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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생 Dec 09. 2019

어디선가 읽은 너무 슬픈 소설

투병기

    어젯밤에는 태어난 게 너무 버거워서 주륵주륵 울었다. 어차피 죽어야 할 거면 왜 태어나버린 걸까. 조금도 고통스럽고 싶지 않아, 아픈 건 너무 무서워, 아프고 약해지고 외로워지고 멍청해지고 비굴해지고 그런 것들. 난 그런 것들이 너무 억울하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나아질 순 있지만 달라질 순 없는 그런 인생의 절차들이.

      나는 우리 할머니랑 대화하는 게 따분해서 죄책감에 의해서나 겨우겨우 한달에 두어번 할머니를 뵈러가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부담스러운 금액의 용돈을 주면서 나한테 자주 와줘서 고맙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는 한 삼 년 동안은 남이 기저귀를 갈아줘야 살아갈 수 있었는데, 나도 우리 엄마도 아빠도 수능 만점자씩이나 되는 내 동생도 운이 좋아야 겨우 할아버지와 비슷하게 죽어가겠지. 병원에 누워 죽기를 기다리는 그쯤 우리에게 남아있는 건 생의 가장 구질구질하고 징그러운 습관들. 그치만 당황하면서 죽어가기는 더욱 싫다. 설마 내가 여기서 죽겠어? 나 정말 이렇게 죽어야 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죽어가기는... ...


    여기까지 쓰다가 이만 모든 게 또 지겨워졌다. 발전없이 열네살 적 적은 일기 같은 글을 지금도 쓰고 있는 나. 모든 게 다 붕 뜬 얘기일 뿐이다. 어쩌라고란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왜냐면 이건 다 정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일 뿐이니까. 그런데 어째서 내겐 이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처럼 여겨지는 걸까. 째서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까.


 외롭지 않기 위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오랫 동안 간절하게 바라왔다. 내가  불안에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어린 시절 난 우기는 기분으로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소설 겸 일기 겸을 썼는데, 자꾸 해져서 관뒀다. 조금 더 어른이 된 지금은 난 스스로를 열심히 설득하고 다독이는 중이다. 하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 매일밤 이런 것들이 사무치게 두려워지는 건. 아마 내가 제때 자고 먹고 공부하지 않아서 그런 걸 거야. 아마 그건 내가 핸드폰을 너무 많이 만지고, 비참한 얘기들에 필요 이상으로 탐닉하고, 작은 감정을 붙잡고 엄살 떠는 사람이라서. 나 이렇게까지 불행해야 할 이유가 단지 태어났다는 것 외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아마 자발적으로 불행한 겠지. 그런 내용을 납득하고 납득시키는 과정 중에 있다. 근데 그러다 보면 자주 괴롭게 된다.


    어젯밤은 유독 괴로다. 처음으로 이런 마음으로라면 스스로 죽어버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아니, 방금 문장은 그냥 오바스러운 불행의 표현에 다르지 않고, 난 그 어떤 것보다 죽는 게 무섭다. 그래서 나는 어제도 그냥 지루하게 울다가 약을 먹고선 잠시 뒤척이다가 잠에 들었다.  저녁에는 즐겁고 싶어서 와인 한 병을 흥청망청 마셨다. 자기가 대만의 하버드를 다닌다고 뻐기는 친구들 얘기에도 웃으면서 대꾸하고 아. 그렇게 하루를 더 산 거다. 사실 나 매일을 뻔히 작동하는 걸지 모른다. 불행하다는 얘기는 거짓말인 것처럼.


    진심인데. 자라고 싶다 오래 동안 자라지 못한 것 같다 이런 협소한 감정으로부터

    그게 너무 쪽팔린데 한편 더 진심인 쪽은. 나 어떻게든 남에게 납득시키고 동정받고 싶기도 다. 왜냐면 정말 이게 내가 가진 전부라서. 밤마다 이런 생각이나 반복하는 게 내 개성이랄 게 되어버린 거 같아서.

    나 자꾸 이 자의식 덩어리 생각들을 귀중하게 부여잡으면서 어떻게든 이걸로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거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선생님은 언젠가 내 글을 읽고 옳은 말을 했다. 네가 지금 쥐고 있으려는 걸로는 누구도 만날 수 없다고. 당연히, 오랫동안 재밌게 읽힐 글도 쓸 수 없다고. 왜 네 일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라고. 그게 나를 오랫동안 상처 준다, 옳은 말은 위협적이니까.

    나 그 자리에서는 그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다 아는 척 다 이해한 척, 선생님 말씀을 받아쓰기처럼 옮겨적는 글을 썼다. 그런데도 계속 딴생각하는 걸 들키니까 겁이 나서 도망쳤다. 사실 여전히 그런 헛된 기대를 조금도 내려놓지 못. 나는 누구도 오래 좋아할 수 없는 이 불안을, 이 나를 어떻게든 인정 받고 싶다. 내가 그런 욕심이 있는 한 반드시 수많은 사람들을 질리게 할 거란 걸 직감할 수 있다. 그 간격은 돌이킬 수 없어질 거란 걸 다시는 같은 정도로 좋아질 수 없을 거란 걸. 어째서 이런 건 직관적으로  수 있게 되는 걸까? 내 욕심을 막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알고 있는 건 어디까지고 변할 수 있는 건 어느 만큼인걸까. 질리게 더듬는 내 안 좋은 습관과 생각의 회로 질책하고 실수를 반복하고 고치지 못해서 도망치고. 난 지금 상이 다 뻔하고 지겨웠던 열네살 적으로 돌아가는 중인 것 같다. 변하지 못할 것 같아 절망적이.


     깊이 심호흡을 하고 나면 냉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런 글 같은 걸 더 이상 남들에게 읽히고 싶어하지 않는 날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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