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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생 Sep 20. 2021

담배 피러 가기도 귀찮을 때 듣는 노래

보수동쿨러 <죽여줘>


  황금 같은 연휴라고들 하는데 나는 고시원 같은 원룸 방에서 누워만 시간을 보냈다. 30분 거리에는 엄마 아빠가 살고 있는 집이 있는데 가면 마음껏 담배를 필 수 없으니까 가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엄마 아빠가 살고 있는 곳에 가지 않는 데엔 이유가 많다.


  올해 들어 담배가 늘었다. 비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담배를 핀다.

  언젠가 아빠는 내게 담배는 안 피지? 운을 떼며 이런 경고를 했다. 담배는 진짜 인생에 아무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나 피는 거야. 아무 재미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재미를 만들어보려고 피는 거라고. 그때도 담배를 피고 있었던 나는 무감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했다. 알았어, 절대 안 필게. …나는 담배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자해 행위라고 생각해. 나는 그 대화를 끝내고 나서 베란다로 나가서 담배를 뻑뻑 피웠다.


  그 뒤에 덧붙이지 못한 솔직한 말은, 사실 아빠가 말한 그런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었다. 스물다섯살이고 한창 때 나이고 장애도 없고 건강에도 큰 이상이 없고 친구 관계도 가족 관계도 평범하고 과분한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인생을 견디지 못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몸에 큰 칼을 대고 약 몇백알을 삼키고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물에 잠겨 죽는 것은 무서우니까, 야금야금 내게 주어진 평생 같은 무언가에 담뱃재나 뿌리고 싶다. 가장 소극적인 자해 행위가 내게는 필요하다. 목을 압박하기 전에는 숨을 쉬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무언가를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그것이 내게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겠으니까. 나는 내게 생명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담배의 불쾌한 냄새가 손과 옷에 밸 때, 나와 같은 표정으로 똑같이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담배를 피는 사람들아, 미안하지만 우리는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고 나는 그것이 때로 몸서리 치게 싫을 때가 있다. 마음의 빈곤 상태를 암시하는 반복적인 기계 동작과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는 불결한 냄새.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나, 생각하면 쿵쾅쿵쾅 심장이 뛰고 불안해진다. 불온한 것을 불온하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존재 자체가 불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담배 냄새를 싫어하면서도 담배를 자꾸 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빠 말마따나 담배는 권태를 암시한다. 사는 게 권태롭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담배를 피었더니 그게 너무 자주 있는 행사가 되어버렸다. 권태 때문에 담배를 폈고, 담배를 폈더니 권태가 습관이 됐다. 이 일련의 과정이 내게 아무런 저항감 없이 당연했다.


  나는 권태로운 사람이 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물론 이 문장은 거짓말이고 죽기보단 권태를 선택한 나는 오늘도 담배를 피며 보수동쿨러의 죽여줘를 듣는다.

  죽여줘 라는 제목은 내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하는 말이다. 내가 살아온 모든 방식을 부정해줘, 내가 더 굳어지지 않게 나를 파괴하고 도려내고 축소해줘. 모처럼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을 때건 인터뷰를 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친구들을 만났을 때건 나는 그들의 힘을 빌려 내가 타고난 것들을 닳아없애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우, 그대 나를 죽여줘. 내가 가지지 않게, 내가 가질 수 없게, 내가 커지지 않게… 내가 휘청휘청, 그러나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는 권태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지 않게, 내가 가질 수 없게, 내가 커지지 않게… 누군가에게 나를 던져 산더미처럼 불어난 권태를 와장창 깨뜨려버리고 싶다.


  권태는 죽음에 어디까지 가까워졌나 가늠하며 걷는 하염없는 뒷걸음질이다. 죽음으로부터 너무 먼 어떤 권태는 바보스러워 보이기 십상이다. 

  담배를 피면서 나는 뒷걸음질 친다. 죽음을 재촉하고, 동시에 죽음을 지연한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뒤로 꺾여 넘어지지도 않는다. 뒤뚱뒤뚱 주춤주춤 겁먹은 모습으로 오래 뒷걸음질 치는 나를 보면 갑자기 자괴감이 들 때도 있는데, 이럴 때면 무언가를 향해 뛰어가는 박진감 있는 마음이 부러워서 미안하다. 그것이 설령 죽음이 될지라도.


  그러나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정말 이런 사람 밖에는 될 수 없었는걸. 어떤 사람이냐면 마음이 빈곤한 사람. 일상의 소소함에 기뻐할 줄 몰라서 남들 다 사는 인생을 두고 지겹다고 중얼거리는 사람. 담배냄새처럼 곤란한 기질을 타고나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해서 외로운 사람. 알다시피 담배냄새는 말그대로 찌든다. 비누로 벅벅 씻어내도 향수를 칙칙 뿌려봐도 씻기지 않는다.


  감출 수 없고 들킬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곧 나인 삶은 너무나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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