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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하 Oct 01. 2023

화장품이야말로 줏대좌가 되어야 하는 이유

뷰티 마케터의 화장품에 대한 가치관


줏대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화장품을 정말 좋아했다.

엄마와 마트에 가면 당시 아모레퍼시픽 매장에서 배포하는 "향장"을 가져와서 10번은 족히 정독하곤 했다.

어린 내가 읽기에도 영양가는 거의 없는, 카탈로그에 가까운 매거진이었지만 신제품이나 마사지법을 다룬 일러스트나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인가, 나는 스케치북에 매우 자유분방하게 생긴 여자를 검정색 라인으로 그려놓고 그 위에 수채화로 화장하기를 정말 좋아했다. 기억하기로는 하루에 대여섯명은 그렸던 것 같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화장품을 좋아했던 나에게 엄마가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이란 책을 사줬다. 흐릿한 기억으로는 화장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읽어봐~라고 하셨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책의 저자는 스킨,토너,에센스,에멀젼,앰플,세럼,수분크림,영양크림,탄력크림 등등.. 다 같은 원료를 농도만 다르게 해 차곡차곡 쌓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잘 맞는 토너와 크림, 선크림만 있으면 사실상 에센셜한 스킨케어는 다 된다는 결론이 흥미로웠고 설득력이 있어 나는 곧이곧대로 믿기 시작했다. (해당 책은 몇년 후 화장품 성분의 시대를 열어준 여러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소위 20가지 주의성분이라는..) 

그 나이가 대부분 그렇지만, 스킨케어보다는 메이크업에 먼저 눈이 뜬 나는 차츰 이 책의 내용을 잊은 채 립밤부터 시작해 각종 메이크업 제품을 섭렵하고 알바비의 상당수를 화장품에 투자하는 코덕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그 책을 대학교 졸업반 즈음 다시 읽었는데, 갑자기 책의 내용이 나에게 엄청난 설득력으로 다가왔다. 당시 졸업전시 및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로 피부상태가 들쭉날쭉 했던 나는 코스트코에서 대용량으로 파는 토너와 더마 브랜드의 수분크림, 그리고 선스틱 3개로 모든 스킨케어를 통합했다. 

그리고 취업 후 2~3개월까지 피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화장품 회사에 들어오니, 세상에..

그동안 코덕이라고는 했지만 스킨케어가 아니라 '메이크업 덕후'에 가까웠던 나는 신세계를 맞이했다.

"스킨케어야 말로 진정한 꾸밈이고 변장이고 화장이구나.."


이 생각 하나가 나의 뇌를 관통했다. 

기초제품이야말로 피부를 근본적으로 고쳐주지는 않으면서 (물론 상황이 잘 맞으면 근본적으로 좋아지는데 부스팅을 주기는 한다) 피부를 "좋아보이게" 만들어주는 구나..

소위 '피부 좋은 척'을 시켜주는 구나를 뼈저리게 느꼈고 그 때부터 스킨케어의 매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특히 에센스, 세럼, 앰플이라는 빈구간을 잊고 살던 나에게는 고기능성 앰플이라는 존재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 피부는 그동안 메말라왔던 콧물제형, 쫀쫀한 앰플제형을 반갑게 맞이하며 빠른 속도로 광을 내기 시작했다. 사실 이 광은 화장품 회사들이 외치는 속부터 우러나오는 광이 아니긴 하다. 그렇게 피부에 쪼개고 쪼갠 점성있는 저분자 뭐시기를 두드려 올려놓았으니 광이 날만 하다. 그리고 그 짓을 메마를 틈도 없이 아침 (때로는 점심에도) 저녁으로 하니 광이 나지 않을 수가..

아무튼 토너는 또 토너대로 매력이 있고, 세럼의 세계는 무궁무진 했고 에센스는 정말 '나만 아는 차이'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건성이지만 수분크림의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로 '물제형'파가 되어 화장대를 세럼과 앰플, 토너로 꽉 채우기에 이르렀다. 


오랜 코덕 생활과 짧은 경력이지만 화장품 마케터로서 거진 3년을 지내오며 느낀 바는 

그 어떤 사람의 추천도 딱히 참고할 게 못된다는 것이다. 


특히 제일 주의해야할 것이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추천.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있는 토픽이 피부과 안 가고 피부 좋아지는 법, 단 3천원으로 피부 좋아지는 법, 진짜 효과 본 화장품 3가지 이런 것들이다. 

피부는 사람마다 다르고 매일 생활하는 환경도 다른데 어찌 한 개인이 말하는 '이거 진짜 좋아요' '저는 이렇게 했더니 피부가 좋아졌어요' 한 마디에 본인의 피부를 맡길 수 있겠는가..

물론 국민템이라는 것은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썼을 때 대부분 만족했을 정도로 무난한 제품이라는 뜻이나 그렇다고 나에게도 잘 맞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대표적으로 나에게는 그런 제품이 ******밤이라는 제품인데, 그 제품은 극건성에게 구원템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팬들이 많은 제품이다. 나도 나를 극건성이라고 생각했을 때(이것부터가 잘못됐지만) 실날같은 희망을 붙잡고 그 제품을 구매했는데, 나에게는 과한 유분감을 줘서 오히려 트러블을 유발했고 심지어 건조함도 잡아주지 못했다. 그 제품으로 효과를 본 사람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건성=A제품 이라고 해서 내가 A제품이 잘 맞을 거라는 공식을 믿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 때는 내 피부가 잘못됐겠지 하면서 그 제품이 주는 효과를 놓지 못했는데 그 바보같은 시간을 겪고 나서야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다른 유명템인 @@밤도 왠지 그것만 바르면 트러블이 나고 피부가 가려웠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밤이라는 이름이 붙은 밤크림 류는 잘 손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화장품의 공식적인 전문가나 권위자도 아닌 사람들의 말은 우리는 너무 쉽게 믿는다. 유튜브는 참 사람을 믿고 싶게 만들고 맹신하게 하는 힘이 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 안에서 썸네일의 느낌과 프레임 안에서 그 사람의 뉘앙스, 비주얼이 주는 힘이 너무 강하다. 과거 겟잇뷰티같은 TV프로그램이 가졌던 공신력을 유튜브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나눠가지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소비를 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상기시켜야 한다 (그런데 알면서도 이번엔 피부가 좋아지겠지..망상하며 소비하는 재미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브랜드가 하는 말은 또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물며 그들은 화장품을 팔면 그들에게 그대로 이익이 돌아가는데 얼마나 본인에게 유리하게 말하겠는가..

(한 때 선크림은 다 상술이라고 생각했던, 지금도 반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화장품 마케터가 하면 정말 모순적인 말이지만 화장품 용량의 반은 정제수가 아니라 상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열감은 트러블의 적..!

마지막으로 이건 나에게 가장 많이 해당되는 얘기지만, 피부는 화장품이 바꿔주는 게 아니라 주관처가 감정이고 정신상태다.  

회사 동료들끼리도 서로 피부고민을 얘기하다가 장난처럼 하는 말이 있다. 

근데 이거 일 쉬고 놀면 금방 좋아져

이 말이 내포하는 바가 스트레스가 없는 정신 꽃밭 상태에서는 누구나 본인이 가진 최상의 피부 컨디션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일 테다. 나도 사실 대학교 졸업반 때 나에게 끈질긴 트러블을 안겨줬던 토너와 수분크림을 100% 탓할 수 없다. 당시 내가 가졌던 불안감의 과실이 70%는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토너제품은 많은 사람들이 쓴 만큼 쓰고 트러블로 뒤덮였다는 후기도 많은 제품이긴 하다)


더군다나 한국은 스킨케어의 최전방에 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스킨케어 유행, 신제품 출시 속도, 신제품을 베스트셀러로 안착시키는 속도가 미친 나라다. 그에 따라서 다 소비하다 보면 피부 껍데기는 몇 제곱센티미터도 안되는데 들이부울 액체만 많은, 이 고물가 시대에 정말 모순적인 사람이 되어 있을 게 뻔하다. 

결론적으로 화장품이말로 궁극의 사바사이면서, 근본적으로 뭔가를 고쳐주지는 않는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다. 


현재 나는 화장품 극한 다이어트와 코스메틱 덕후의 중간 쯤에서 밸런스를 찾아가는 중이지만, 사실 직업적인 문제가 있어서 보통 사람에 비하면 정말 화장품이 과다하게 많다. 그 광경 자체가 환경적으로 그렇게 좋아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참 부질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한 때 내 브랜드를 만들면 어떨까, 나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화장품을 포함한 재화가 인구에 비해 과다한 이 시대가 그런 생각도 접게 했다. 

언젠가는 화장대에 토너, 세럼, 선크림, 클렌저 이정도만 두고 살아가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 

필수적인 것만 남겨두고 그 놈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온갖 부산물들.. 트러블 스팟 제품, 블렉헤드 클리너, 닦토용 토너, 흡토용 토너 이런 거는 다 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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