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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바이오필릭디자인, 지속가능한 도시를 그리다

콘크리트 숲을 넘어, 자연을 갈망하는 도시인의 마음

by 건축가 김성훈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단절감을 느끼곤 합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과 포장된 도로, 회색빛 풍경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초록의 자연을, 맑은 물줄기를, 그리고 따사로운 햇볕을 갈망합니다. 이는 단지 감성적인 바람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의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는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지속 가능한 도시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은 단순한 건축 트렌드를 넘어, 우리 도시의 미래를 재편하고 인간성까지 회복시키는 중요한 열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오랜 실무 경험과 건축에 대한 깊은 사색을 통해, 필자는 한국 도시가 나아가야 할 지속 가능한 방향과 그 중심에 있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바이오필릭 디자인, 자연과의 근원적인 재회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에드워드 O. 윌슨이 주창한 '바이오필리아', 즉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연과 생명체에 애착을 갖는다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단순히 실내에 식물을 들이는 것을 넘어, 자연의 패턴과 질서, 생명력을 건축과 도시 공간에 의도적으로 통합하여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디자인 철학입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여러 가지 패턴으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연 환기를 유도하여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조성하는 것은 물론, 식물과 물 요소를 직접적으로 도입하여 시각적, 청각적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나아가 자연에서 발견되는 곡선이나 비정형적인 형태, 유기적인 질감을 공간 디자인에 적용함으로써, 마치 숲 속에 들어선 듯한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해외의 한 의과대학 헬스장 사례로, 100% 지속 가능한 건축 재료, 공기 정화 식물, 생체 리듬에 따른 조명, 자연 벽화 등을 통해 이용자의 체력 증진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calvin-c-N4IN_kGrqUM-unsplash.jpg 바이오필릭디자인의 대표적인 예인 싱가포르 창이 공항(Singapore Changi Airport)

자연을 품은 디자인은 우리에게 '자연의 품에 안기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며 스트레스를 줄이고, 집중력을 높이며, 나아가 소속감과 충성도를 향상시키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옵니다. 결국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자연을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경험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을 통해 인간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2. 기후위기 시대, 한국 도시의 현실과 바이오필릭 디자인의 필요성


한국의 도시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효율성이 최우선에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높은 인구 밀도와 획일적인 아파트 중심의 주거 문화, 부족한 녹지 공간, 그리고 회색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경관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로 인해 도시는 '콘크리트 숲'이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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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열섬 현상, 미세먼지 문제, 그리고 도시 생물종 다양성의 급격한 감소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특히 '기후위기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도시는 극심한 여름철 폭염, 예측 불가능한 집중호우, 그리고 고농도 미세먼지라는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문제는 도시민의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한국 도시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중요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 기후 탄력성 강화: 건물 외벽 녹화, 옥상 정원, 도시 숲 조성 등을 통해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 냉난방 부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투수성 포장이나 빗물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집중호우 시 도시 침수를 예방하고 물 순환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 환경 질 개선: 식물을 통해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공기 질을 정화하며, 생물종 다양성을 확보하여 도시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듭니다. 이는 미관 개선과 함께 도시 전체의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 도시민의 건강과 행복 증진: 자연과의 연결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며, 신체 활동을 장려하여 도시민의 전반적인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킵니다. 특히 아동의 정서 발달과 창의성 함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어린이 교육 공간 디자인에도 바이오필릭 원칙이 중요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국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합니다. '콘크리트 숲'을 넘어 '자연을 품은 도시'로의 전환입니다. 이는 외국의 성공 사례를 모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고유의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 '한국형 바이오필릭 시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도시를 향한 여정은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입니다. 바이오필릭디자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실용적인 해답 중 하나입니다.


필자는 바이오필릭디자인 전문가로서, 도시계획 단계부터 생물종 다양성이 고려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형 바이오필릭 시티의 구현은 단지 식물을 심는 것을 넘어, 도시 전체의 시스템을 자연의 원리에 맞춰 재편하는 지속 가능한 혁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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