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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이 Sep 19. 2021

'짱구는 못말려'의 유리

한유리의 가능성

짱구는 못말려에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월존재들이 있다. 어른의 정신을 가진 짱구부터 역사상 가장 머리가 좋은 개 흰둥이까지.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천재가 또 하나 존재하는데 그녀는 바로 사쿠라다 네네(국내판 : 한유리)이다.

신이 내린 재능이라는 말은 다섯살부터 현실적인 대본을 쓸 수 있는 유리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남편의 가출부터, 시어머니와의 갈등이나 네 아이를 키우는 엄마까지. 그녀가 쓴 대본의 주제들을 보면 거대한 소나무의 나뭇가지를 보는 듯 하다. 비록 나무를 받치는 기둥은 막장 하나뿐이지만 본디 나무기둥은 하나로도 충분한 법. 이 소꿉놀이에 부정적이었던 짱구 엄마조차도 점점 몰입된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혼이라는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능력은 각종 드라마를 섭렵하셨을 짱구엄마도 인정하셨다.

뿐만 아니라 유리는 그것만을 위해 태어난 천재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몰입의 흔적이 보인다. 늘 머릿속엔 소꿉놀이로 가득 차 있으며 아이디어를 위해 수첩을 항상 들고 다닐 뿐만 아니라 다섯살이라는 어린나이에 밤을 새서 대본을 쓰는데 이런 몰입과 집중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득 꿈을 꾸다가 깨어난 직후 꿈의 내용을 메모해서 작품으로 남겼던 브람 스토커와 제임스 카메룬이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천재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유리의 아이디어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 가출한 짱구아빠에서부터, 훈이와 짱구의 다툼까지 상황과 인물을 가리지 않고 소재로 승화시킨다.

단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배우를 직접 섭외하고 연기력과 상황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이른 나이에 무대 연출도 깨우쳤다. 그녀에게 자본만 주어진다면 수지의 아마추어적인 세트구성과는 다른 특별한 무대를 만들어낼 것이다. 유리는 지휘만 하는 천재 타입은 아니다. 다른 배우들을 압도하는 메소드 연기로 가장 빛나는 연주자처럼 무대를 이끌어 나간다. 심지어 그녀가 주인공이 아닌 극에서도 말이다. 철수 병원에 오디션을 보러 온 엉뚱한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가 섭외한 배우는 항상 극에 어울리며 평범한 사람은 보지 못할 배우의 숨겨진 재능을 끄집어 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맹구의 나무와 짱구의 강아지는 역사에 남을 조연이었다. 인간을 동물이나 사물 역할에도 거침없이 맡겨버린다. 다섯 살 짜리 아이들의 연극에서는 흔할지도 모르지만 장르가 막장 드라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하게 배우가 변경되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각본은 흠 잡을 데 없다. 훈이의 거부로 아이 역할을 맡게 된 원장 선생님이나 채성아 선생님이 그것을 증명할 정도이다.

연기와 각본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녀도 인간인지라 완벽하지는 않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인데다가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평범한 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때, 그 장난감을 파괴한다. 철훈맹짱과 같은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신이다. 늘 배우들에게 지적을 하고, 교정을 하려 든다. 천재에게 자주 보이는 단점이다. 왜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하지 못할까?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천재는 범재를 이해 못한다.

유리는 코미디에도 재능이 있다. 얘기치 않던 만담에서도 애드립은 불타올랐다. 유리를 지켜보던 모든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낼 정도로 가히 천재적이었다. 심지어 남자 역할이었는데도!!! 그녀의 재능은 드라마에서부터 코미디 다양하다. 다만 춤과 노래는 부족하다. 뮤지컬이나 가수로써의 재능은 없다고 봐도 된다. 악기 연주도 그다지 흥미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체력도 부족하다. 체력은 점점 더 커갈수록 나아질 것이고, 천재라고 해서 모든 분야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상술한 근거들을 종합해봤을 때, 내가 보기에 유리는 천재가 맞다. 놀라운 것은 아직 다섯살에 불과하다는 것. 유리의 부모는 가당찮은 피아노 학원에 보낼 시간에 글을 쓸 자유를 주고, 스트레스를 풀려는 행동(토끼 인형 폭력 사건)등을 억지로 말리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간섭은 아이의 재능을 망가뜨리는 법이다. 모든 아이는 재능을 갖고 있지만 유리는 그 재능이 좀 더 일찍 트였다.

자신만의 능력을 계속 발전시켜 앞으로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그녀를 만나기를 기대한다. 거기서 막장드라마가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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