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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를 연기하는 내향형의 팀장생활

을 마치며

by 김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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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향형이 회사나 단체생활에서 초반에 적응하는 데에는 당연히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주의가 보장되는 회사도 있겠지만, 일단 내가 다녔던 회사는 외향형일 때 훨씬 이득을 볼 수 있는 회사였고 내 직무(마케팅) 또한 그랬다.

그렇다고 내향/외향의 습성을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 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외향형이라고 무조건 마케팅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리더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영업은 그럴수도..?)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내향형이다.

아직도 타인의 눈을 잘 못 마주치고, 말도 더듬는 편이고 기 센 사람 앞에서는 횡설수설까지 하는 스타일이다. 원체 나서는 편이 아닌데, 말을 해야되는 상황이 왔을 때 긴장을 하다보니 정신까지 산만해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사람이랑 일하는 것도 좋아하고, 팀워크가 탁탁 맞았을 때의 짜릿함도 사랑하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치대고 싶은 리트리버가 내 안에 살고는 있다.


어쨌든 그런 나는 어릴 때 '억(지)'리더 생활을 해왔는데,

정말 단편적으로는 중,고등학교 내내 회장, 부회장 실기(미술)에서는 조장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 내가 나서길 좋아해서 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내가 서울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집에 내가 이렇게 잘 다니고 있다고 증명할 건덕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아빠가 내로 하여금 리더가 되길 원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딱히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고 한다. 작은 오해가 내 학창시절을 지배한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야 비로소 내가 원하고 편해하는 삶을 살았다. 내가 편한 사람과 1:1관계 혹은 혼자. 그리고 회사에 처음 입사해서 신입사원 생활을 할 때도 업무적인 힘듦과 적응을 제외하고 '내가 이런 막내일이나 할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오는 괴로움은 없었다. 오히려 남을 서포트하는 일에 재능이 있다고 느낄 정도로 내 스스로 이런 막내 없다고 자만하며 회사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고성장 스타트업의 운명이라고 해야할까, 당연히 너무 빠른 연차에 관리와 리딩을 해야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심지어 뭔가 조직을 구성하고 이런 일이었으면 훨씬 나았을 수도 있는데, 직접적으로 팀원에게 뭐라 해야 할 땐 단호하게 말하는 (내가 제일 못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가치관에는 남을 훈계하는 DNA가 없다. 부모님도 나를 훈계한 적이 없고(남자/연애 문제 제외) 내가 그 타인을 얕보거나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이 한 일을 봐도 '억'피드백은 해봤어도 진심으로 뭔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피드백한 적은 없다. 누군가 무슨 일을 내 생각과 다르게 해와도, 어떤 연유에서 해왔는지 자꾸 이해가 가고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실 신입, 1~2년차, 인턴들을 관리하는 것에 정말 어려움이 컸다. 내가 그랬듯, 나도 머리로는 그들이 어떠한 피드백에 의해 많이 고쳐도 보고 고민을 정말 머리 터질 때까지 해봐야 성장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들과, 정말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던 그리고 실제로 약간의 텃세/기강잡이도 포함되어 있었던 일들을 반복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하나하나 챙기고 상황을 빨리 수습해주는 선임은 되었어도, 그렇게 좋은 리더이지는 못했다. 상황이 안 좋아질 때도 수습하고 팀원을 안심시키는 것에 더 몰두했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고쳐야 하는지와 팀 전체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어떻게 보면 선동하는(?) 행위에는 쥐약이었다.

이게 한편으로는 또 자격지심으로 다가와 어떻게든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간식이나 커피라도 많이 살려고 노렸했다.

(I기준에서 제일 좋은 사람 = 일 효율적으로 분배해주고 쓸데없는 대화 안 하고 해야될 말만 딱딱 해주고 맛있는 거 많이 주는 사람)


그리고 내향성을 떠나 내가 남에게 단호하게 말을 못하는 사람인지라 뭔가 잘못된 행동이 있을 때도 타이르고 달래면 태도를 고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란 존재를 너무 1:1로만 좋아했고 그렇게 보면 100% 나쁜 사람은 없기에 잘 타이르면 개선할 수 있을거라 넘겨짚은 것이다. 사람이 5명이 되고 7,8명이 되면 어떤 군상을 보이는지 하나도 모르는 병아리 팀장인 채..


아무튼 나의 몇개월간의 팀장 생활은 매일매일이 연기이고 도전이었던 것 같다.

침전되고 싶을 때도 (물론 억지텐션이 티가 나긴 했을 테지만)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우려고 연기했고 조금이라도 내가 이 사람, 이 행동을 개선할 수 있을 거라 믿은 채 '혼내기, 꼽주기, 야단치기, 공개적으로 모욕하기'이 아닌 형태로 타이르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까, 아니면 인성적/태도적/업무적 역량이라고 할까..그런 소프트한 스킬만으로는 회사가 원하는 정도의 동기부여와 열정을 돋우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리더는 되었었도 그들을 다루거나 부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


지금은 또 어떠한 기회가 찾아와 직'책'을 내려놓고 담당으로서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결재하는 일과 검토하는 일, 타 팀과 결판지어내기, 피드백하기 등의 일이 빠지니 2~3일은 어깨 위에 지고 있던 쌀가마가 없어진 듯 정말 가뿐했던 것 같다. (실제로 피부가 좋아졌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아직 담당으로서의 업무가 고팠던 것도 있었고, 개인으로 사고할 때는 너무 팽팽 돌아가던 머리가 리더의 뇌로 돌아가야 했다보니 내가 가진 역량과 아이디어의 반도 구현을 못했던 상태였었다. 일에서의 자신감과 의욕을 회복했고 한편으로는 팀을 외부에서 바라봤을 때 비로소 보이는 문제점들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직책을 마음에서 진정으로 내려놓고 내 부족함을 완전하게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괴로움도 따랐다. 왜 나는 단호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단호하지 못했을까. 왜 지시하지 못하고 떠앉기를 반복하고 그런 행동은 또 동기부여를 저하하고 이런 악순환을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했을까. 이런 리더쉽도 내 연차의 스탯 중 하나라면 나는 너무 육각형이 무너진 사람이라고 자존감도 깎아먹었다.


하지만 몇개월을 함께했던 팀원들이 써준 메시지를 보며, 또 그 와중에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함으로써 서포트해줬던 팀원과, 내 희망과는 다르게 같이 일하게 되지 못한 인턴친구가 써준 편지를 보며 내가 부족함은 있었어도 100% 잘못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방식이 맞는 조직이 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정신승리?)


사람이 100%일 수는 없지만, 이런 나에게도 조금 더 경험이 쌓이고 맞는 타이밍이 찾아와 98%에 도전하는 완성형 직장인간이, 특히 그러한 리더가 될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저연차의 리더가 있다면, 지금의 당신이 겪는 어려움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이 글을 통해서 위안과 조금의 재충전을 얻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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