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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니 Jul 02. 2024

애월이에게서 배운 것

계란으로 바위 치기는 가능한 것이었다


  처처부처라더니. 애월이에게 배운 점이 한 가지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가능한 일이더라는 것. 애월이는 이제 바운서를 제외하고(바운서에서는 허리를 들어서 주르륵 미끄러져서 내려오려고 함) 어디서든 뒤집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우리 부부의 푹신한 침대에서도 뒤집을 수 있고, 그래서 올려놓았다. 그 옆에는 떨어지지 못하도록 내가 누워서 막고 있었다.



  애월이는 뒤집기 요정이다. 하지만 옆에 있는 나 때문에 절반밖에 못 뒤집고 벌러덩 눕기를 반복했다. 우리 부부는 그걸 보면서 “애월아, 엄마가 있어서 뒤집을 수가 없을걸!” 이러면서 깔깔거렸다. 애월이는 우리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아직 언어를 모르니 들릴 리도 없겠지만) 계속해서 뒤집기를 시도했다. 벌러덩 눕고, 또 뒤집으려 하고, 다시 나동그라져 벌러덩 눕고.



  나는 몰랐다. 어느 참 되니 내가 침대 끄트머리까지 밀려나 있었다. 아니, 고작 8.2kg밖에 안 되는 아기가 뒤집기의 힘으로 나를 여기까지 밀었다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가능한 일이었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은 효용도 쓸모도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내 머리가 깨졌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다니. 애월이는 짜증도 내지 않고 포기도 하지 않고 그저 뒤집기를 하기 위해 계속해서 뒤집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믿음으로, 나는 살아온 것이 아닐까 정신이 들었다. 애초에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린 채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애월이가 그 작은 몸과 별것 아닌 힘으로 나를 침대 끄트머리까지 밀어낸 일은 내 가슴속에 선명하게 별이 되어 박혔다. 그리고 믿음이란 것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나를 믿는 것. 나의 가능성을 믿는 것. 내가 좌초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 나를 건져내는 건 다름 아닌 나를 믿어주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불가능을 체화하고 있었을까? 그 일 이후 요즘 나는 의식적으로 나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의식은 무의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는데 아닌 것 같다. 잘못된 믿음이었던 것 같다. 의식이 무의식을 이길 수 없다면 인간은 아무 노력도 할 필요 없겠지. 마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 결정론적인. 그래서 나는 더욱 의식적으로 나의 능력을 믿으려 한다. 계속 되먹이면 언젠간 이것이 나의 습(習)이 될 테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바뀐 점은 내 마음을 방문한 번아웃이 물러갔다는 점이다. 상황은 변한 게 없다. 나는 여전히 이유식 큐브를 만들고 애월이에게 이유식을 떠먹여야 하고 애월이를 씻기고 음식물 부스러기가 떨어진 바닥을 뒷정리해야 한다. 나만의 시간이 없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나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 신뢰가 나로 하여금 힘이 나게 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더 나은 방식을 찾도록 만든다. 놀라운 일이다. 이전 같으면 정신도 육체도 기진맥진해서 일단 쓰러져 눕고 볼 텐데.



  자기를 신뢰하는 믿음의 중요성. 내가 애월이에게 알려줘야 한다고만 생각해 왔는데, 오히려 애월이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고마워. 이 깨달음 잊지 않을게.



엄빠랑 노는 게 재밌어서 안 자려 버티다가 잠들어 버린 남애월 군



24.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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