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을 만났을 때

과테말라여행기

by GED

14-15.05.2016
<과테말라 Atitlan호수 근처 아주 작은 마을 Santa Cruz La Laguna.
식당 단 하나, 카페 하나, 5-6개의 구멍가게로 이루어진 시장하나,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주 작은 학교가 전부인곳에 홀로 외국인 관광객으로 지내고 있다.>

방에서 보이는 볼케이노


내 방앞 테라스에서는 호수와 그 건너편 볼케이노가 보인다. 마냥 넉놓고 아침마다 바라보다 문득 저 볼케이노 정상에서 보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주말에 3개의 볼케이노 중에 가장 높은 Vocan Atitlan에 가기로 결심한다. 이 볼케이노는 다른 볼케이노들과 달리 1박2일 코스이고 정상에서 하룻밤 잘 수 있고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잡는다. 드디어 호주에서 사온 텐트를 써먹을 수 있겠구나!

더 이상의 정보, 가이드 따윈 필요없다. 난 휴대용 잠자리가 있고 산이야 그냥 위로 위로 올라가다보면 정상 아니겠는가? 이런 무모한 마음을 가지고 볼케이노로 향한다. 볼케이노 아랫마을에서 하는 주의나 가이드제안은 싸그리 무시 한체! Tuktuk이라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드라이버에게 볼케이노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본다. "3시간반?"
엥? 겨우? 정상이 해발 3500미턴데? 지역자체가 해발이 높아서 그런가 하는 마음에 간단히 바나나 하나, 주먹만한 빵2조각, 물1리터를 챙겨서 무턱대고 산을 오른다. 아침부터 장염증상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지만 뭐 겨우 3시간 반이라는데! 하지만 입구부터 이상하다. 전혀 입구처럼 생기지 않았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표지판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택시기사 내려준 볼케이노 입구..


왜이리 갈림길은 많은지. 길을 잃고 찾고 반복하다 나무꾼을 만났다. 큰 도끼와 큰 칼(마체때라고 한다)을 들고 있었다.

들고 있는 저 칼을 마체때 라고 한다.

조심스레 가는길을 물으니 정상아래까지 나무하러 간다고 한다. Vamos?(같이갈래?) Si(Yes). 내가 앞장서고 나무꾼이 뒤로 오는데 영 그 마체테까 걸린다. 가다가 내 뒤통수를 후려 칠것 같다. 대화를 걸며 쓱 뒤로 쳐져서 걷는다. 올라가는 도중에 마체때를 든 또 다른 나무꾼들을 만나서 동행한다. 벌써 두시간을 올랐는데 아직 반도 못올라온 모양새다, 그 택시 운전기사는 한번도 이 산을 올라오지 않은게 틀림없다! 나무가 우거져서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무턱대고 나무꾼들을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 중간 쉬는 시간에 물어보니, 하루도 빠짐없이 산에 올라 나무를 해서 마을 가구상에 판다고 한다. 그렇게 고된 중노동을 하면 50께찰 우리나라 돈으로 7500원을 번다고 한다. 난 10배를 더 줘도 못할일인데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물어본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냐고, 다른 사람들처럼 외국인 상대 등산 가이드를 하면 이것보다 훨씬 많이 벌지 않느냐고. 이 질문에 그저 웃는 모습을 보며 난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하고 싶어도 못할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가이드처럼 영어도 못하고 심지어 스페인어도 잘못하는데 무슨 가이드란 말인가. 짧은 생각을 탓할새도 없이 우리는 다시 길을 오른다. 등산 3시간 경과, 나는 이미 많이 지쳐갔다. 장염증상에 탈수현상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한다. 더 큰 문제는 오늘가서 하룻밤자야 되는데 음식과 물이 부족하다는 것! 산길오르는데 열매가 있다 싶으면 먹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No!"

내가 슬슬 뒤쳐지니 앞에서 나를 기다려 준다...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건 동행이 아니라 거의 가이드 수준이잖아! 얼마 못가 또 휴식을 하는데 은근슬쩍 웃으면서 내게 물어본다. 우리한테 얼마나 줄꺼야? 응? 내가 언제 가이드해달라고 했어? 난 그냥 동행한건데... 이 말을 하면 왠지 저 웃음이 사라지고 저 무시무시한 칼로 나를 후려칠것만 같아 나 돈이 얼마 없다고 줄수 있는게 25께찰 밖에 없다고 하니 나무꾼들은 그것도 좋다고 한다. 이 끝없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가 난 도저히 나무꾼의 페이스에 따라 갈 수 없었고 그들에게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봤다.

"30분!"

"아하! 그럼 우리 여기까지만 같이하자! 너희는 일하러가! 나는 나 혼자 올라갈께!"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그들이 산을 나무를 지고 두번 왕복해야할 돈을 쥐어주니 정말고맙다고 하며 올라왔던 산을 다시 뛰어 내려간다. 대단한체력이다!


난 이제 홀로 올라간다. 등산 4시간째였지만 이제 겨우 30분 남았다는 말에 힘을 내어 올라가본다. 그렇게 30분... 아니 망할 3시간을 더 올라간다. 이 놈의 경사는 내려갈때 걱정될 수준이다.


정상은 볼케이노 답게 화산재들이 덮고 있고 곳곳에 연기가 피어난다.구름은 저만치 아래있고 하늘위를 걷는 기분...은 개뿔 난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일단 텐트를 치고 메트를 깔고 얼마남지 않은 물을 한 모금 아껴마시고 드리눕는다. 산정상 공기는 춥지만 볼케이노 바닥은 뜨끈하다!


그래도 정상에 왔으니 해떨어지기전에 사진한방은 찍어야 되지 않겠나 하며 텐트를 박차고 나와 사진을 몇방찍는데 저쪽 반대편 루트에서 (반대편루트가 있는걸 몰랐다) 등산팀이 올라온다. 인원은 한 7-8명으로 과테말라 현지인이었다. 역시나 하룻밤 잘려고 텐트를 피는데 나를 발견하고 물어본다.

"혼자왔어?"

"응 혼자왔어"

"놀라운데?"
응? 뭐가 놀랍다는 거지...? 사진을 적당히 찍고 나는 텐트로 들어와 에너지를 아낀다.

따뜻한 내 잠자리



물도 한모금 밖에 없고 빵도 반조각 밖에없다. 내일 하산할때까지 버텨야한다! 그렇게 오후 4시부터 다음날 5시 해뜰때까지 나는 텐트안에서 볼케이노 바닥에 등을 지진다. 너무 배가고파 8시 정도에 남은 빵조각을 부스러기까지 빨아들인다.


스스로 꾸짖는다. 이런 준비성 없는 놈아! 이런 험한 곳에 오면서 기본적인 준비조차 안해오다니! 사실 이게 첫번째가 아니라 두번째다. 예전에 필리핀에 있는 두번째로 높은 산 정상에서 하룻밤을 묵은적이 있는데 그 때 싼맛에 샀던 텐트는 구멍이 뻥뚫려있었고 침낭은 현지인용이라 내 가슴까지 밖에 안왔으며 나름 계산적으로 생각해서 사간 계란들은 날계란이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거 누가 한말이었더라? 전 여자친구였나?

다시 돌아와서 긴밤이 지나고 해가 뜨기 시작한다. 그래도 해발 3500미터의 산에서 보는 일출은 지난시간의 고생을 보람으로 바꿔줄만한 아름다움 그 이상이었다. 해가 안개들을 걷어내고 호수, 산, 도시들을 모두 비출때 나는 다시 내 상태에 집중한다. 그렇다. 나는 배고프다. 내려가서 망고를 한 열개먹겠다는 열망에 빠르게 텐트를 정리한다. 대충 집어 넣고 집에가서 다시 정리하자!


산길을 걸어 내려온다. 아니 미끄러지다 시피 내려온다. 두달전에 축구하다 부러졌던 오른쪽 발목뼈가 잘못짚을때마다 비명을 지른다. 깁스를 하고 나서 푸른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뼈도 인대도 근육도 사실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등산, 그리고 장염과 배고픔까지 최악의 상황이다. 올라갈때 만큼 천천히 내려온다. 역시나 사람은 없다. 현지 등산객들은 올라왔던 다른 길로 내려갔고, 나는 올라왔을때 처럼 내려갈때도 유일한 등산객이었다.


한 중간쯤 내려왔을까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2명이 내 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날렵하게 총총 뛰어 내려오고 있다....복면을 쓰고... 한 2초간은 상황판단을 할 수 없어 말똥말똥 그 복면쓰신분들을 관찰한다. 허리춤에 어제 보았던 나무꾼들이 가지고 다니는 마체때(나무베는 칼)가 보이고 손에는 팔뚝만한 새총으로 나를 겨누며 다가 오고 있다.

"Sientate!"

앉으라고 한다. 앉아?...응? 튀어!!

나는 도망친다. 분명 반쯤 기어서 내려오고 있던 내가 뛰고 있다. 새총의 총알이 내 머리를 스친다. 저 새총으론 내 돌머리를 뚫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판단을 하며 계속뛴다. 뛰면서 드디어 상황판단을 한다. 아 내가 산에서 산적을 만났구나!


바짝 쫒아오는 산적에게 지갑을 꺼내 돈을 던진다. 이것들이 그냥 무시한채 달려온다. 나는 계속뛴다. 뒤를 돌아보니 없다! 산적이 안보인다! 그와 동시에 내 몸상태가 인식된다. 그렇다 지금의 내가 뛰고 있는건 기적이다. 나는 너무 힘들다. 뛰는 속도가 살짝 느려졌을때쯤 왠걸 아까 그 산적이 앞에서 칼을 휘두르며 길을 막고 있다. 지름길로 온것이다. 산에서는 산적이 빠르다...


나에게 다가오며 칼등으로 나를 내리친다. 어라? 칼등? (바람의 검심...?)맞으면서 생각한다기보단 느꼈다.

'아 이놈들이 날 죽일 생각은 없구나!'

나는 재빨리 다시 뿌리치고 도망간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다. 걸어 내려가기도 힘든 몸상태에 무거운 가방까지... 결국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다시 잡혀 칼등으로 등짝과 팔을 두들겨 맞는다. 많이 맞는다. 하지만 아프지 않다. 아니 아픔을 느낄새가 없다. 가방에 있는 핸드폰과 비상금들의 위치를 생각하고 지켜야 할 우선 순위를 순식간에 메긴다.

지갑>비상금1>비상금2>핸드폰

가방을 안고 두들겨 맞으면서 내 생에 가장 빠른 두뇌회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전신구타를 시원하게 받은 후, 나는 가방을 열어 포기 했다는둥 소지품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내가 도망가면서 발성연습을 해서 그런지 이분들도 걱정하는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고 있다. 난 최대한 천천히 쓸모없는 것들 부터 하나하나 보여준다. 지갑에 있는 돈은 이미 아까 던져버렸고... 요놈들도 애가탄다... 마스크 사이로 눈빛이 보인다. 그러면서 나는 다 포기했다는 둥 내 우선순위 3순위인 비상금1을 넘겨준다.


"Aha~ Aquí está 아하 여기 있구만"

내게 칼을 겨누고 있는 산적1 이 말한다.

만족하는 눈치다. 일어서서 망을 보고 있는 산적2: "movil, movil"

이러면서 내 폰을 찾으라고 한다. 폰은 내 우선순위 1위!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Por favor, por favor(please please..)... "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꽉쥔다.
산적2:"Para solo ver, para solo ver...(그냥 보기만 할께...)"


뭐지? 21세기 산적은 이렇게 착한건가? 눈빛도, 새총솜씨도, 칼등으로 때리는 것도, 그리고 이 말투도... 이놈들 착한산적이다!
빠른 두뇌회전의 경험은 한번 더 일어난다. "솰랴샬랴살롸~ "

내가 내 핸드폰의 중요성에 대해서 스페인어로 설명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스페인어를 잘했던가?!


결국 나는 불쌍한 척을 하여(아니 실제로 불쌍했다, 아주 많이 불쌍했다.) 우선순위 1,2위를 지켜내고 지갑의 돈과 비상금 1을 내준다. 그외에 다른 잡동사니, 시계, 보조베터리, 이어폰 심지어 썬크림과 여행용 스킨로션도 가져간다.


이제는 이분들이 제일 비싼 침낭과 텐트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사실 침낭에 거금, 우선순위 2위인 비상금2가 있다! 난 착한 눈동자를 가진 산적2의 눈을 보고 말한다.

"나 집없어, 내가 잘곳이야..."
내게 침낭과 텐트를 돌려준다... 임꺽정이 탐낼만한 놈들이다.

산적들이 내게 신고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산속으로 사라진다. 흙투성이 된 옷가지들을 가방에 넣는데 누군가가 나한테 한말이 떠올랐다.

'오빠는 안전불감증이 있는 것 같아요!'

자책감, 분함, 살았다는 안도감이 머릿속에 돌다가 결론은 배고프다는 몸의 신호에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머릿속에는 꿈만 같았던 방금 상황들과, 마을로 내려가 망고를 먹는 내 모습이 겹친다.


기진맥진하며 산에서 내려왔고 나는 히치하이킹을해 마을 경찰서로 간다.

"저산에서 강도를 만났어!"

"응 저산에는 항상 강도가 있어, 가이드를 데리고 갔어야지!"

응..?! 항상 강도가 있다고? 그걸 알아? 경찰이? 조금 더 원활한 조사를 위해 영어통역사를 기다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무능한 과테말라 경찰이라는 걸 파악한 나는 그냥 뛰쳐나왔다.(무작정 기다리기엔 너무 배고팠다) 그리고 곧장 시장에 가서 치킨과 망고를 먹었다. 이틀간의 욕구가 채워지는 순간과 동시에 다른 욕구가 생겼다. 졸렸다 피곤했다 씻고 싶었다. 나는 배를 타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와서 재빨리 씻고 침대에 누웠다. 무용담이니 하소연이니 다 필요없었다. 나는 졸렸고 잤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남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뭐 이정도의 질문을 가지고 왔다. 아직도 답은 모르겠다만 지난 이틀간 난 단 한번도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온통 내 머리속은 그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나의 생각뿐이었다. 힘들다, 아름답다, 배고프다, 나는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