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보단 느린 바름

문제, 방향 그리고 실행의 바름에 대해서

by David Ha

최근 들어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틀연속 밤 10시 가까이 이틀 야근하면서까지 말이다.


사실 나는 야근을 싫어한다.

사실 누가 야근을 하고 싶은가?

하루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집에서 개인시간을 보내고 싶은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이다.


즉, 야근은 곧 주어진 시간 내에서 밀도 있게 시간관리를 잘하지 못했고

인생에 귀한 시간을 희생해서 못다 한 일을 수행하는 것.


이렇게 고생해서 시간을 사용했다 치자.

그만큼 기대한 것만큼이나 아니면 그 이상의 아웃풋이 나왔는가?

하면 최근엔 여러모로 아쉬운 감정이 더 크다.


무엇이 문제인가 스스로 성찰해 보고 근원을 추적해 보았을 때,

나는 "빠른 속도"에 주목했다.


실험 정신의 음과 양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보이면 보통 아주 얕고 쉽게 생각하면 일단 해결하려고 본다.

해결하는 방법도 다양한데, 그중에서 실험을 통해 경험을 빠르게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수년간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해보신 분들은 다 잘들 아시겠지만,

마냥 실험해서 빠르게 경험을 얻어낸다고 성공하지는 않는다.


내 직관과 경험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실험을 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1. 오랫동안 해당 분야에서 축적해 온 데이터와 멘털 모델들을 보유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2. 결과에 대해서 학습하고 계속 허슬링 해가면서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하나만 두들겨 팬다.

3. 깊은 의도를 가지고 타깃을 명확히 조준한 상태로 최대한 가볍게 실행한다.


너무 뻔한 거 같지만 실패하는 팀과 조직에서는 아래처럼 실험한다.

1. 분명 좋은 목표인데도 불구하고 한 두 번만 하다가 아니면 버리고 전혀 다른 것에 실험을 진행한다.

2. 실험을 하기 전에 충분한 데이터와 고객의 의견을 집요하게 수집하지 않았다.

3. 기간 내에 처리하려고 만한다. 즉, 실행에 급해서 대략 볼만한 수준만 가지고 빠르게 진행한다. (일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4. 하나만 터져라 기도메타하면서 동시에 많은 실험들을 한다.

5. 실행하는 업무의 무게가 감이 안 잡힌다. (어쩔 땐 무겁고 어쩔 땐 지나치게 가볍다)


위 두 개의 음과 양에서는 실험의 실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는데

실행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바른 문제로부터 시작했지 그리고 계속 바른 방향으로 나아갔는지이다.


바른 문제는 빠르게 나오진 않는다

문제가 많아서 뭔가 많이 하고 있는 것 빠르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바쁘게 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중 바르게 잡고 실행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그 비싸다는 컨텍스트 스위칭 비용을 무릅쓰며 여러 팀을 겸직하면서 행동하고 있는 건 대부분 증상을 해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 회사가 하는 일이 지구를 구해야 하는 사명감을 가지는 회사가 아닌 이상 말이다.

심지어 진짜 문제는 은폐된 체 말이다.


문제를 세우는 과정을 돌아보자

대부분 현상에서 먼저 시작하면 거기에 대한 가설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실행하면 증상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지 바른 문제 설정은 아니다.


근본 원인(왜 발생했는가?)을 추적해야 하고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 데이터도 분석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할 것이다.


반복되지 않는 문제는 사실문제가 아니라 일시적인 증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거창하게 Task를 띄워서 실행할 정도는 아닐 거다. 시간 여유 있을 때 해결가능할 가능성이 높거나 다소 지저분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 외에는 반복되는 문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는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 시스템의 결함을 발견해내야 한다.

그 시스템이 서비스를 운영하는 인프라일 수도 있고, 사실 좋은 기능 아닌데 나쁜 습관에 익숙해져 버린 고객의 반복적인 행동일 수 있다. (이걸 누군가 해결하기 시작하면 후발주자한테 포지션 뺏기거나 선발주자 자리를 뺏을 수 있다.)


여기까지 왔다면 진짜 문제에 도달하게 되고

바른 문제가 정의됐다 생각한다.


이 전체 과정은 결코 빠르게 나올 수 없다.

분석할 시간도 필요하고 소통할 시간도 필요하고 사고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른 방향은 단순하다

대부분 회사는 문제를 설정하면 무엇을 실행할지 신경 쓰지만,

내가 체감한 뛰어난 팀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방향은 과정이고 과정에서 일어나는 건 끝없는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빠르고 바쁜 선택을 하는 조직은

내 경험상 크게 3가지가 있었다.

1.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은 불안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2. 하나를 선택하면 책임이 생긴다. 그래서 책임 분산을 위해 여러 개를 손에 쥐고 행동하는 것이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다 손에 쥐고 해서 다 성공하면 로또 사면 좋을 것이다.

3. 진행하고 있다는 착각, 즉, 일이 많으면 진전이 있다고 느끼는 경우.


숙성의 맛

스크린샷 2026-03-15 오후 6.43.47.png 3년 전 글 https://medium.com/@h2s1880/%EB%B0%9C%ED%9A%A8%EC%9D%98-%EC%8B%9C%EA%B0%84-bc46d79ad5d4

3년 전에도 비슷한 류의 글을 쓴 적은 있지만, 요즘엔 AI가 눈앞에 등장하면서 세상이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게 체감이 된다.

심지어 POMO도 심해지고 딸깍 만 하면 개발이 금방 끝나니 뭐든 더 빠르게 해보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과거나 현재든 내 생각은 변치 않을 것이다.

빠른 속도보단 느린 바름이 중요하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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