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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니 May 26. 2024

시간 여행

엄마의 이야기 3: 어린 나를 만나는 일


  블로그에 애월이의 생(生) 5개월 차를 축하하며 썼던 글을, 생각을 좀 더 이어 적어 본다. 그리고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한번 퇴고를 하며(충분한 무관심으로 글이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브런치에도 올린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내 안에 더 있나 보다. 그러니 같은 말을 반복한다 할지라도 이 글을 처음 적고, 적으며 생각하고, 다시 적고 생각하는 일련의 과정은 내게 의미가 있다. 적어야 한다면 그것은 각별한 무언가일 것이다. 마음속에서 거대한 빛을 내뿜으며 있기에 건져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어렸을 적 기억들은 선명했다. 대부분은 아버지의 주사로 인한, 불쾌한 색채를 띤 선명함이었지만 아버지가 힘을 소진하고 점차로 늙어가듯이 그것과 관련된 나의 기억들도 점차로 테두리를 잃고 흩어지고 있었다. 비단 아버지의 주사 말고도 어린 시절 전반에 대한 기억들 역시 마찬가지 운명으로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한번 있었던 것들이 대체 내 안의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애월이를 낳고 나서 과거를 회상하는 힘은 더욱, 몰라보게 약해졌다. 하긴, 애월이라는 라이브 방송이 너무 강렬한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월이가 얼추(5개월) 자라나고 애월이와 나 사이에 여유라는 틈이 조금씩 생기면서 깨단하는 순간들이 틈새를 비집고 찾아왔다. 나는 육아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애월이였고 애월이가 나였다. 그리고 나는 또한 애월이의 엄마면서 동시에 나의 엄마였다. 아이와 나는 결국 다른 인간이라는 결론을 (첫 번째 글에는 썼지만) 적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 문장으로 내 마음을 삼는다면, 내 마음은 거기서 끝나버릴 것이다. 나는 좀 더, 동시성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내가 곧 애월이가 되어 있더라는 묘한 시간 여행의 감각을 즐기고 싶었다.



  애월이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땐 이런 생각 같은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시간엔 나와 애월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만한 정신의 틈이 없다. 하지만 애월이가 자거나 아빠 품에 있거나, 그래서 나의 눈이 다른 것을 보고 나의 손이 다른 일을 하면 이 묘한 감각 속으로 골몰히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나는 왜 지금 필요도 없는 볼풀장을 선뜻 사겠다고 했을까. 약간의 두려움이랄지, 죄책감이랄지, 가볍지만은 않은 칙칙한 감정들을 느끼면서. 글을 처음 적던 날, 당근에 볼풀장이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 있었다.



  그것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라는 효율이 죄책감을 만들었다. 필요도 없는 것을 왜 사느냐고 내가 나에게 의문을 제기할 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애월이가 좋아할지 않을지 시도해 볼 만은 하지만, 애월이는 지금 볼풀장에서 재미있게 잘 놀 만한 나이가 아니다. 애월이가 8개월은 되어야 혼자 앉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나는 내 마음속에 늘 있던, 그러나 요즘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던, 애월이를 떠올릴 때마다 등장하던 어린 나를 위해 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애월이의 얼굴 위에 있었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는 실내에 거대한 미끄럼틀과 함께 볼풀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약간의 석유 냄새 같은 것을 맡으며 볼풀공 사이로 헤엄을 치는 놀이는 제일 재밌는 놀이였다. 물론 그것만 계속 가지고 놀 수도 없었고, 더 놀고 싶다고 차마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었다. 엄마는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며 나를 다른 유치원으로 전학 가게 했다. 처음으로 용기 내서 싫다고 말해도 먹히지 않았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를 기다리며 볼풀장에서 놀았던 일이, 내게는 그것을 가지고 논 마지막 날이었다.



  그 이후로 볼풀장을 만났을 때는 나는 이미 너무 커버렸고, 체면이란 것이 생겼으며, 저기서 놀고 싶다고 더는 말하기 어려운 몸 큰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볼풀장을 사겠다 마음먹으니, 초자아의 매서운 채찍 같은 눈빛을 모른 체하며, 볼풀공을 한 천 개쯤은 채워야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집안을 볼풀공으로 허리춤까지 채워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그대가 돌아오면 가슴 한켠이 갑갑해지겠지만(이런 얘기를 했더니 우리가 주택에 살게 된다면 방 하나를 볼풀공으로 채워주겠다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집안을 볼풀공으로 가득 채워 놓고, 침대에서 폴짝 다이빙을 해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여기에 아직도 실재한다. 어린 시절 나의 얼굴을 하고서.



  애월이를 키우는 길 중간중간에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나는 애월이에게, 그 어린 나에게, 내가 원했던 애정을 충분히 주고 원하지 않았던 것은(그러나 경험했던) 주지 않는다. 결국 애월이는 나와 다른 정신 구조를 갖춘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며, 나 역시 나를 엄마로 해서 다시 한번 자라날 것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어린 시절을 겪은 어른으로. 나이면서 내가 아닌 미래로 삶을 뒤바꾸는 맛이 기기묘묘하다. 시간 여행을 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이것에 다시 한번 모성의 축복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뒤집기와 되집기를 하느라 옹알이를 잃은 자



  24.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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