삭한 사람 음식을 탐내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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