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도 투덜거렸다 어쩌면 줄곧 똑같은 이유로
2018.04.19.
대체 왜 얼굴이 아픈 거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다. 공부도 하고 제 시간에 자고. 씨발 그런데 제때 비타민을 챙겨먹는 것도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유독 상태가 안 좋았다. 작년 4월은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8.05.08.
일평생 안절부절 살다가 뒤질 것만 같다고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면서 생각했다. 근데 그런 중에도 오늘 커피가 맛있다고 어제 쓴 내 아랍어 글씨는 참 예쁘다고 남의 인스타를 보고 그들 일상은 어쩌네 실없이 생각하게 되니 아 나는 왜 불안조차 산만한 사람인가 스스로의 가벼움에 약간 절망하게 되는 거다.
2018.06.04.
나는 내 생각을 영어로 글 쓰구 말할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누가 내 화장을 지워주고 침대에 뉘여주고 가만가만 머리를 쓸어주고 내일 오후 세시까지 푹 자도 된다고 말해줬음 좋겠어. 근데 참 딱하게도 보고 싶다고 떠오르는 얼굴 하나 없구 왜 글케 재미없게 사냐?
2018.09.29.
10시간 째 부정적인 기분 없는 중이라 자축함. 반시 고구마와 라임 가향 홍차 두 분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힘내서 건전지랑 종량제 봉투 사러간 나 자신에게도. 1퍼센트의 사캐즘 없이 칭찬해주고 싶다. 주말에 과제 몇 개 미루고 알쓸신잡 좀 본다고 스스로를 개패듯 패고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문자로 써놓으면 너무 비상식적인 건데 그걸 문득 낯설게 느끼고 그만하겠다고 다짐하는 데까지는 너무 오래 걸린다.
2018.12.09.
땡겼던 음식을 되는대로 질러놓고 몇 입 먹고 난 뒤 고장난 사람처럼 멍하게 폰하기. 무감각한 내가 싫다. 나를 언젠가는 행복하게 했던 것들을 모아놓고 멍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툭툭 두들기다가 이것들 참 식상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좀 끔찍하다. 닳아지고 싶지 않은데 자꾸 나를 닳아 없애는 건
그래미 어워즈를 타도 마약이 없으니까 기쁜 줄도 모르겠다던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그녀의 죽음을 떠올리다가. 좀 서늘해져서 오늘은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남자나 마약이 아닌 나 자신이 나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차라리 좀 더 강한 사람인 걸까? 나를 닳아 없애는 일도 절대 남에게 맡기지 않는, 반드시 내가 하고야 마는 이 완고함. 에 대해 생각한다. 가까운 친구들이 열없이, 때론 재수없다는 비아냥을 담아서 칭찬하는 그 부분에 대해서.
(20190915 : 나는 외로웠던 거 같다. 항상 그랬는데 이 날은 유독.)
2019.04.08.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집을 나섰고 나는 지금 뭔가 잃어버리는 중. 아우 씨발 그냥 묵직하게 따뜻하고 비누 냄새 나는 XX 몸뚱이 끌어안고 하루종일 무난한 영화나 보고 싶어. (...) 오늘 내가 왜 이렇게 와르르 와장창 상탠지 알겠다. 마음이 또 급해진 거다 시간과 시간 돈과 돈 때문에. 스트레스 앞에서 꿋꿋한 사람이 되고 싶다 게을러질 때마다 지겨운 낭패감 겪고 싶지 않아.
2019.06.10.
1. 어쩜 넌 웃을 때 그렇게 둥글게 웃니. 넌 참 사랑하는 것이 많은 것 같아 그게 부러워. 덥썩 화가를 가수를 책을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네가 멋있어. 나는 사랑보다는 불평이 항상 더 쉽고 사랑하게 된 것에 대고도 토를 달아야 하는데 너는 그러지 않지. 자기 마음을 절대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점 진짜 매력적이야
2. 너는 네가 귀가 얇다고 하지만 나는 너를 만난 첫 해부터 네가 야무지고 강단 있다고 생각했어. 너는 자기 텃밭이 있는 사람 같아 거기서 많은 걸 느끼고 몇 개는 입 밖에 내지만 몇 개는 간직하고. 그래서 그런가 나는 계속 그 세계가 궁금하고 힐끔거리고 싶고 그러더라고.
3. 여름이라는 계절에 네게 안 어울리는 옷은 없을 거야. 올해 네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많이 봐서 좋다. 너는 네가 삐딱하다고만 말하지만 너는 또 한편 되게 잘 웃고 그게 잘 어울리기도 해. 꾸준히 일기를 쓰고 감정을 말하는 너를 보면서 네가 사랑이 너무 많아서 때때로 괴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4.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랑 올해도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아. 그리고 그건 정말 전적으로 너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내 실낱같은 인내심, 고집스러움, 이러저러한 미성숙을 견뎌주어 고마워. 시절이 지나 요즘 나는 너의 멋진 면이 자꾸 눈에 들어와. 마음이 넓고 털털한 것, 아이디어가 많은 것, 호들갑만 떠는 나와는 달리 뭐든 척척 해결하는 것도.
(부러운 사람들에 대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반드시 부러움으로 치환되는 어린 마음에 대해서도.)
2019.07.22.
ㅈ과의 논쟁에서 나는 '비이성적이고 정도를 모르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논쟁을 이기는데 효율적, 이지 않은 낙인을 피하기 위해 나는 비겁하게 말을 굴렸다. 항상 정답이 되고 싶은 내 마음의 버릇이었다. '제대로'라는 부사가 나에게 행사하는 강력한 힘에 대해서 생각한다.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는 어떤 걸까? 그 사람도 나처럼 앞의 사람을 존나게 우스워하면서도 한편 여전히 그 사람에게 승인받기를 원할까? 그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전략들이었는데, 돌이켜 보니 나는 이미 그의 룰에 순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정답 페미니스트 되기'를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것은 남성들의 유성애적인 욕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시도때도 없이 나를 화나고 무안하게 하는 ㅈ를 이기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남성에게 욕망되지 않는 여자'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고 있었다. 개념은 있지만 공격적이지는 않은 여자. 예쁘려고 애쓰지는 않지만 모든 순간 예뻐 보이는 여자. 욕망되는 여자 되기라는 전술과 페미니스트로서의 품위가 뒤섞여 나는 이중으로 몰아세워졌다. 나는 ㅈ에게 안전한 단어로 평등 개념을 설교하다가도 때때로는 그냥 '귀엽게' 웃고 농담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2019.07.30.
술 쳐먹고 또 나 혼자 한참 비겁한 사람들 (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었어, 돈 벌려고 하다 보면 이렇게 살 수 밖에 없게 돼, 라고 말하는 사람들) 욕을 한 바가지 했다. 들어주는 언니의 오묘한 표정. 그만 말해, 늘 그렇듯이 뒤늦게 스스로에게 주지시켰고 입구녕을 틀어막기 위해 맥주를 들이켰다. 성격 유형 검사를 하다가 마음에 덜컥 걸린 한 문항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인정받기 위해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는.
2019.08.05.
(어느 날에는 또 이렇게 자신 있게 말했다.)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라는 근사한 영화를 보고 따뜻하고 희망찬 마음으로 쓰인 리뷰를 읽었다. 나는 조금 뿌듯했다. 이젠 더 이상 자기를 혐오하고 남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연약한 인물을 보고 과몰입하지 않게 되어서. 이제는 예전보다 덜 후회하고 창피해하고 씁쓸해 한다.
영화의 희망찬 메세지를 걷어차지 않을 수 있고, 사람의 선한 마음에 순순히 감동할 수 있게 된 시절에 언니와 영화와 언니의 글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다. 같은 맥락에서 언니의 글 중 가장 마음 깊이 와닿았던 대목이 있다. 그렉은 "레이첼의 흔적이 불어주는 바람을 타고, 여전히 겁을 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는 점.
2019.08.31.
안 읽던 책을 모처럼 읽으려니까 40페이지 읽는데 8시간이 걸렸고 에어컨 틀어놨는데도 땀이 뻘뻘 나기 시작했다. 공부고 일이고는 인간 본성과 안 맞는다고,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라고 했던 TV 명언이 생각난다. 데이식스 원필이 보고 싶다... 난 지금 <겨울이 간다>를 필사하면서 내 세계에 없는 사람을 그리워 하는 중인 거다. 세상에 없는 기표 이미지에 흔들리는 것이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가장 손쉬운 창구라서, 어쩌면 유일한 창구인 것 같기도 해서 조금은 자괴감이 든다. 인싸 수행하고 나면 반작용처럼 이백 배 더 괴팍해지는 건 왜일까, 신기하네... 사실 그냥 열없이 한 말이고 그다지 신기하지 않다. 나는 내가 늘 지겹고 성가시다. 그리고 이런 글을 계속 복제하다 보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도 지겹고 성가시게 할 것이기에 조금 절망적이기도 하다. 재밌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건 외롭지 않고 싶다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