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사랑의 도구들》 리뷰
텔레비전에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태어난 김에 세계를 돌아보는 일도 값지다. 시간과 돈, 의지와 건강이 받쳐주어야 가능한 일이니 우리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다. 하지만 태어난 김에 해볼 만한 일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사랑하기다. 20세기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인간의 본질을 바르게 통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인생의 초입에 선 20대 청춘들이나 이미 고갯마루를 넘어온 이들에게도 사랑은 여전히 서툴고 낯선 일이다. 그런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분명 의미가 있다.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통과하도록 애쓴 한 사람이, 사랑의 본질과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연애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낸 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랑의 도구들》이다.
1970년생인 작가 유선경은 오랜 시간 라디오 작가로 일해 왔고 지금까지 10여 권의 책을 썼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영혼에는 선천적으로 ‘사랑’이라는 구덩이가 뻥 뚫려 있었다고 한다. 그 구덩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고 경비 시스템을 가동하며, 때로는 위악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둘러싼 방어막을 쳤다고 한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도 모르면서 어떻게 글을 쓴다는 거냐?”
작가는 그 한마디에 뇌 속으로 얼음 한 통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글이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사랑이야말로 모든 행위의 영감이자 원동력이며 생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꿰뚫어 보고 있었던 셈이다.
작가는 선천적으로 뚫려 있던 그 구덩이를 채워 그 위에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고 결국 그 구덩이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그 구덩이를 채우기 위해 애썼고 끝내 채운 경험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낭만적이거나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다루는 대신, 사랑에 대해 잘못 배운 것들을 수정하고, 사랑이 행동이 되어 삶에 유익한 것이 되도록 돕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사람은 사랑할 때 연인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이런 궁금증과 사색은 이별 뒤에 더 커지곤 한다. 작가는 타인을 사랑하는 과정이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하는 생각과 행동이 결국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타자와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를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타자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미지의 나를 개척해 나간다.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발견한 나와 새롭게 만들어진 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29쪽)
이 책에서는 경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경험은 단순히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일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진정성 또한 가슴이나 머리가 아니라 행동에 달려 있다. 행동과 깨달음이 차곡차곡 쌓일 때 우리는 스스로를 존중하고 믿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우는 비결이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여는 마스터키가 된다.(42쪽)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J. 스턴버그가 제시한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사랑은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는 세 요소로 이루어진다. 친밀감은 신뢰와 보살핌, 이해와 공감의 감정이고 열정은 흥분과 에너지, 상대에게 강하게 끌리는 감정이다. 헌신은 어떤 일이 있어도 관계를 지속하겠다는 결심이다.
이 세 요소의 조합에 따라 사랑의 형태도 달라진다. 친밀감과 열정이 있지만 헌신이 빠진 것은 낭만적 사랑이고, 열정 없이 친밀감과 헌신만 있는 사랑은 동반자적 사랑이다. 친밀감 없이 열정과 헌신만 있는 경우는 어리석은 사랑에 해당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깊이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관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은 결국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완성된다.(151쪽)
작가는 연애에서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신화 속 ‘영웅의 모험’에 빗대어 열두 단계로 설명한다. 많은 연인들이 1단계에서 시작해 6단계에서 멈춘 뒤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1단계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7단계에 이르면 관계를 계속 이어갈 것인지 멈출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때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동굴 앞에 서게 된다. 그 동굴 안에는 ‘용’이 잠들어 있다. 용은 콤플렉스와 열등감, 상처와 약점 같은 것들이다. 누군가 동굴 밖에서 묵묵히 기다려 준다면 우리는 이 단계를 넘어설 수 있다.
연인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사랑이라는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기다리는 행동은 믿을 만한 사랑의 증표가 된다. 내면의 용을 마주하고 돌아온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네가 그렇게 힘들어한다면 내가 조심할게.”
이 결심과 다짐, 즉 행동으로 이어지는 약속이야말로 사랑의 시련이 남기는 가장 큰 보상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만나 함께 시련을 건너는 동안 그 안에 잠재되어 있던 영웅의 자질이 깨어난다. 자기라는 멍에를 내려놓고 타인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바로 영웅의 자질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현실의 장벽과 가치관의 차이 앞에서 ‘사랑하는 우리’라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함께 맞서 싸운다. 그 과정을 통과하며 사람은 인격적으로도 변모한다.(139쪽)
엄마 뱃속에 있던 시절은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공부도 필요 없고 돈을 벌지 않아도 되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경쟁할 필요도 없다. 외로움도 없다. 어쩌면 인간이 사랑을 갈망하는 이유는 그 시절의 감각을 다시 회복하려는 원초적인 욕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연인이 나의 근원적인 허기를 알아보고 인정해 주며 채워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애착 욕구를 채우려는 갈망이 지나치게 앞서면 오히려 사랑은 멀어질 수도 있다.(88~90쪽)
누에는 알에서 나방이 될 때까지 네 번의 잠을 자며 탈피한다. 마지막 네 번째 잠에 들 때는 이전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 실을 토해 자신의 몸을 감싸 고치를 만들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보름쯤 지나면 날개를 달고 나와 훨훨 날아간다.(257~258쪽)
작가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나 실패한 연애 역시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잠’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실패도 성공도 없다. 단지 사랑했느냐, 사랑하지 않았느냐만 있을 뿐이다. 나와 너의 관계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나와 그것’의 관계였다고 해도 우리가 사랑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258쪽) 그 경험은 삶을 관통하는 흔적을 남기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떠받치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사랑의 본질과 이론뿐 아니라 현실의 연애와 관계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 짧은 글에 그것을 모두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태어난 김에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태어난 김에 제대로 사랑해 보는 일도 멋진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이 의지이자 활동이라는 것을 알고, 사랑을 위한 도구들을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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