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걸음의 비밀

by 수경

똑같이 걸었는데 동행의 걸음이 15000 보라면 내 걸음은 대략 14000보 언저리다. 누구와 동행하든 거의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고개를 숙여 내 두 다리가 걷는 모양새를 유심히 지켜본다.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왼쪽 발을 디딘 후 오른쪽 발을 떼 다시 바닥에 놓기까지, 한쪽 발이 허공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두 다리가 교차하며 허공에서 머뭇거리거나 흔들리는 유희를 즐기다 이윽고 땅바닥에 성큼 발을 내려놓는다.



다리도 길지 않은 나는 성큼성큼 걸으며 날기를 시도하고 있다. 한 걸음에서 또 한 걸음으로 이어지는 동안 잠시 허공에 머무는 순간, 나는 걷기와 날기 사이 어디쯤에 있다.


이렇게 나는 듯한 걸음은 나의 의사에 따라 한없이 느려지기도 한다. 한 걸음을 떼고 삼라만상 세상 이치를 헤아리는 동안 다른 쪽 발이 다시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러면 나는 신선이라도 된 듯 생각이 깊어진다.



꿈에서도 날기를 시도한다. 꿈에서는 두 다리와 발 대신 무릎이 이 일을 해낸다. 무릎의 연골은 꽃눈 속에 포개있는 꽃잎처럼 움츠렸다 공작새 날개처럼 일시에 펴져 훌쩍 뛴다. 뛰고 날기를 거듭할수록 몸이 한없이 가벼워지고, 무릎의 탄성에 겨드랑이 날개가 힘을 보탠 것을 알게 된다. 꼬물거리며 펴지는 날개 때문에 기분은 가렵고도 황홀하다.



이런 아침에는 꿈을 계속 연장하고 싶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 걷지 않아도 쿵덕쿵덕 날듯이 뛰어오르고, 뛰어오르면서 오색찬란한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그 찬란한 기분은 오후가 되면서 빛 속으로 스며들고 다시 나의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동행보다 걸음 수가 적다. 두 발은 땅바닥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동시에 허공에 머무는 시간으로 날기를 연습하고 세상 이치를 탐색한다.


내 걸음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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