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이후 다시 시작된 요리
오늘은 기록할 만한 날이었다.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큼, 오후 시간대까지 애월이는 밥을 적게 먹었다. 아침에 땅콩버터 바나나 오트밀죽을 90g 정도, 분유 50ml.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여서(?) 두어 시간 뒤에 분유를 또 탔지만 40ml 먹고 말았다. 240ml를 원샷하던 애가. 그러고 잔단다. 이후 세 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난 어린이. 그럼에도 배고파하지 않아 내 머릿속은 혼란의 물음표로 가득했다.
이쯤 안 먹는 아기들이 더러 유아식으로 바로 넘어간다던데 애월이도 그래야 하나 싶어 유아식을 찾아보았으나, 월반이 아닌 완료기 이유식으로 순차적인 단계 업을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벌써 완료기(보통 12-15개월이므로) 이유식을 시작할 때가 오다니. 후기 이유식을 한 달밖에 안 한 것 같은데 말이다. 이 말인즉슨, 이제 죽이유식과는 작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장이 가능해 만들어 놓고 편히 먹일 수 있었는데.
애월이는 초기는 토핑 이유식을, 중기에는 끼니마다 일일이 만들어 먹였고 빠르게 질감을 높였었다. 하지만 후기에는 끼니마다 세 번 만들어 먹이기가 힘들어 죽을 만들어 먹였다. 최근 들어 애월이는 이 죽만 먹는 경우에 몹시 거부하긴 했었다. 하긴, <올드보이>도 아니고 같은 음식을 계속 먹기는 정말 싫었겠지. 그래서 만들어 놓은 죽을 베이스로 다양하게 해서 먹여 보았지만 오늘은, 엄마의 촉이란 것에 따르면, 변화의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완료기 이유식. 완료기 메뉴들은 밥의 질감이 더 되직해지고(그래도 진밥) 입자의 크기가 이전보다 클 뿐, 사실 해왔던 요리에서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없었다. 애월이는 워낙 엄빠가 먹는 음식에 관심이 많았기에 죽에서 벗어나 진밥을 먹여도 될 것 같았고 반찬을 해줘도 잘 먹을 것 같았다. 늘 보던 엄빠의 식사 풍경이 밥에 반찬이었으니. 다행히 완료기로 잘 올린 걸까. 애월이는 낮 메뉴를 남김없이 먹었다.
애호박 볶음은 처음엔 좀 켁켁거렸다. 죽 먹을 때 꿀떡꿀떡 삼키던 대로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습관이란 참. 그러나 이내 (중기 이유식의 기억인가) 잇몸으로 으깨 먹을 줄 알게 되었다. 저녁에 만든 돼지고기 감자볶음도(이건 잘 시간이 애매해 밥 없이 감자 많이) 다 먹어주었다. 장난감으로만 가지고 놀던 스푼을 오늘 저녁엔 떠먹는 용도로 써보는 대단한 발전도 있었다.
다시 음식을 만들게 되면서 관건은, 스트레스 관리를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나는 애월이가 음식을 가지고 장난쳐도 괜찮다. 옷이 더러워져도 갈아입히면 되니 괜찮아진 것 같다. 하지만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될 것 같아 훈육을 하다 보면 화가 차곡차곡 쌓인다. 화난 척을 하다가 정말 화가 나는 것이다. 사실 제일 큰 딜레마는, 음식을 가지고 장난칠 때 훈육을 정말 해야 하냐는 점이다.
분명 애월이는 밥을 만지고 싶고 그게 재미있는 일인데 내가 밥상머리 교육이란 미명 하에 아기에게 밥 먹는 즐거움을 빼앗고 있지는 않나 걱정이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습관인지, 아니면 지금 많이 어지럽힐 줄 알아야 아기에게 좋은지 모르겠다. 다만 엄마로서 나의 본성은, 집에서는 아기가 마음껏 만지고 묻히고 던지고 주무를 수 있게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래. 나는 나의 직관을 믿는다.
24. 11. 21.