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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Nov 15. 2024

11월 중순 어느 날

은은한 저녁빛에 마음도 부드럽게 흩어진


  애월이는 어제 독감 예방접종 2차를 맞았다. 그리고 몇 백 명 중 한 명에 당첨되어 간밤에 열이 났다. 38.7도 정도의 예방접종 열에는 이제 나도 당황하지 않는다. 침착하게 수면 조끼와 바지를 벗기고 윗옷만 입혔다. 그것마저도 부족해 보여 상의를 가슴께까지 올려 배를 드러나게 했다. 해열제는 39도가 되거나 애월이가 힘들어하면 먹일 생각이었는데, 열이 있음을 확인한 때로부터 한 시간 뒤인 새벽 1시에 열이 37.9도로 떨어져서 먹이지 않았다. 애월이는 그 이후로 뭔가 불편한지 못 자다가, 안아들고 걸어 다녔더니 금방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하니 정상 체온이 되었다. 이렇게 올해 독감 주사는 끝.



  남편이 앞으로 3일 동안 육아할 시간이 없을 예정이라 계획에 없던 자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얼 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다. 도파민에 몸을 맡겨 시간을 축낼 것인가, 아니면 여러 일을 해내면서 알차게 보낼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복식 호흡을 하고 연달아 명상도 하고, 노트북을 들고 작은 베란다로 나가 아무 글이나 이렇게 적고 있다. (저장한 글은 넘치는데 발행을 못 해서 이번 글은 얼른 쓰고 발행해야겠다.) 오후 3시까지는 햇살도 들고 빛이 강했는데 오후 4시 반이 되니 은은한 저녁빛으로 하루가 저물어 간다. 눈부시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아늑한 저녁의 시작이다. 애월이는 안 자려고 버티다가(드디어 이런 시절이 와버렸군) 낮잠에 들어서는 3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났다.



  최근에는 책을 제법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의 반납 기한이 다가오면서 틈틈이 읽었더니 결과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다시 그렇게 읽으라면 싫다. 여유 있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읽고 싶다. 집중이 끊기고 다시 현실의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느껴지는 감압이 싫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지. 안다. 앞으로 한동안 책을 읽으려면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돌잔치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책 읽기를 미뤄야 할 것 같다. 아냐, 노리개와 술띠만 만들면 좀 더 여유로울 테니 그때는 읽을 수 있을지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경제병리학 관련 두 권, 뇌과학 육아책. 뇌과학 육아책은 사고 싶고 선물도 하고 싶었던 책이다. 안아 키우길 잘했다며 지난 시간을 보람 있게 만들어 주었던 책이다.



  돌잔치 준비를 하면서 전통매듭을 알게 되었다. 바느질도 아니고 뜨개질도 아닌 것이 왜 이렇게 재미가 있는지. 그렇게 애월이의 연보랏빛 돌띠를 만들었고 지금은 돌잔치 때 달 노리개를 만들고 있다. 노리개 디자인에 대해 정보가 없어서 판매하는 노리개 중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똑같이 따라 만들고 있다. 돌띠에는 도래매듭, 생쪽매듭, 삼정자매듭이 쓰였는데 이번 노리개에는 (그리고 남편의 술띠에는) 국화매듭이 쓰여서 유튜브로 새로 배우고 있지만 어렵다. 꼰세사를 이리저리 엮는 것보다 가운데 모양을 잡고 줄여나가는 과정이 특히. 몇 번이나 풀었다 지었다 하니 급한 성질에 짜증이 치밀기도 하지만 결과물을 보자니 흡족하고 뿌듯하다.



돌띠에는 오방색 실크로 복주머니를 달았다
처음으로 두벌 국화매듭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란



24.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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