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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하 Nov 30. 2020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은 대체 뭘까?

천재 타령과 범재 타령, 그리고 미술 

그냥 그려본 그림 

술을 한 달 이상이라도 배워봤다면 하게 되는 고민이 있다. 

그래서 대체 잘 그리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
잘 그린 그림이 뭔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데?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단은 열심히 해본다. 그러다 보면 또 오는 의문점이 있다. 
바로 열심히 했는데도 안되는데? 이다. 

나 역시도 6학년때부터 미술을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정말 끊임없이 고민했다. 조기교육을 받은 아이들 중에서는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인생을 통틀어 본다면 이랬거나 저랬거나 이른 나이에 전공을 시작한 것이기에 비교적 빠른 시기에 답을 찾기도 하였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부분도 있다. 

이 포스트에서는 내가 청소년기와 대학시절을 통틀어 조금이나마 찾은 점들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예술 조기교육을 밥 굶을 걱정없이 받은 사람으로서 내가 누렸던 환경은 차치할 수 없으나 잠시나마 차치해두겠다. 누구보다 미술이 권위의 예술이기보다는 모두의 예술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림 잘 그리는 법 /인스타그램 @redeeeddd


내가 운영 중인 작업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그림 잘 그리는 법"의 일부이다. 
사람들을 웃기려는 의도도 1%정도 있었지만, 99%는 진심인 내용이다. 많은 대학 동기들과 팔로워들이 댓글로 재미있다, 동의한다며 반응을 남겨주었고 상당히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우스갯소리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미대에 입학하여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1학년 학생들에게 정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리스트임은 확실하다. 내가 보장한다. 머리에 영감이 순간적으로 떠오르고 그것을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전통적인 천재들은 여전히 많지 않다. 이것은 나같은 범재를 위한 지침서이다. 본새나는 그림은 시기에 따라 정해져 있다. 그것을 분석하고 그대로 하되 나만의 것(이것도 어렵지 않다. 한두 요소만 바꾸면 된다. 예를 들면 소재와 색상 정도, 혹은 재료와 작품크기)을 더하면 된다. 



정말 타고나길 잘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에는 그리는 것만이 미술이 아니게 된 지 오래기 때문에 작업을 잘하는 사람도 포함된다. 그 중에는 알고보니 선진국의 미술을 먼저 접하고 그것을 탐독해서 '먼저' 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잘한 걸 많이 봐서 잘하게 된 것이다. 트렌디한 터치 방법 및 색상을 가져와 그리는 것은 손재주의 영역일테고 트렌디한 주제와 작업방식, 프로젝트로 머리 쓰는 미술작업을 하는 사람은 똑똑함의 범주이다. 아무튼 나도 그렇게 해보았다. 잘 그리는 사람들을 따라해보고 나도 영국과 독일의 미술을 인터넷 뒤져 찾아보고 공부해서 내 그림에 적용해보았다. 나도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러자 그렇게 적용하는 것도 재능임을 느꼈다. 특히 이것은 재능 중에서도 손재주도 있지만 '똑똑함'이 주된 재능이다. 여기에서 1차적으로 한번 결론이 내려진다. 타고나는 사람들은 있다. 

환경이 잘 하게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집안과 혈통은 바꿀 수 없으니 이 역시도 타고남의 소분류로 치겠다. 예술은 참 양극화된 학문인 것이 예술가는 가난하기도 하지만 예술은 돈 있는 집 자녀들이 하기도 한다. 그 둘은 바라보는 지점이 다르다. 뭣 모르고 돈 못 버는 미술을 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집이 돈이 있으니까 자유롭게 하고싶은 미술을 시켜주는 경우도 있다. 있는 집은 환경부터가 다르다. 집에서 보는 것, 부모님이 경험시켜주는 것, 즉 문화생활이 다르고 내가 앞서 말한 잘한 것을 이미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이지 큰 자산이 된다. 결국 미술도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술시장이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의 니즈도 알게 되고 선순환으로 벌이가 되는 미술을 할 가능성도 높다. 혹은 벌이가 안 되는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을 해도 여유가 있기 때문에 더욱 미술에 열중할 가능성도 있다. 

평범한 정도의 손재주를 바탕으로 꾸준함과 성실함이라는 재능을 가진 경우가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케이스이다. 꾸준함이라는 재능을 실로 놀라운 것이다. 한 주제를 5년 하다보면 뭐가 좀 보이고, 10년 하다보면 전시가 근사해진다. 별 관심없던 그림도 그 사람이 20년을 그렸다 하면 그 세월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있고 내공이 있다. 요즘 말로 노력충,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해야 돼"를 듣고 살았던 학생인 내가 간간이 예중예고라는 조기교육의 현장에서 1등도 해본 것은 아마 그 탓이다. 

시기도 탄다. 앞서 말한 조기교육을 예로 들자면 여기에도 트렌드가 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창의성이라는 것도 주목받을 때지만 아직 과도기라 한편에서는 시간을 줄여 성실함을 미친듯이 쫓던 시기이다. 나는 나보다 잘 그리는 그 몇 명에 비해 재능이 없으니 성실함으로 밀어보자 하고 쉬지 않고 빠르게 그려대는 타입이었는데 하필 시간이 대폭 줄여진 시험을 꽤 만났다. 평소에 빨리빨리에 목맸던 내가 좋은 성적은 받은 건 운대가 작용했던 것이다. 프로의 세계에서도 트렌드가 있다. 사실 트렌드가 거의 전부이다. 완성도 있고 시각적으로 멋진 작품이어도 트렌디하지 않으면 사실 소용이 없다. 시기가 와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되니 사실 시기란 것은 성실의 카테고리 안에 드는 소주제이다. 

마지막으로 손재주도 없고 똑똑함도 없고 집안도 별로, 시기도 못 탄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높은 확률도 정신이 많이 아파진다.



결론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사실 생각보다 잘 그린 그림이란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정말 처절하게 잘 그리고 싶다면..

1. 우선 타고나야 한다. 선천적인 재능이 90%를 끌고간다. 
2. 타고나지 않았다 해도 미술은 가능하다. 대신 90%를 채울 '꾸준함'이 필요하다. 20년을 버티면 작품이 얼마나 구리든 간에 작가가 되기 때문이다. 
3. 그 꾸준함과 노력은 잘 그리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적용하다 보면  채워진다. 하지만 이것 자체도 또다른 '재능'이다. 이 마저도 없고 마인드가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취미로 남겨두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한국은 아직 미술을 업으로 삼기에는 그렇게 좋은 나라는 아니다.  

허나 꼭 천재적인 것만이 잘 그린 그림인가?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선택하고 그것을 여러가지 미학적인 방법과 좋은 재료들을 들이부으면 잘 그린, 좋은, 멋있는 그림이 된다. 다행히 외국 잡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사람들만 추상화를 그리던 60년대는 지나가고 인터넷과 디지털 드로잉 시대가 열린지 오래다. 잘나고 멋진 것들을 누구나 찾아볼 수 있고 만들 수 있다. 아예 안하는 것보다야 돈이 들긴 하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 한 대보다는 종이와 물감이 훨씬 저렴하니 가장 '가성비 좋은 예술'로서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바니타스로 유명했던 해골을 2020년의 끝을 맞아가는 11월 30일에 연필을 통해 종이에 사실적으로 그렸다. 실력이 있다면 당연히 잘 그린 그림이 되겠지만 어디가서 팔지는 못하고 아마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는 좀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트렌디하고 멋진 현대미술이라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해골은 잘 그려보이는 소재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은 바니타스가 유행했던 16~17세기에 핫했다. 
요즘 핫한 소재를 들고와보자.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소재와 정말 뜬금없는 소재의 결합(예를 들면 아보카도와 양말)이나 살(flesh), 뭔가 판타지스럽고 우주같은 색감에 정체모를 찐득이가 있는 오묘한 풍경 등등.. 어느 미술대학에나 가면 한 명쯤은 그리고 있을 법한 그런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 마지막 오묘한 찐득이가 들어간 판타지 풍경을 꼽아보겠다. 그걸 디지털로 그려서 애프터이펙트로 살랑살랑 움직이게 할 수도 있고, 꽤나 큰 주문제작한 판에 아크릴과 미디움을 왕창 넣어서 찐득하게 그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걸 사람들이 내가 했다고 알기까지 공장처럼 찍어내면 된다. (이걸 '양'치기라고 한다)
페인팅 뿐인 미술이 싫다면 괴랄하고 이상한 행위들을 마구 한 다음에 영상으로 찍고 약간의 예술적 편집과 근사한 미술 글쓰기를 더할 수도 있다. 집에 한 켠이 있다면 아무거나 마구 수집한 다음에 베를린 작가들처럼 멋지게 모아놓고 설치미술을 해도 된다. (설치미술 비하발언이 아니다)




허무맹랑한 그림을 감상하는 어린 여성 

내가 한국식 조기교육을 받았고 다시 조기교육을 제공하는 자리에 왔을 때 많은 학생들이 범재인 자신과 천재인 남의 간극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광경이 되풀이됨을 보았다. 너무나도 클리셰인 광경이지만 사실 범재가 괴로운 이유는 머리가 비상하지 않은 탓에 천재 신화에 속아 스스로 천재와의 간극을 과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별 차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학교 공부를 못한다고 바보가 아니듯 손재주와 재치있는 순발력이 그만큼 뛰어나지 않다고 재능이 없고 못났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특히 미술은 그 가능성을 넓게 열어둔 분야이다. 음악은 미술재료보다 훨씬 기본 단가가 비싼 악기(혹은 장비)가 있어야 되고 무용은 재능보다 더 무서운 타고난 '신체'가 있어야 한다. 미술은 그에 비하면 범재의 것이고 일반의 것이다. 

소위 말하는 애매한 재능의 미술, 하고 싶어서 선택했는데 재능이 부족해 너무 괴로운 미술을 하고 계신 분들께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 생각보다 천재와의 차이는 별 게 없다는 내 작은 의견을 전해드리고 싶다. 오히려 20년을 파는 성실함의 대가들과 트렌드 선점 능력이 비상한 돈머리 밝은 이에게 경외감을 느껴도 좋다. 그 편이 '잘'하는 단계로 가기 위해서 더 빠를 것이고 정신에게도 미안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잘 한번 해보기 위해서 오늘도 성실함을 되새겼고 경제뉴스를 읽었고 글과 드로잉 연습을 했다. 말을 고쳐보겠다. 미술은 1%의 천재와 준비된 범재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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