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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리 Dec 29. 2020

잉카제국의 중심 쿠스코(Cusco)



꿈속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던 카르타헤나를 뒤로 하고 우리는 남아메리카의 시작지인 페루로 가기 위해 일찍 호텔을 나섰다. 카르타헤나의 호텔에서 공항까지는 약 20분 정도가 걸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으며, 우리는 비행기 시간보다는 거의 3시간가량을 일찍 출발했다. 언제나 그렇듯 공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두르기로 했었다. 하지만 마음 한 곳에서는 지금까지와 같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오히려 카르타헤나에서의 여행이 너무 좋았던 탓인지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페루는 또 어떤 곳일까 하는 설렘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사실 카르타헤나에서 쿠스코로 가는 여정은 아직까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긴 여행길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국에서 멕시코까지의 여정보다 더 긴 여정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24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고, 비행기를 자그마치 3번이나 타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비행기를 타는 것과 공항에서 대기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지금 여행자라는 사실을 실감 나게 해주는 일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했고 또 비행기를 탄다는 설렘으로 공항까지 기분 좋게 도착을 했다. 그렇기에 이번 24시간 동안의 이동은 한편으로는 약간 설레기 까지도 했다. 그러나 기분 좋은 설렘은 여기까지. 쿠스코까지의 긴 여정에는 많은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카르타헤나에서 보고타, 보고타에서 페루 리마, 리마에서 쿠스코 이렇게 3번의 여정을 거쳐야 쿠스코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첫 비행 일정인 카르타헤나 공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생각에는 비행기 시간보다 엄청 일찍 도착을 했기 때문에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를 생각할 정도로 여유롭게 항공사 카운터로 향했다. 그러나 항공사 카운터에서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페루이기 때문에 페루에서 다른 나라로 나가는 버스표 또는 비행기 표를 제시해야만 발권을 해주겠다고 했다. 사전 조사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나 당황을 했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냥 봐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부탁도 해보고, 지금 당장 표를 어떻게 예매를 하냐고 항의도 해보았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인 지 꽤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디서 예매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페루의 버스회사 이름조차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우리는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갈 때 '볼리비아 홉'이라는 버스를 이용할 예정이었는데, 그 버스는 예매하는 과정이 꽤 까다로워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기 쉽지 않았다. '볼리비아 홉'만을 믿고 있었던 터라 페루의 일반 버스회사는 사전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영어는 점점 이상해 지고 우리는 서로 의사소통이 안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더 이상 끌었다가는 아예 비행기도 못 타게 생겨서 급하게 남미 사랑 단톡방에 도움을 요청하여 페루 버스회사인 ‘red bus’에서 페루 쿠스코에서 볼리비아 라파즈로 가는 버스표를 겨우 예매할 수 있었다. 예매 확정 화면을 보여주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발권을 할 수 있었고 입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남미사랑 단톡방이 없었으면 우리의 여행은 정말 힘겨움의 연속이었을 것 같다. 항상 급할 때 도와주시는 여행자 여러분들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어찌 됐든 나를 당황케 했던 일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짐 검사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엔 내 배낭이 또 문제였다. 화물칸으로 운반하는 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낭에 넣었던 냄비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너무 두꺼운 쇠로 되어있기 때문에 비행기에 들고 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내가 이 냄비로 비행기에서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날카로운 칼도 아니고, 뾰족한 스틱도 아닌 이 둥글넓적한 냄비가 도대체 왜 문제가 된단 말인가. 공항 직원은 나에게 다시 항공사 카운터로 가서 짐을 부치고 오라는 것이었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보고 다시 항공사 카운터로 가라고 하다니... 그곳에서 그 난리를 치르고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앞이 깜깜했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냄비를 버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직원이 그 말을 못 알아듣고 무조건 안된다고만 했다. 내 짧은 영어가 여기서 또다시 나를 좌절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직접 쓰레기통에 냄비를 갖다 버리고 나서야 겨우 짐 검사대를 통과할 수 있었고, 다행히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여정에서는 겪지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생기니 너무 당황스럽고 그래서인지 영어는 더 안되고 하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약 한 시간 반 동안의 비행으로 우리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공항에 도착했다. 국내선 비행기로 도착한 우리는 국제선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국내선 비행장으로 입국한 승객들은 공항을 빠져나와 다시 출국심사를 거쳐 국제선 입국장으로 가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카르타헤나 공항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난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아... 혼란의 연속. 여기저기 헤매고 물어본 끝에 국내선 구역에서 빠져나와 다시 국제선 구역으로 들어가는 출국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 생각을 하니 그 당혹감과 버거운 상황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다. 약 두 달간 정말 편하게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바짝 차려지는 순간이었다.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타고 24시간에 걸친 험난한 여정 끝에 드디어 쿠스코에 도착했다.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반드시 머물러야 하는 쿠스코.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 멕시코에서 출발한 여정이 중앙아메리카를 벗어나 드디어 남아메리카의 출발지인 이곳까지 이어졌다.

잉카의 중심지였던 이곳 쿠스코. 나는 잉카문명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쿠스코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 한복판에 서 있으면 이것이 잉카문명이구나...라는 느낌이 오는 듯했다. 그만큼 쿠스코는 여타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아직까지 잉카 고유의 색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이곳 쿠스코에서의 나의 첫인상은 이곳이 바로 내가 생각하던 남미이구나라는 느낌이 팍 오는 곳이었다.   


우리는 쿠스코에서 9일간 머물기로 했으며, 이곳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여행이 있었다. 하나는 약 300년간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 여행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망의 마추픽추 여행이었다.

마추픽추를 제외하고라도 쿠스코는 여행자들에게 꽤나 유명한 곳이다. 한번 들어가면 쉽게 나오지 못한다는 그곳. 멕시코에 산크리스토발이 있다면 페루에는 쿠스코가 그런 곳이라고들 했다. 나 역시 그런 기대감에 쿠스코에서의 일정을 9일이나 계획했다. 역시 우리의 계획은 적중했고, 쿠스코에서의 9일간의 일정은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쿠스코는 묘하게 사람을 잡아당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결코 지루하지 않은 곳이었다. 




아르마스 광장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미로처럼 얽힌 골목골목에는 예쁜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했고, 도시 곳곳에 있는 여러 유적지들과 벽화들 거기에 대규모의 시장도 여러 곳이 있어 이곳 쿠스코는 발걸음이 어딜 향하여도 볼거리가 가득한 도시이다. 또한 아르마스 광장에서 보는 하늘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쿠스코는 해발 3400m 정도에 위치하는 고산도시이다. 고산도시라서 일까 하늘은 더없이 맑고 깨끗했다. 매연이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었고, 청량한 하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있을 동안은 우기가 겹친 시기여서 때때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세찬 비 또한 쿠스코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려 나는 쿠스코의 매력에 완전히 푹 빠져 있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시내로 나가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며 쿠스코 커피를 즐기기도 하고, 밤에도 역시 아르마스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2층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르마스 광장의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쿠스코의 골목길


저녁의 아르마스 광장
도시의 벽화


쿠스코에서는 잉카의 후예들인 주변 원주민들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여러 가지 수공예품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대규모의 시장들도 있었고,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 토요일마다 열리는 토요시장 등 쇼핑할 장소가 넘쳐났다. 평소에 지인들에게 줄 선물이나 기념품 등을 쇼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도 이곳 물건들의 매력에 푹 빠져서 엄청나게 과소비를 하곤 했다. 특히 이곳에서만 살 수 있다는 야마 인형은 그것을 사지 않고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나는 좀 더 큰 사이즈의 야마 인형을 구하기 위해 토요시장 곳곳을 누비며 찾아다녔지만 몇 마리밖에 데려오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토요시장에서 득템 한 야마 인형들


특히 토요시장에는 쿠스코 인근에 사는 잉카의 후예인 원주민들이 일주일 내내 손수 작업하여 토요일마다 물건을 들고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파는 사람마다 모두 다른 무늬와 모양의 지갑이며, 파우치 등을 갖고 있었다. 가격 또한 일반 상점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싸고 좋은 물건들이 즐비했다. 민박집 사장님은 한국인들이 이 시장을 알면 물건값을 너무 많이 깎으며 시장 가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아무한테나 안 가르쳐 주는 중요한 장소라고 했다. 사장님이 그런 말씀을 할 정도로 이곳 상인들은 엄청 순수한 느낌이었고, 물건값도 깎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나는 시장에 나와있는 물건들 중에 갖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서 이참에 지인들의 선물을 여기서 사자 하고 마음먹고 마음껏 쇼핑을 했다. 물론 내가 지금 쿠스코에 있기 때문에 이 물건들이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인다는 것을 다 안다. 막상 이 물건들을 갖고 서울로 간다면 별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을 준비하는 방법이었다. 선물은 마음이니까.


쿠스코는 시장이 잘 발달하여 시장에 가서 신선한 과일주스도 마셔보고, 이곳 특산 닭국수인 caldo de gallina도 먹어보고 여러 가지 음식들도 맛보았다. 특히 쿠스코에서는 과일이 너무나 맛있고 신선했다. 두 손을 합친 것보다 큰 애플망고는 1kg에 3000원도 안 할 만큼 저렴했다. 우리는 종종 저녁식사를 과일로 대체하기도 했을 정도로 과일의 종류도 많았고 맛도 있었다. 아직도 쿠스코의 애플망고는 잊을 수가 없을 만큼 너무나 달고 맛있었다. 


시장의 과일주스 가게
시장에서 구매한 복숭아와 애플망고
시장에서 먹어본 닭국수인 Caldo de gallina


또 하루는 쿠스코에서 유명한 곱창집에 가서 곱창을 실컷 먹기도 했다. 우리는 곱창이 느끼할 것에 대비해 마늘과 양파, 쌈장 등을 챙겨가서 곱창과 함께 먹었는데, 곱창을 쌈장과 같이 먹으니 마치 한국에서 곱창을 먹는 것과 같은 맛이었다. 또 민박집이 식당을 겸하고 있어 한국음식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물론 매일 아침식사를 한식으로 제공해 주셔서 한식에 대한 그리움은 없었지만, 특별히 식당에서 먹는 한국식 무한리필 삼겹살은 그 맛이 진정 꿀맛이었고, 사장님께서는 묵은지까지 내어 주셔서 삼겹살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었다. 사장님은 나이가 꽤 있으셨지만 흥이 많으시고 술을 좋아하셔서 종종 식사자리에 함께 하시기도 했다. 흥이 돋으면 사장님은 이것저것 내어주셔서 우리의 밥상을 더욱더 풍성하게 해 주셨고, 그럴 때면 참 정이 많은 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냉정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좀 많았는데, 술 한잔 하시면 바로 인정 많은 할머니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우리의 여행 중에 한 지역에서 9일 정도를 머무르는 경우는 그동안 그리 많지 않았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쿠스코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것 같다. 쿠스코는 우리의 기대를 결코 무너트리지 않았고 이곳에 있는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쿠스코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립다 쿠스코의 맑은 하늘과 안데스의 멋진 정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쿠스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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