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와 생활자

과테말라여행기

by GED

23.05.2016
<과테말라 Atitlan호수 근처 아주 작은 마을 Santa Cruz La Laguna. 식당 단 하나, 카페 하나, 5-6개의 구멍가게로 이루어진 시장하나,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주 작은 학교가 전부인 이 곳에 홀로 외국인 관광객으로 지내고 있다.>

이 곳에 온지 3주라는 시간이 지나니 내가 품었던 이 동네에 대한 호기심도,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이 동양 멀대의 호기심도 줄어간다. 난 이미 식당은 물론 구멍가게, 심지어 길거리 노점상에 있는 모든 메뉴의 맛은 물론 가격까지 꽤차고 있고 왠만한 말썽꾸러기 꼬마나 가게주인들의 이름까지 외우고 있다. 당연지사 이 동네 꼬마들은 '낌(kim)'이라는 내 이름이 마치 유행가라도 되듯이 부르고 다닌다. '낌'의 부제는 'un quetzal(백원만)' 이다.

그들도 나도 이제는 익숙하다.

사람보다 많은 똥개들이 밤새 짖어 대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던 나는 동네 꼬마들이 모두 등교하고 난뒤에야 눈을 뜬다.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제껴 '오늘은 전망이 좋으려나?' 하는 기대는 '오늘 빨래를 할까?' 라는 일상적인 생각으로 대체된다. 이틀에 한번꼴로 단수되는 상황에 나의 황당한 헛웃음은 볼 수 없고 자연스레 구겨진 모자를 꾹 눌러쓰고 카페로 향한다.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Kim!', 'Hola!' 라는 동네 꼬마들의 인사는 반쯤 무시하고 땅만 보고 걷는다. 더이상 개똥은 밟지 않는다. 전망이 좋은 카페에는 늘 그렇듯 아메리칸 관광객 두어팀이 카메라로 아름다운 전망을 담고 있다. 이 동네에서 관광객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이 전망좋은 테라스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것 뿐임을 알기에 가장 전망 좋은 중앙을 비워주고 테라스 오른쪽 구석에 앉아 과일주스를 시키고 책을 펼친다. 이제는 전망을 배경으로 음식사진을 찍지 않는다. 오후에는 스페인어 수업을 하러 이곳 초등학교 선생님 'Marta'의 집에 간다. 선생님 아이들을 위해 시장에서 조그만 초코케익 몇조각을 사가는데 거스름돈이 없다며 돈은 내일 달란다. 'Marta' 선생님의 집을 좁은 골목사이로 꼬마들을 헤치며 찾아간다. 이제는 힘든 오르막 내리막길을 걷지 않고 지름길로 간다. 내 질문공세에 지친 선생님을 뒤로 하고 선생님 딸인 사랑스런 Velvita와 병원놀이를 한다. 배가 아프다 하니 양치를 하루에 3번씩 꼭 하라고 한다...응!? 집으로 돌아온 나는 파리 수백마리가 점거하고 있는 부엌으로 '시내에서 새로 영입한 코팅프라이팬'을 앞세워 침투한 후 성냥으로 불을 지핀다. 어느새 몰려온 같이 사는 꼬마들이 큰눈과 반쯤 벌어진 입으로 무언의 협박을 한다. 나는 끓는 물에 파스타 한 움큼 더 넣는다. 밥을 먹고 내방에 올라오면서 빨래와 수건을 걷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근처 교회에서 찬양소리가 들려오고 군악가같던 찬송은 금세 오열로 바뀐다. 목사님의 전투적인 설교에 해는 호수넘어 뒷산으로 도망간다. 이어폰이 없는 나에게는 저 소음에서 도망칠길이 없다. 빈약한 조명아래 소리내어 스페인어 책을 읽고 있는 중에 빗방울이 지붕을 때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의 소리가 인간의 소리를 집어 삼킨다. 또 다시 정전, 난 오늘도 안씻고 눈을 감는다.

눈이 번쩍 떠진다. 이곳에서 더이상 '여행자'일수 없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관대한 미소도 호기심 많은 눈동자도 없는 '생활자'가 된것이다. 떠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